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다

‘혼자같이’라는 척도로 재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첫째 혼자서도 밖에서 밥 잘 먹는 사람, 둘째 좀 얹히면서 먹는 사람, 셋째 혼자서는 죽어도 밥 안 먹는 사람.그런데 세계적으로 볼 때 유독 우리 한국에서는, 또 그중에서도 젊은 층에서는 둘째 셋째 유형이 상당히 많은 편인 것으로 추정된다.집에서는 혼자도 잘만 먹는데 왜.집과 밖의 가장 큰 차이점은 타인의 있고 없고다.

‘혼자같이’라는 척도로 재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혼자서도 밖에서 밥 잘 먹는 사람, 둘째 좀 얹히면서 먹는 사람, 셋째 혼자서는 죽어도 밥 안 먹는 사람. 그런데 세계적으로 볼 때 유독 우리 한국에서는, 또 그중에서도 젊은 층에서는 둘째 셋째 유형이 상당히 많은 편인 것으로 추정된다. 집에서는 혼자도 잘만 먹는데 왜? 집과 밖의 가장 큰 차이점은 타인의 있고 없고다. 이 타인이라는 존재가 밥 먹는데 크든 작든 어떤 족쇄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마치 “친구가 없.나?”라고 말하는 듯한 타인의 시선과, 그 시선을 미처 받기도 전에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래방은 혼자 가면 재미없다’, ‘놀이공원은 혼자 가면 이상한데’ 등의 금기 아닌 금기가 생기고, 상당수 사람들이 거기에 속박된다. 물론 사람들은 “같이 가야 재밌잖아”라고 이유를 들지만 혼자 가도 충분히 즐길 수도 있는데도 불구, 마음이 끌리거나 사정이 있을 때도 ‘혼자’라는 것은 마음을 접을 만한 충분한 계기가 된다. 처음에 얘기했던 세 가지 유형 중에서는 두 번째에 속하는 기자. 혼자 밥 먹고는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해지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노래방 가기 등등을 로망으로 설정하고 찔끔찔끔 시도해보고 있는, ‘혼자같이’의 척도로 따질 때 나름대로 평균 분포 내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기회에 기사도 쓸 겸 이 ‘혼자’라는 금기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에 몇 가지 일에 홀로 뛰어들었다. 뭐, 사실 따지고 보면 도전이랄 것까지도 없었다. #1. 혼자 고기 먹기 – 그래도 고기는 맛있다 photo15월 26일 금요일, 혼자 밥-노래방-술의 패턴을 기획하고 저녁 즈음 녹두로 나섰다. 혼자 고기 먹기는 ‘학생회관 붐비는 시간에 홀로 밥먹기’가 의외로 싱겁게 끝내버려 새롭게 선택해본 소재. 솔직히 고기가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런데 ‘혼자 먹을 수는 없어’서 사람을 모집하면 또 의견 차가 생겨 협상 끝에 운 좋으면 고기지만 운 나쁘면 생판 다른 스파게티 따위를 먹어야 했던 굴욕도 있지 않나. 그렇지만 혼자 고기를 먹는다면? 일단 양으로는 2인분도 커버할 수 있는 기자는 삼겹살집 앞으로 갔다. 초조한 기분으로 삼겹살집 앞을 10여분 간 서성였다. 아무리 기사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같다는 소심한 생각이 삼겹살집을 마주하니 강하게 들었다. 솔직히 기사로 쓸 만 하지 않다, 별로 고기 먹고 싶은 시즌도 아닌데 이건 돈을 버리는 것이라는 등 별별 고민 끝에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마냥 장엄하게(진심으로) 가게 문을 열어젖혔다. 아주머니께 성큼성큼 다가가 한 말은 “저 여기 혼자..먹을 수 있어요?” 문을 열어 제친 힘에 비하면 지나치게 작은 소리였다. 네 물론이라며 밝게 대답하신 아주머니는 하필이면 나를 가운데 자리로 안내하셨다. 4명 테이블, 그것도 식당 한 중간, 내 앞으로 놓여지는 반찬은 오늘따라 유난히 많아보였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래도 취재라고 느낌을 수첩에 적고, 팬에 고기까지 2인분 얹힌 그 부담스러운 식탁을 촬영하고 있자니 아까 아줌마가 불쑥 다가오신다. “저기 혹시, 삼겹살 장사하세요?!” “어..예 아니요” 말이 더듬어졌다. 아무리 실제에 가까운 기사 취재가 중요하더라도 여기에서 삼겹살집 예비 창업주(게다가 산업 스파이처럼 사진 찍고)가 될 수는 없었다. 사정을 설명하자 아주머니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시며 “아..애들(알바생)이, 저기 혼자 와서 뭐 적고 사진 찍고 그런다고.. 이상하다고 한 번 가보라고 그러더라고..”하면서 허허 웃으시는데 따라 웃고 있었더니 한 마디 더 하신다. “애들이 다 이상하대!” 내가 한 명이라도 일행을 데리고 왔으면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겠지. 같은 짓을 해도 같이 있는 사람보다는 혼자인 사람이 더 이상해 보인다. 또한, 나중에 여쭤본 결과 젊은 층이 많이 오는 곳이라 혼자 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해서, ‘혼자 온 젊은 여성’인 내가 유난히 튀어 보인 탓도 있겠다. 어쨌든 그때는 아줌마의 마지막 말 ‘다 이상하대!’ 소리에(소리도 좀 컸다) 약간 풀이 죽은 채로 고기를 구웠다. 그런데 막상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 분이 나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렸다가 곧바로 한 번 더 본 것(마치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던 것처럼) 빼고는 일행끼리 귀엣말을 했건 어쨌건 내게 느껴지는 시선 압박은 없었다. 다만 나 홀로 ‘혼자 고기를 먹는다’는 다소 주체 못할 현실에 고기를 구울 때 좋아하던 마늘을 올리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방황했을 뿐. 고기가 다 구워지고 몇 점 먹으면서는 차차 노래를 흥얼대면서 쌈을 쌀 정도의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고기는 맛있었다. #2. 혼자 노래방 가기 – 그래도 노래는 즐겁다 혼자 불쑥 노래방에 들어가니 카운터를 지키시던 분이 잠시 기자 뒤에 따라오는 일행이 없나 살피시는 듯 하다 묻는다. “한 분이요? 대학생이세요?” 묻고 값을 치르고 나니 친절하게 또 이렇게 말하시네. “음료 서비스로 드릴게 하나 골라보시겠어요?” 웬 떡이냐는 심정으로 냉큼 음료수를 집어 들었다. 전에도 몇 번 왔었던 곳인데 전에 없던 서비스였다. 한 병이라서 부담 없어서 그런가 씨익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거는 모르겠지만 혼자 노래방 가기는 기자가 적극 추천하는 바다. 음료수 서비스는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혼자 노래방은 그것 말고도 프리미엄이 많다. 일단 진정 자기 취향대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같이 가면 아무래도 분위기 신경 써서 될 수 있으면 활발한 노래를 부르자는 무언의 압박이 작용하지 않는가. 사람 수가 많아질수록 더하고. 그리고 사람 수 많아질수록 자기가 잘 부르는 노래만 불러야 될 것 같은 생각 들고. 분위기 봐서 너무 오바와 너무 안 오바를 조절하게 되고. 그렇지만 혼자 가면 예약하는데 손이 바쁘긴 하지만 ‘예약’과 ‘우선예약’ 적절히 조절해서 자기 기분 따라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부르다 힘들면 꺼도 좋고, 아니면 마이크를 놓고 반주를 들으며 쉬어도 좋다. 간주가 맘에 들면 아무리 긴 거라도 간주점프의 압박을 느끼지 않고 음미할 수 있다.(그래서 기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갔을 때는 절대로 끝까지 들을 수 없었던 한 노래의 간주를 처음으로 완청할 수 있었다.)2절까지 부르고 싶을 때 일행들 눈치보며 어색한 웃음 지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는 선보일 수 없었던, 완전 스타일 망가지는 노래도 시도해볼 만하다. 남들은 혼자 노래 부르면 목에 무리간다고 30분 넣어달라고 하기도 한다지만 기자는 목청이 워낙 좋아서인지 광란의 2시간 반을 보내고도 아쉬움을 남기고 노래에 취해 비틀대며 나왔다. 그래도 쌓인 걸 풀어서인지 개운했다. #3. 혼자 놀이공원 가기 – 그래도 놀이기구는 스릴 있다 집에서 약 20m를 걸어 나오다 문득 신발이 헐렁한 것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귀찮아서라도 가던 길을 그냥 갔을 텐데 오늘은 놀이기구를 탈 때 딱히 신발 봐 줄 사람도 없고 설사 신발이 기구 타다 날라 갔다 해도 같이 찾아 줄 사람 없다는 사실이 내 위기감을 자극했다. 도로 집에 들어가서 딱 맞는 신발을 찾아 신고 나왔다. photo2이전에도 놀이공원에 한 번 혼자 갔었다. 그때는 놀이공원 안의 미술관이 목적이었지만 어쨌든 혼자 놀이공원에 간다는 사실이 묘하게 두려워 *이버에 ‘혼자 놀이공원’으로 검색해본 적이 있다. 지식인들의 세계에 있던 건 “혼자 놀이공원 가는 사람 있나요?”류의 질문에 “예 저번에 본 적 있어요!”류의 답변, 그러니까 혼자 놀이공원 간 사람을 거의 동물원 동물 보듯 신기하게 여기는 시선에 왠지 웃음이 나왔는데. 사실 기자도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람 중의 하나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놀이기구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다. 줄 설 때의 어색함, 마치 쌍쌍파티에 솔로 낀 기분을 견디고 바이킹을 타고, 다음으로 쪼르륵 4명이 타는 기구의 순서를 기다릴 때 기자는 은근히 앞뒤를 두리번거리며 머리 속으로 치열하게 배치 구도를 짰었더랬다. 앞에 2명이 남으면 거기에 끼어서 3명이서 탈 수 있겠구나 이상적인 구도를 기대했었는데 이게 웬걸, 바로 앞에서 깨끗하게 4명이 나가고 다음 순서로 기자가 덩그라니 남았다. 차례를 안내하던 남자직원 분이, 어김없이 발랄하게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기자와 기자 뒤의 일행을 눈짓하며 “몇분이세요?” “두 분?” “네 분?” 물었다. 소심하게 둘째 손가락을 펴며 “저 아뇨. 혼자..”하니 “아..네 혼..”하며 직원 분이 미처 말을 못 잇더니 기자에게서는 시선을 피하며 뒷 일행을 눈짓했다. “같이 타실래요?” 아니 그렇게 물어보면 어쩌나. “예, 같이 탈게요”라고 뒷 일행이 답해줬기에 망정이지. 그래서 3명 일행에 또 가운데에 낑겨 놀이기구를 탔다. photo3photo4photo5그러나 이런 데에 좀 예민하게 반응하는 단계를 지나고 어느 정도 사람들의 시선에 무덤덤해지고 나니 세상이 즐겁다. 소리 지르는 게 어색해서 친구랑 가도 비명을 꾹꾹 참던 기자였는데, 빡센 기구로 한 번 목청이 트이고 나서는 누가 보든 말든 마음껏 느아악 소리 지르면서 스릴을 만끽했다. 혼자니까 맘 내키는 거 타고, 재밌으면 또 타고. 그리고 직원이 “혼자 타실 분-”하면 “네!”하고 밝게 답하면서 티코 주차하듯 쏙쏙 자리 찾아 끼어 앉을 수 있는 넉살도 생기니 기다리는 시간도 줄고.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사진 찍어 달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부탁받으신 분들이 기자가 좀만 더 예민했으면 상처받았을 법한 표정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남의 시선도 웃으며 관조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예민해질 수 있는 부분을 찾자면야 바이킹 탈 때 뒤엣분의 “어머, 혼자 왔나봐” 속삭임, 회전컵을 탈 때 혼자 회전컵 안에 들어있던 기자가 시선을 돌릴 때마다 곁눈이 마주치던 맞은편 남자분, 청룡열차 기다릴 때 대놓고 기자의 옆얼굴을 응시하던 여고생 등등 들 수야 있겠지만 자신이 아무렇지 않으면 됐다. 놀이공원에, 혼자 안 갈 이유는 있지만 못 갈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다 ‘같이 가는 것이 즐겁다’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다만 사고가 ‘혼자 가면 이상하다’로 전환되는 것에, 그 기준으로 개인을 속박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는 물리적으로는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임에도 ‘그걸 어떻게 혼자 해’라고 인식되는 것들이 상당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 사회에서 그 기준은 특히 심하다. photo6정 맘이 불편하다면 혼자 안 해도 된다.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다만 동기들과 같이 간 놀이동산에서, 또는 고등학교 친구와 같이 간 술집에서, 혹은 애인과 간 영화관에서, 혼자인 사람들에 특히 주목하며 새삼 그것을 귀엣말로 확인할 필요는 없겠다. 그것은 혼자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고(물론 신경쓰지 않는 사람도 상당수 되지만) 또 그런 인식이 동시에 자신을 속박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뭔가 하고픈 분께는 어설프나마 조언한다. 혼자인 사람이 생각하는 만큼까지 남들은 관심이 없다. 지레 겁먹고 예민해졌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이제 마음을 좀 열어보자. 같이 가도 즐겁지만, 혼자 가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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