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상반기, 서울대는 그 어느 때보다 기성 언론 취재진의 발길이 잦았다. 지금도 진행 중인 황우석 박사 관련 시위, 5월에 치러진 총장 선거, 그 외의 일상적 사안의 취재 등으로 서울대는 항상 북적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49대 총학생회장 황라열(종교 00) 씨가 언론으로부터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여기에 더해진 것이다. 당선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진 황라열 총학생회장은 가장 최근에는 학내외 언론을 대상으로 ‘서울대 한총련 탈퇴’를 골자로 기자회견을 열었다.총학의 한총련 탈퇴는 명백한 ‘쑈’지난 11일 오후, 학내 문화관 소강당에는 내로라하는 기성 언론매체를 대상으로 49대 총학생회의 기자회견이 한창이었다. ‘49대 서울대 총학은 모든 학정조와의 분리를 선언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는 지난 선거의 공약 중 하나였던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 탈퇴와 이후 어떤 학생 정치 조직에도 가입하지 않겠다는 공식 선언이 담겨 있었다. 또한 그간의 학생회는 특정 거시담론만을 강조하는 학생 없는 학생회였다고 강하게 비판해 스스로가 ‘반운동권’ 학생회임을 다시 한 번 피력했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들은 가히 폭발적이라 말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들이 서울대 총학의 한총련 탈퇴에 대해 연달은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고 사설란까지 채워 넣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관련 사설에서는 ‘포스트 한총련, 구시대의 종언, 새로운 학생회의 개막’과 같은 찬사 아닌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에 반해 총학의 행보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본 언론도 있었는데 「오마이뉴스」, 「시사저널은」 대체로 이 기자회견이 하나의 ‘쑈’라는 식의 기사를 작성해 눈길을 끌었다. 이 언론들은 서울대가 사실상 1998년에 한총련 산하조직인 서울지역대학생총연합을 탈퇴하면서 한총련과 결별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한총련 소속이라 함은 조직에 분납금을 내고 대의원 회의에 대표자가 참석해야 함을 의미 하는데 98년 이후로는 두 가지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사에서 운동권과 비권을 막론한 역대 서울대 총학생회장들은 하나 같이 인터뷰를 통해 ‘한번 탈퇴했는데 어떻게 또 탈퇴하냐’와 같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photo1 photo2‘쑈’에 속아준 언론들의 속내, 현안의 보수적 흐름에 여론몰이 하려고그런데 서울대 총학이 한총련과 사실상 98년부터 결별했다는 사실적 관계를 일선 기자가 모를 리 없다. 이번 기자회견을 하나의 큰 사건으로 다루고 있는 주요 언론들 역시 98년 당시 ‘한총련 와해’ 같은 타이틀의 기사를 쏟아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기자회견이 있던 당일 아침 엠바고(일정 시점까지는 보도를 자제하기로 하는 취재대상 및 기자들 간의 암묵적 합의)를 어기면서 기사 첫 면을 관련기사로 장식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조선일보」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른 일간지의 데스크가 자사의 일선 기자에게 기사 압력을 넣었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로 여타의 언론매체들 역시 앞 다퉈 기사를 쏟아냈다. 그렇다면 총학의 기자회견이 일종의 ‘쑈’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이 황씨의 언론플레이에 적극적으로 속아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관련 기사의 내용들이 어떠한지 조금만 살펴봐도 파악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학생운동이 폭력적이고 투쟁일변도임을 강조하고 이를 한총련과 일치시킴으로써 운동의 ‘본산’인 서울대의 탈한총련을 시대의 올바른 흐름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굿바이! 투쟁의 시대’, ‘학생운동사의 역사적 대사건’, ‘서울대 총학의 용기 있는 결단’ 등등의 수많은 미사여구들이 학생사회에 더 이상의 운동은 미련한 짓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고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등 학생운동의 움직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 오던 보수 언론들은 이런 저런 ‘사건’들과 서울대 총학의 선언을 연결시켜 학생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어느새 한총련과 운동권이 일치되고 대학생들의 탈정치화와 무의식화가 바람직한 대학사회의 상임을 주장하는데 총학의 기자회견이 주요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photo4 photo5또한 서울대 총학의 한총련 탈퇴 선언은 요즘 보수 언론들이 한참 밀고 있는 평택 미군기지 반대시위자들의 폭력성과 은연중에 연결돼 기사에 등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5월 10일자 신문 1면에 한총련 탈퇴 기사와 함께 ‘평택 대규모 시위에서 얻어맞는 군인’에 관한 탑 기사를 함께 내보냈다. 물론 한총련 탈퇴 기사에는 기자회견장에서의 “평택 시위에 연행된 서울대생에 대한 구명 운동에 총학이 나설 수 없다”와 같은 황씨의 발언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황씨는 이와 관련해 기자회견장에서 “평택 시위를 지지하느냐와 상관없이 시위 방법이 너무 맘에 들지 않는다”며 “그 시위에 한총련이 가담해 있는데 서울대 총학이 한총련에 왜 아직도 가입돼 있느냐 하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공식선언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의도가 어쨌든지 간에 평택 미군기지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시위자들의 폭력성만을 확대 보도해 왔던 보수 언론들에게 황씨의 발언과 총학의 공식 선언은 평택에서의 모든 시위는 그만 돼야 한다는 거친 논조의 기사거리에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photo3대안 없이 anti-학생운동을 외치는 것은 보수언론에게 이용되기 딱 좋아상황이 이렇다 보니 총학이 한총련과 관계 없다는 사실을 굳이 기자회견까지 해가며 보여줄 필요가 있었냐는 비판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황씨는 “한총련에서 말도 안 되는 가입 및 탈퇴절차로 아직도 서울대가 한총련 소속이라 우기는데다 내가 속한 사회집단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어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선언할 수밖에 없었다”며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온 국민이 진실을 알게 됐으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비권 선본으로 등장해 다른 방식의 학생운동을 선보이려 노력했던 서울대 47대 총학생회장 홍상욱(경제 99) 씨는 “서울대 총학이 한총련 소속인 줄 아는 사람이 학내외에 그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고 반색하며 “47대 총학도 한총련과 관련이 없었지만 기자회견을 안 한 이유는 쓸데없는 정치적 파장을 일으켜 보수 언론에 이용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런 식의 내지르는 기자회견은 학내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총련과의 결별이 공약이었고 이를 이행했던 역대 총학이 몇 몇 있었으나 이들은 기자회견이라는 방식을 택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 결국 시기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보수 언론의 어깨에 힘을 실어준 총학은 역대 어느 총학보다 더욱 정치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지지 기반에 실망을 안겨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한편 소기의 성과를 이룩했다는 황씨 역시 언론의 폭발적인 반응이 당황스럽긴 했으나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기자회견이 언론플레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언론을 이용했지 언론이 나를 이용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다만 대학생의 탈정치화, 무의식화와 같은 단어를 끌어내는데 일조했으므로 앞으로 그 대안을 만들어 가는데 부담을 느낄 뿐”이라 덧붙였다. 실제로 총학은 다가오는 Leadership Training 일정을 통해 대학생의 탈정치화라는 문제에 방법론적으로 접근해 간접민주주의의 폐해를 극복해볼 수 있는 새로운 실험을 서울대라는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실행 해볼 생각이라 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계획은 아니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각종 언론들이 말한 것처럼 ‘학생운동 구시대의 종언’과 함께 학생회 및 학생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총학의 뒤늦은 준비에 대해 홍상욱씨는 “굳이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면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위해 준비된 구체적 결과물이 주 내용이 돼야 했는데 이번 기자회견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anti-학생운동이라는 인상 밖에는 심어주지 않은 소모적인 행위”였다고 비난했다. 서울대의 한총련 탈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듯, 다른 대학의 한총련 탈퇴 현상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언론이 이러한 흐름을 새로운 현상으로 인식하게끔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서울대가 가지는 대표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성을 이용하여 보수 언론은 ‘대학생의 탈정치화, 평택 시위의 폭력성, 투쟁 일변도의 부정적인 학생운동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총학생회장의 의견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서울대가 갖는 ‘대표성’이란 것이 한국 사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에 대한 고려가 중요해 보인다.
보수언론과 49대 총학은 찰떡궁합
2006년 상반기, 서울대는 그 어느 때보다 기성 언론 취재진의 발길이 잦았다.지금도 진행 중인 황우석 박사 관련 시위, 5월에 치러진 총장 선거, 그 외의 일상적 사안의 취재 등으로 서울대는 항상 북적거리기 마련이다.그러나 이번에는 49대 총학생회장 황라열(종교 00) 씨가 언론으로부터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여기에 더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