‘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학벌을 “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학벌을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학자들이 정의한 학벌 개념에도 이 같은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국민대 김동훈 교수는 학벌을 “출신 학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패거리”, ‘한국 학력사회론’의 저자 김부태 씨는 “동일 학력의 층화 현상”, 원광대 김용욱 교수는 “같은 학교를 다닌 동기동창 선후배 간에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한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위 학자들의 학벌 정의에서도 “특정 대학 출신의 세력” 이라는 뜻을 찾을 수가 있다. 이렇듯 학벌은 조선시대의 문벌처럼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서 그 면모를 찾을 수있다. 그렇다면 학벌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조선일보」, ‘서울대 출신 특별채용’ 논란에 휩싸여「조선일보」는 2006년 수습기자 공채에서 서울대 학생을 특별채용 한다는 공지를 보내서 곤혹을 치렀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정치학과의 게시판의 게시글은 이후 누리꾼에 의해 갈무리 돼 퍼짐으로써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으며, 그 후 네티즌들은 「조선일보」를 성토하고 서울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측은 협조공문이 와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밝혀 책임을 전가했고, 조선일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평소 기자 공채시험에서 비교적 공정한 선발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왔던 「조선일보」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암묵적으로 학벌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내사랑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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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새로운 입시요강이 발표될 때면 일간 신문에는 그와 관련한 내용이 1면을 차지한다. 특정 대학의 모집 요강이 주요 언론의 톱기사를 장식하는 일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풍경이다. 또한 언론은 서울대와 관련된 사소한 사건도 과장시켜 보도함으로써 ‘서울대는 특별하다’라는 인식을 일반인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등 에서도 ‘서울대는 특별하다’는 인식이 두드러진다. 한 예로 영화 ‘가문의 영광’에서 조직 폭력배 집안은 학력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남자주인공을 자신의 사위로 삼는다. 제목 ‘가문의 영광’은 서울대 졸업생이 집안에 들어온 것을 빗댄 말인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법대 05학번의 한 학생은 “단지 ‘서울대’이기 때문에 언론에 종종 이슈화가 되는 소재들이 있다. 때때로 일부에 대한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나치고 편파적이다”라며 문제를 지적했다.고등학교 순위의 “지표”는 서울대 합격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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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에 보도된 서울대 합격자 관련 기사 |
「조선일보」에는 매년 9월마다 고등학교별 서울대 합격자를 기준으로 고등학교의 순위를 발표하는 기사가 실린다. 기사에서는 ‘명맥을 이었다’ 등의 어구를 사용함으로써 서울대의 합격자의 수가 고등학교의 수준을 결정하는 지표인 것처럼 보도한다. 「조선일보」 독자들은 기사를 보고 학생들을 서울대에 많이 보내야만 소위 ‘명문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같은 서울대 합격자수 예찬은 지방 언론으로 갈수록 더 심화되어 지역 신문들은 이 수치로 명문과 비명문 고등학교를 구분하기까지 한다. 특히 서울대 합격자수가 많은 고등학교는 소위 ‘지역 명문고’로 띄워주기도 한다. 지역에 명문고가 있다는 것은 지역의 이미지가 좋아져 전입인구가 증가하고, 지역사회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현수막인가?매년 입시가 끝나면 대부분의 고등학교 정문에는 대학 합격자 현수막이 걸리며 중앙에는 큰 글씨로 서울대 합격자의 이름이 적힌다. 심지어 합격자 부모님의 이름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다. 매년 지속된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학 합격자 현수막이 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몇몇 단체에서는 ‘현수막 안 내걸기 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입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이를 계속하고 있다. 현수막 풍경에 대해 허경회 (공대 01)씨는 “현수막을 거는 학교나 보고 부러워하는 학부모 모두가 한심해 보인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였으나, 유승연 (사회 07)씨는 “솔직히 내 이름이 걸린 것이 좋으며, 친구들은 나를 부러운 눈으로 본다”며 대조적인 입장을 보였다.대학교에도 이제 ‘전학’이?!반수는 이제 우리 대학 사회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반수의 목적은 무엇일까? 물론 자신의 학문적 목표를 위해서 반수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반수생은 학교의 ‘업그레이드’, 즉 더 좋은 학벌을 얻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반수를 한다. 지방대 학생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할 목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의 학생은 상위권 대학으로 옮기려고 반수에 도전한다. 그 숫자는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많아진다. 사립 최고 명문이라 일컫어지는 Y대와 K대의 학생들도 학벌의 최정점에 있는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과감히 다니던 대학의 문을 박찬다. 그들의 목표는 다름아닌 서울대로의 ‘전학’ 이다.우리는 모두 ‘서울대 동문’2000년 9월에 한국 문학계를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시립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명원 씨가 ‘타는 혀’라는 저서에서 문학계 거두 김윤식 교수의 표절 의혹을 제기 했기 때문이다. 학벌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한국 학계에서 이는 용납될 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학과 교수 6명 모두는 서울대 출신으로 김윤식 교수의 제자였다. 그 교수들은 자신들의 스승이자 선배인 김윤식 교수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제자를 몰아세웠다. 결국 이명원 씨는 이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대학자의 오류를 지적한 제자의 학문적 패기를 높이 사고 칭찬해야 할 교수들이 그를 자퇴라는 최후 수단까지 몰아간 것이다. ‘학벌’의 무자비함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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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대 국회의원 당선자 통계, 국회 홈페이지 |
0학벌에 따라 아르바이트 수입 ‘5배’나 차이나학벌로 인한 경제적 차별은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된다.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 중 상당수는 돈을 벌기 위해 육체적인 노동을 주로 한다. 패스트푸드점, 식당 서빙 등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돈은 대략 시급 4~5천원정도. 하지만 이러한 육체 노동을 서울대 등의 소위 명문대 생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로 ‘과외’라는 ‘고급’ 아르바이트를 하며 2만원이 넘는 시급을 받는다. 육체적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의 경우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약 20시간을 일해야 벌수 있는 돈을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4시간 일해 버는 것이다. 똑같은 대학생의 1시간 노동가치가 5배나 차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외’ 아르바이트는 일정한 학벌 이상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연권 (경동대 05) 씨는 “어쩔수가 없다. 내가 학부모라도 서울대를 선호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윤원진 (상지대 06)씨는 “학부모들은 대학을 너무 밝힌다. 가르치는데 대학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며 평소 ‘학벌’로 인해 받아 왔던 차별을 토로했다.학벌주의 타파 위한 움직임들 곳곳에서 포착되지만… …우리 사회에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학벌주의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예로 ‘학벌 없는 사회’ (http://www.antihakbul.org), ‘학벌 없는 사회 만들기’ (http://www.goodbyehakbul.org)등의 운동단체가 조직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학벌주의를 극복하려는 교육계와 정치권의 시도도 수 차례 있었다. 이와 더불어 언론매체도 우리 사회의 학벌 문화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사와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는 등의 시도로 학벌보다는 능력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도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칠 뿐, 우리 사회의 폐쇄적인 학벌 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함이 없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의 분석들이 존재한다.학벌과 관련한 연구를 한 학자들은 한국 사회를 가리켜 ‘서울대 공화국’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한국 사회에는 서울대 졸업생들이 정·재계 등의 요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다. 전통적으로 ‘선배가 끌고 후배가 따르는’ 풍토가 배어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사회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동체주의 때문이다.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학벌이란 같은 학연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결속하여 ‘우리’라는 공동의 주체를 형성할 때 비로소 성립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공동의 주체성을 느끼게 하여 깊은 인연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권력 관계가 형성되고, 자신보다 ‘열등한’ 타자에 대한 배타성까지 드러나게 되면 비로소 ‘학연’이 ‘학벌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외국에서는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학연’의 개념도 거의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더욱이 그것이 권력관계와 배타성을 함의한 ‘학벌주의’로 발전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학벌의 대물림 현상은 사회 통합을 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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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경제력과 자식 학력에 관한 인터넷 기사. |
학벌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학벌이 빈부 격차를 줄이고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이 말은 옛말이 되버렸다. 이제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서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자원의 투입’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현실이다. 학벌 쟁탈전에서 승리한 자들이 부를 축적하고, 그들의 자녀가 부모로부터 학벌 쟁탈전에 쓰이는 ‘실탄’을 지원받아 다시 좋은 학벌을 획득하는 것이다. 조은(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학벌과 부가 함께 대물림되는 현상’이며 이는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해 사회 통합을 해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오늘자 중앙 일간지에도 어김없이 ‘서울대’와 연관됐다는 이유만으로 지면에 등장한 기사들이 있을 것이다. 독자들 대부분은 ‘왜?’라는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서울대를 ‘특별한 대학’으로 느끼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에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들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서울대 출신의 집필진이 쓴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공부를 하고 서울대에 합격한 선배들의 경험담을 듣고 감탄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어느 대학으로 진학하든지 서울대 출신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며, 서울대 출신 문학 평론가가 추천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에는 ‘서울대’를 필두로 한 대학 서열화의 흔적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과연 ‘서울대 없는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