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총장 김종운 교수(영어영문학과) 1991. 08. 14 ~ 1995.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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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직선제는 온전한 방식이 아닌 최다 득표자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불완전한 방식이었지만 첫 직선제인만큼 관심도 뜨거웠다. 그 당시 총장후보선정위원회는 첫 직선제라는 점 때문에 투표율을 걱정했지만 단 하루 동안 실시된 선거에서 90.7%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김 총장은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친 실무형으로 무난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취임사에서 기여입학제가 유일한 재정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는 캠퍼스의 확충과 재배치를 주장했다. 한편, 교육부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서울대의 욕구는 이때에도 여전하여「지원은 최대한, 간섭은 최소한」을 제창하기도 했다. 한편 문민정부 출범 최초로 교내 정치성 시위를 막아달라며 공권력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 총장의 퇴임 즈음에는 과도한 고교 인맥간 갈등으로 총장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김 총장은 정년으로 임기보다 조금 빨리 퇴임했다. 제20대 총장 이수성 교수(공법학과) 1995. 03. 01 ~ 1995.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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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선거도 5명의 후보가 나와서 2명의 최대 득표자 중에서 대통령이 낙점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때도 투표율은 87%정도 되었지만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서 3명을 대상으로 2차 투표를 치렀다. 2차 투표에서 이 교수는 48% 지지를 얻어 2위였던 권숙일(물리학부) 교수(28.8%)를 크게 따돌렸다. 경영의 귀재가 운영한다고 대학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재와는 조금 다른 의견을 펼친 이 총장은 사회봉사활동을 서울대 입시에 반영시키기도 했다. 이 총장은 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처장으로 재임 중 학생들을 보호하다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하는 등 신망이 높았다. 그는 학생들과 같이 11년만에 총학생회 발대식에 참가하기도 했고 함께 4ㆍ19 기념탑에 참배하기도 했다. 한편, LG와 경영관 설립 협약이 이때 이루어졌으며, 이 총장은 국제 교류처를 만드는 등 ‘세계화’를 강조하였고 서울대특별법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이홍구 총리의 경질 이후에 김영삼 대통령은 그의 깨끗한 이미지를 높이 사 그를 국무총리에 임명한다. 이에 총학생회는 직선제로 선출한 총장을 1년만에 입각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발했으나 이임식에서 꽃다발을 주면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총장직을 정치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제21대 총장 선우중호 교수(토목공학과) 1996. 02. 12 ~ 1998.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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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표는 1인 2투표제로 진행되었다. 투표 결과는 정말 박빙이어서 출마한 4명의 순위가 50표내에서 갈렸다. 선우 교수가 51.9%의 득표로 차점자인 이기준 교수(50.4%)를 간신히 따돌렸다는 데에서 잘 알 수 있다. 선우 총장은 이수성 전 총장 당시 부총장을 역임했고 그 정책의 연속성에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 당시 선우 총장은 과거에 금강산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취임 이후 선우 총장은 서울대 본고사를 폐지하고, 논술, 생활기록부, 수능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지금의 신입생 선발방식의 틀을 정했다. 무시험전형을 늘려서 교장 추천 전형을 8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학부 정원을 25% 감축하겠다는 안을 내놓았고 연구 중심 대학으로 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시기에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하나의 통합캠퍼스를 포천에 세운다는 다소 황당한 계획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문대학원과 2+4 학제제도 등 무리한 추진 과정에서 교수들과 마찰이 잦았던 선우 총장은 딸의 월 2000만원 고액과외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하게 된다. 그 당시 교육부는 고액과외 퇴출 운동을 강하게 벌이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그는 큰 타격을 받게 됐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이 있었다. 제22대 총장 이기준 교수(응용화학부) 1998. 11. 11 ~ 2002.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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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총장에게 이번 선거는 3번째 도전이었다. 대단한 집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당선도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총장 투표 결과 이 총장이 1위, 김세원(경제학부) 교수가 2위를 차지했다. 관례상 당연히 이기준 교수가 임명돼야 하지만 악재가 터졌다. 아들의 고의 병역 기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때 김세원 교수가 임명될 것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장남이 병역의무를 다하러 귀국하는 등 노력한 모습을 감안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총장은 취임할 때부터 교수 증원과 연구 기반시설의 확충은 물론 경쟁원리를 도입, 치열한 내부 경쟁이 이뤄지도록 교육환경을 바꿔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전문대학원 유치와 광역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총장은 끝까지 구설에 올랐다. 한 해에 판공비로 4억 5000여만원을 사용하고 또 LG 사외이사를 겸직했음에도 이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총장은 언론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이용, 장남의 병역기간 단축을 시도하고 자신이 속한 재단에 보조금을 지급케 하는 등 비판이 잇따랐다. 급기야 총학생회에서는 총장 불신임안을 93%의 찬성률로 통과시키고 총장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사건이 불거진 4월에이 총장은 총장직에서 6월에 조기 사퇴하겠다고 밝혔지만 교수협마저 등을 돌리면서 바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서울대 위기론 속에 취임한 정운찬 총장이 임기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정치 입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이번만큼은 서울대 직선제 총장이 임기를 채우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정 총장은 임기를 무난히 채울 것으로 보인다. 이기준 총장이 비극적인 서울대 직선제 총장 역사의 마침표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