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요즘 캠퍼스 곳곳에 빼곡히 붙은 포스터들. 내용을 보니 각 동아리의 신입회원 모집, 공연 홍보 등등 가지각색이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밴드 공연의 포스터들이다. 9월만 해도 서울대 내에서만 여러 밴드들의 공연이 있었다. 그들은 어떤 공연을 하고 청중들은 어떤 공연을 보고 있는가. ‘서울대에서 밴드를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밴드, 그 ‘화려함’ 공중파 방송이니 케이블이니 공연장이니 할 것 없이 밴드들이 넘쳐나고 있다. 유앤미블루로 활동하던 이승열, 언니네이발관, 김C, 불독맨션 등등 인디밴드로 활동하던 뮤지션이 공중파 방송에 데뷔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이렇게 음악계에서 불고 있는 밴드 열풍, 학교 안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각 단대마다 밴드가 있고, 주위에서 밴드를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작년과 올해의 ‘즐거웠던’ 축제에서도 밴드를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 2학기가 시작된 후, 나날이 바뀌는 공연 포스터, 한 번씩 캠퍼스가 울리도록 쿵쿵거리는 학관 라운지의 음악소리는 서울대의 ‘밴드’의 존재를 실감하게 한다. 서울대의 밴드는 몇 개나 될까 그렇다면 ‘서울대에서 활동하는 밴드는 총 몇 개나 될까?’ 날마다 부딪치는 공연 포스터, 회원 모집 포스터와 팜플렛 등을 한번쯤 본 사람이라면 이 궁금증은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정작 서울대 밴드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동아리로 등록된 밴드부터 각 단대에서 활동하는 밴드, 특별한 구속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밴드, 그때그때 결성되는 프로젝트밴드까지, 밴드의 성격과 생겨나는 방식이 워낙 각양각색이라 공식적인 집계는 불가능하다. 대충 감을 잡아보자면, 봄 대동제 때 따이빙굴비에 지원했던 18개 밴드와 두레문예관에서 연습실을 빌렸던 약 20개 밴드 등, 40여개의 밴드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기자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은 밴드들까지 모두 합한다면 70-80여개 밴드가 서울대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양적인 팽창 면에서는 화려함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하다. photo2이처럼 고등학교 때만 해도 학교당 한 두 팀 정도 있던 밴드가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의과대학 밴드인 메직에서 드러머로 활동 중인 나권중(03, 의예)씨는 “고등학교 때 입시에 시달리면서 하지 못했던 취미활동으로 대학에서 밴드를 택하는 친구들이 많죠. 악기도 배우고 공연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또 밴드가 멋있기도 하잖아요”라며 털어놓는다. 또한 “‘서울대 학생들은 잘 놀지 못할 거야’ 라는 사람들의 선입관을 깨보려고 더 오기를 갖고 연습하기도 해요”라며 멋쩍게 웃는다. ‘세버네이지’라는 그룹에서 활동하는 남훈곤(04, 경영)씨의 경우에는 “음악 자체가 너무 좋고, 모든 걸 잊고 드럼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좋다”며 밴드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이 공통적이라면 그 외에 혼자 연주하는 것보다 합주를 통해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더 크다는 세부적인 의견, 대학생활에서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아서, 운 좋으면 인기와 팬도 생길 수 있다는 밴드의 ‘멋’에 대한 선호 등, 밴드 수만큼이나 밴드를 하는 이유는 다채로웠다. 계속 이어지는 밴드 공연 99년 학내 밴드들을 위한 ‘따이빙굴비’라는 파격적인 행사무대가 생기면서, 이 자리를 통해 지금까지 많은 공연들이 이루어졌다. 이 행사는 학내 문화 단위를 본격적으로 주체화시키면서 축제의 당당한 메인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은 바 있다. 하지만 밴드들의 공연 욕심은 단순히 한 번의 무대만으로 충족되지는 못한다. 그들의 공연에 대한 열정은 신림동의 클럽들이나 학관라운지, 두레문예관 등에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9월 한 달 동안 공연을 연 밴드만도 8팀에 이른다. 밴드, 화려하지만은 않다? photo3하지만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겉모습만이 밴드의 전부는 아니다. 그 이면에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우선 많은 밴드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학기 광합성놀이터에서 ‘따이빙굴비’를 기획했던 잔디씨는 “밴드들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것에 비해 그 수준은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물론 취미로 하는 밴드활동이긴 하지만 그 음악적 수준이 하향평준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밴드의 곡을 따와서 연주하는 카피 밴드가 밴드를 시작하는 첫걸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카피에서 그치는 것은 각 공연의 레퍼토리를 비슷하게 만들어 밴드의 개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고건혁(총학생회 문화국장)씨는 “카피밴드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관성적인 내용이 아닌, 학생들 자신의 정서나 생각을 반영하는 창작곡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하며, 현재 서울대의 밴드들은 개성이 부족하다며 비판했다. 또한 “질 높고 개성 있는 음악을 위해서는 자신의 표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밴드들의 기획력의 부재 음악을 하는 밴드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음악성이겠지만, 밴드는 공연을 통한 청중과의 소통 또한 경시할 수 없다. 청중과의 소통을 위해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청중이 공연을 끝까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요즘의 밴드의 기획력의 부재는 심심찮게 지적되고 있다. 잔디씨는 “밴드로 활동하면서 ‘이번에는 어떤 컨셉으로 어떤 공연을 펼쳐보자’ 하는 고민 없이 단순히 연주곡들을 나열하기만 하는 것은 완성도 높은 공연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나 대학 내 아마추어 밴드 같은 경우는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위해 멘트 하나하나, 곡의 진행 순서까지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한 연출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건혁씨 역시 “어떤 밴드들은 철학적 색깔이 전혀 다른 두 밴드의 음악을 이어 연주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공연의 일관성에 대해 고민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전체적 공연의 기획력이 부재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연은 ‘같이 놀자~’라는 의미의 포스터 문구가 무색해진다. 같이 놀기는커녕, 밴드만 즐기는 공연이 되기 일쑤고 관객은 공연을 준비한 밴드의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영화가 재밌어야 관객이 늘 듯, 공연이 재밌어야 청중이 는다. 좀더 많은 청중들과 호흡하고 싶은 밴드라면 자신들의 음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시점이다. 학교 측 지원에 대한 아쉬움 교내에서 밴드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학교 측의 지원이 확대되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동아리 연합회에 등록된 동아리의 경우 일정액의 보조금이 나오긴 하지만 공연장을 빌리거나 홍보물을 작성하기에는 보조금이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라는 말이 많다. 그리고 학내 문화 활동을 위한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이 넓은 관악의 수십 개 밴드가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은 학관 라운지와 두레문예관, 단 두 곳뿐이다. 이러한 학내 상황 때문에 대부분의 밴드들은 이 좁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거나 학외 클럽을 전전하고 있다. 물론 학관라운지를 보수하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절대량이 부족한 만큼, 밴드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연습실과 무대를 위한시설에 대한 노력도 요구되고 있다. ‘꼬물꼬물’ 밴드계의 움직임 photo4이러한 밴드 활동의 열악한 상황과 그 현실에 대한 비판 속에서도, 서울대 밴드계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올챙이마냥’ 새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자가생산형 밴드를 들 수 있다. 요즘은 첨단 장비의 발달에 따라 개인의 컴퓨터로 한 곡을 뚝딱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밴드는 덩치가 크다보니 활동에 버거운 단점이 있어, 개인 단위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3집을 내게 되는 ‘뺀드뺀드짠짠’에도 개인의 창작곡이 주류를 이룬다고 하니 이 흐름은 눈여겨볼 만 하다. 물론 자가생산형 개인밴드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밴드들을 대체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수용자가 즐길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우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어내기 위한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고건혁 씨는 “따이빙굴비가 단순히 학내밴드의 공연을 나열하고 학우들의 호응을 얻는데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이번 가을 축제 때에는 하나의 일관성을 가진 무대를 기획하고 있다고 살짝 귀띔했다. 학내밴드 중 컨셉에 맞는 밴드를 심사를 거쳐 뽑고, 학외에서 인정받는 인디, 메이저 밴드들을 초청해 좀더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어떤 공연이든, 어떤 활동이든 간에 스스로의 만족만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예는 희귀하며,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그 가치가 완성된다. 이 타자와의 소통을 무시한 채 이루어지는 활동은 허공의 메아리가 되며, 재미를 찾기도 힘들다.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어지는, ‘미칠 정도’로 즐길 수 있는 밴드, 그들의 공연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