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세계의 역사를 누빈다

진보를 고민하는 대학생들이 그에게 갖는 감정은 ‘양가감정’ 아닐까.‘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역사에 대한 재미와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사람으로서, 어느 순간부터 그의 저작들에서 눈에 걸리는 부분들을 발견하면서도 새 책이 나오면 손이 가게 되는 것.

진보를 고민하는 대학생들이 그에게 갖는 감정은 ‘양가감정’ 아닐까.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역사에 대한 재미와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사람으로서, 어느 순간부터 그의 저작들에서 눈에 걸리는 부분들을 발견하면서도 새 책이 나오면 손이 가게 되는 것. 항상 활발한 저작 활동을 해왔으며, 최근 새 역사 시리즈 ‘가로세로 세계사’ 1권을 발간한 이원복 교수(60·덕성여대 산업미술학)를 만나보았다.새 책 ‘가로세로 세계사’ 첫 번째 책은 발칸 반도를 다루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집착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골랐다고 하는데,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린다.20세기의 재앙이 이데올로기 충돌이었다면, 그것이 사라진 21세기의 재앙은 민족주의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민족주의를 자각하면서 혈연, 문화를 중심으로 한 민족국가가 형성됐지만 그런 나라는 유럽의 몇 나라이고, 나머지 전 세계 국가들은 강대국간의 군사분계선이 국경이 됐다. 같은 민족, 같은 문화인데 국경이 갈라지고, 종족들이 뒤섞여 살고 있는데 싹둑 잘라놓으니 다수 민족이 소수 민족이 되고, 소수 민족이 다수 민족이 되고, 소수 민족이 불편하니 독립하게 되고. 이런 문제가 대표적으로 터진 게 유고 내전 아닌가. 닫힌 민족주의가 얼마나 위험하고 재앙이 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민족주의는 누구나 자신이 속한 에스닉 그룹(ethnic group)이 있으니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열린 민족주의냐 닫힌 민족주의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로 혈통보다는 문화, 국적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혈통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참여, 시민의식을 기준으로 민족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인가.그렇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민족에서 혈통을 가장 중요시하지만, 세계 어느 민족도 그것을 중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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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가로세로 세계사> 1권 발칸 반도 편은 서양 중심적 역사인식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근대 민족국가의 성립과정과 폐쇄적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있다.

발칸 반도에 이어 다음 책들에서 다루게 될 지역은 어디가 될지 궁금하다.

대충 윤곽을 잡고 마무리돼 가는 게 동남아시아이다. 우리나라랑 역사가 너무 비슷하고,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전 아시아가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예외 없이 수십 년간 독재를 했다. 서구 민주주의는 강한 ‘나’의 집합에 의한 평등이다. 모든 관계는 신과 나의 1대 1 관계였다. 계몽주의를 통해 절대적 신의 위치에 자아를 올려놓았고, 신 이외의 누구보다도 강하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을 모아놓으니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그에 비해 동양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다. 신은 절대적 지배자가 아니라 개인적 보호자였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나’와 ‘너’의 관계였다. 개인주의를 주제로 하는 민주주의가 공동체적인 아시아권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 틈에 정치가들의 독재가 가능했고, 이제 사람들이 이 나라가 ‘우리’거라는 걸 자각하게 됐다.그 다음은 중동편을 준비하고 있다. 중동을 알려면 이슬람을 알아야 한다. 9.11 테러가 왜 일어났나. 미국은 친 이스라엘 정책을 펴고, 이슬람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지몽매한 하급 종교 취급을 한다. 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그러니 이슬람교를 알아야 하고 유대인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중동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태평양의 영연방 국가들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이민 국가를 다루려고 하고, 중국과 몽고, 아프리카도 다뤄보고 싶다.‘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가 발간된지 20여년이 지났는데, 지금 시점에서 평가를 해 본다면?스스로 과찬을 좀 해보자면, 세계화 개념을 어린이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81년에 시작된 연재인데, 당시에 단어가 없어서 그런 말은 안 썼지만 생각했던 개념은 세계화였다. 시대를 10년 이상 앞섰다는 점에서 공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서구 중심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땐 오로지 부러웠던 게 유럽, 미국이었지 않은가. 어떻게 저들은 이런 나라를 만들었나가 화두였기 때문에 ‘먼나라 이웃나라’는 당연히 부러웠던 나라들을 다뤘다. 유럽 중심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그렇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역사에 대해 많은 책을 내고 계신데, 원래 학창시절부터 관심이 있던 것인가?아니, 역사는 지독히 싫어했다. 너무 재미없게 배워서. 우리 학교 역사는 원인, 배경, 연도 외우게 하고 너무 재미없었다. 뭔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우리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우리는 국사와 세계사를 나눠 배우는데 참 위험하다고 본다. 세계사와 한국사를 같이 배워야 한다. 신라 시대, 고주몽이 고구려 건국할 때, 우리에게는 까마득한 신화세계다. 그때 시저가 갈리아 정복했고, 시저가 쓴 글이 남아있다. 그런 걸 비교해보면 우리의 역사가 한눈에 드러난다.또 우리의 식민지 경험을 말하지만, 동남아 역사 보면 우리나라 당한 건 약과다. 다행히 숨어있는 나라라 늦게 온 거다. 동남아는 일찍부터 당하기 시작해서 야금야금 철저하게 빨렸다. 책에도 썼지만 전 세계에서 식민 지배를 안 했거나 안 당한 나라는 네 나라밖에 없다. 스위스, 네팔, 이디오피아, 타이. 식민지배에 관해 너무 좁은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면 안 된다.조선에 대한 일제의 침략, 이런 측면에서 볼 게 아니라 제국주의의 세계적인 지배라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말인가.세계사적인 시대의 흐름을 통해 본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선택이었단 게 이해가 된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만화를 통해 매우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소개해주고 있다. 자료 수집의 특별한 노하우랄 게 있는가?가장 중요한 것은 10년간의 외국생활, 거기서 유럽과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코드를 익혔다. 두 번째로 84년에 귀국했는데 지난 22년간 1년에 두세 번씩은 꼭 독일에 갔다. 그 장소의 현장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현장이 아니면 감지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곳 사람들의 정서라든가, 보도가 절대로 될 수 없는 게 많다. 작품에 대한 호응도 많지만, 보수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특히 대학생들이 어릴 땐 선생님 만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는데, 대학에 들어와서는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우리나라의 비극은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논리다. 보수적 개혁도 있고, 진보적 보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수구보수우익’과 ‘진보개혁좌파’가 딱 고정돼서 호환이 안 된다. 분단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좌익이란 말도 못 꺼냈으니. 진정한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좌익, 공산당도 있고, 꼴통도 있고, 진보지만 좌파는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보수라기보단 리버럴(liberal)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의 주장에도 좋은 점이 있고, 진보의 주장에도 옳은 점이 있다. 실사구시적 차원에서 선택하는 거다. 리버럴이 많은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 자기 맘에 안 들면 극우라고 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현 정권의 가장 큰 의미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는 거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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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은 폭이 넓은 개념이에요. 그래서 기회주의자, 회색분자 소리도 듣지만, 리버럴이 많을수록 건전한 사회에요.”

만화는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는지?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나?

고1때, 62년도부터 했다. 전쟁 직후의 7남매의 막내이니 아무도 뭐라고 안했고, 그런 데서 난 굉장히 자유롭게 살았다. 고등학교때부터 돈 벌어 사니까 경제적 자유도 누렸다. 「소년한국일보」에서 아르바이트했다. 그림을 잘 그려서 그런 게 아니고, 당시 어린이 신문이 외국만화를 베껴 내는데 그 일을 했다. 여하튼 내 그림이 인쇄돼 나왔으니 프로지.(웃음)학부 전공은 건축학이고, 대학원은 디자인 전공인데, 이력이 특이한 것 같다.아니다. 건축, 디자인, 만화 모두 종이 위에 없는 거 만드는 것 아닌가. 하나도 차이 없다. 아이디어를 자본으로 종이 위에 없는 걸 만드는 것, 꿈을 그리는 일이다.요즘 학생들은 어떻게 살면 좋겠나? 학부생 때 꼭 해봐야 할 일이라든가 권하고 싶은 게 있다면?인생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 세대는 판에 박은 교육을 받고, 예외 없이 똑같은 형태의 삶을 살아왔다. 요즘 세대는 우리보다 성숙하고 평균수명도 늘어나서 살 날이 많다. 우리는 인생 설계고 뭐고 할 것 없이 밀려왔지만, 여러분은 장기적 관점에서 인생을 디자인해야 한다. 몇 살에 뭐하고, 몇 살에 뭐하고, 이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남들보다 좀 늦게 졸업하면 어떤가. 남 의식하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삶을 디자인해야 한다.그리고 제2외국어를 반드시 해야 한다. 지금 영어는 기본에 필수다. 언어는 어장이다. 영어가 태평양이라면 불어는 대서양을 어장으로 더 갖는 거다. 어장이 클수록 어획량이 많은 거 아닌가. 다양한 생선을 잡을 수 있는 거고. 모두가 태평양으로 몰려나오면 그 어장이 고갈된다. 나중에 ‘대서양에 가볼까’ 하면 이미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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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먼 얘기지만, 정년퇴임 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는가?

아직 6년이나 남았는데. 퇴직해도 변할 게 없다. 학교에 출근을 안 할 뿐이지. 다만 앞으로 젊은이들과의 접촉이 줄어든다는 게 아쉽다. 그래서 이건 순 꿈이지만 어느 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오라든지 그러면 젊은이들과의 접촉을 위해 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오라고 할 리 없지만.『서울대저널』을 읽을 서울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사회 분위기에 주눅 들지 말고, 엘리트 의식을 갖길 바란다. 엘리트 의식이란 게 무슨 기득권 의식이 아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얘기하는 거다. 그게 없다는 게 서울대생이 제일 비난받는 이유다. 사회적 책임감을 잊지 말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서 자기 분야에서 정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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