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이 세상에 나온건 300만년 전, 최초의 문명이 나타난 것은 약 1만년 전이다. 그렇다면 석탄과 석유가 에너지로 쓰인 것은 얼마나 됐을까? 석탄이 처음 ‘기록된 것’은 2300년 전, 그리고 석유가 에너지화된 것은 약 100여년 전의 일이다. 인류 전체 역사에서 극히 적은 기간동안에 에너지로 쓰인 석탄과 석유는 이제 단순한 하나의 에너지원에서 지위가 변하고 있다. 한 때 각국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던 ‘돈’의 위치에서 이제는 각국의 정치, 군사적 지위까지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무기’가 되어가고 있다.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악화에 대비한 안정적 석유수급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중국, 일본 등 다른 경제 강국들도 ‘에너지 전쟁’에 나서 최대한 많은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뛰고 있다. 이미 중국은 동중국해의 춘샤오 유전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면서 일본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에서 극동으로 내는 송유관의 노선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경쟁을 벌여왔으며 아직도 그 결말이 나지 않았다. 2년 전에는 군산앞바다에서 대륙붕 탐사를 하고 있던 한국 측 석유탐사선에 중국 군함이 나타나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에너지산업은 대규모의 투자를 필요로 하기에 각국 정상들은 에너지 확보를 위한 정상 외교를 펼치고 있다. 지난 3월에 중국과 러시아 정상이 가진 에너지협력 정상회담이 그 예이다.그렇다면 한국은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국제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는 독자적인 에너지원 확보에 나서는데 중국과 일본보다 운신의 폭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고자 몇 년 전부터 한국이 주도하여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니 바로 동북아에너지협력이 그것이다.동북아에너지협력 구상은 2001년부터 한국의 주도 하에 추진해왔다. 현재 한국 외에 러시아, 몽골, 북한이 참여하고 있으며 정부간협의체와 실무그룹까지 구성한 상태다. 중국과 일본은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각각 전문가그룹을 보내거나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동북아에너지협력, 무엇이 좋은가?동북아에너지협력은 우선 현재 세계 에너지 시장에 새로운 ‘발언자’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새로운 가격 조정자가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동북아 4개국(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은 전세계 에너지 소비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하나의 협의체로 묶이게 되면, 우선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지금까지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면서 유럽이나 미국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왔다. 그러나 동북아가 하나의 ‘에너지 세력권’이 되면 중동과의 협상력이 강화되어 유리한 조건에서 에너지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협력권 내에서는 러시아와 한,중,일이 각각 에너지 공급국과 수요국으로서 안정된 에너지 수급을 유지할 수 있다. 중동원유의 가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에너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역내 국가들로서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이들이 하나의 에너지 협력권으로 묶이게 되면, 동북아 내에서 다른 분야의 협력에 파급효과를 낼 것이라 기대된다. 동상이몽, 서로 다른 목표들협력을 위해 우선되어야 할 것은 각국이 지향하고 있는 에너지 정책의 목표를 파악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에너지 산업을 중앙의 통제에 두려 하면서 각각 동북아시아 및 미국 서해안과 미국 동해안을 겨냥해 송유관을 건설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박용덕 연구위원은 “시베리아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잠재력이 많은 지역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시베리아개발의 재원으로 외국자본을 유치, 시베리아의 에너지원을 개발해 충당하려한다”고 밝혔다. 세계 2위의 석탄생산국이던 중국은 최근 지하자원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지위가 바뀌어 가고 있다. 최근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연평균 15% 씩 증가하는 에너지수입량에 대비해, 중국정부는 러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상대로 활발한 에너지 외교를 벌이고 있다. 위에 언급한 동시베리아 송유관 외에 최근 미얀마에서 중국남부를 잇는 가스관 건설을 시작했으며 러시아와 시베리아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잇는 가스관 부설에도 합의했다. 세계 3위의 석유소비국인 일본의 경우 지리적인 이유로 송유관, 가스관 부설에는 한계가 있기에 대신 해외 에너지원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동시베리아 송유관을 놓고 러시아에 막대한 투자를 제시, 중국과 경합을 벌이고 있으며 시베리아 에너지원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몽골, 북한의 경우 에너지 협력에 ‘통과국’으로서 참가, 에너지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마련하자는데 그 목적을 두고있다.걸림돌, 무엇이 문제인가동북아에너지협력의 초기단계에서는 이들 국가들의 정책에서 공동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국가간의 공통분모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간에 경제력과 경제체제에 있어 상이하며 각자 협력체 내에서 갖는 역할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기존의 양자간 협력에서 다자간협력으로 바꾸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중국과 일본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 “중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양자간 협력을 추구해 왔으며 특히 한국이 주도적 입장을 갖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일본의 경우 자국민 납치 등 북한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 때문에 주저하는 면이 크다. 그 밖에 중국과 일본 간 갈등이나 양자간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의 상실도 동북아 에너지 협력에 참여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다자간 협력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고려대 국제학부 이재승 교수도 “동북아에너지협력은 협력보다 갈등의 소지가 큰게 현실이다. 유일한 공급원인 러시아도 양자간 협상을 선호하는게 현실”이라며 현재로서는 포괄적인 동북아에너지협력은 요원하다고 설명했다.또한 현재 협력체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한국이 향후 반드시 협력에 참여시켜야 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얼마나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역내 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약자이 한국이 협력을 주도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박 연구위원은 “중국과 일본이 협력에 참여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한국은 주도적 위치에서 밀리게 되는데 한국으로서는 중재국의 위치에서 공동체가 잘 운영될 수 있게 강대국들 관계를 조율하는게 가장 적절할 것”이라 평가했다. 이 교수도 “한국의 비중이 높은 가스시장 등에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로 봐서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에너지 협력을 위해 필요한 막대한 초기자본의 조달문제도 협력에 발목을 잡고 있다. photo1동북아에너지협력, 상호 신뢰가 우선아직 초기단계인 에너지협력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현재 설립되어 있는 협력체들을 다양한 연계망으로 연결해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지속적으로 에너지 장관회의가 개최돼온 APEC이나 ASEAN+3의 틀안에서 에너지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또한 큰 틀의 경제적 협력기제, 예컨대 FTA를 추진하면서 그 한 분야로서 에너지 협력을 추진하는 방향을 생각할 수도 있다.결국 원론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지만 성공적인 에너지협력을 위해서는 동북아시아 역내 국가간에 신뢰를 쌓는게 우선일 것이다. 특히 동북아에너지협력의 관건인 중국과 일본이 참여에 주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현존하는 국가간 갈등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 한 에너지협력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또한 포괄적인 에너지 협력이 단기간에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할 것이다. 특히 에너지협력이 가장 필요한 국가가 한국인만큼 중국, 일본 등을 협력에 끌어들일 수 있도록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