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증의 미래에 대한 합의회의’ 라는 길 다란 제목을 큼지막한 궁서제로 박아 넣어, 무엇 을 얄리고자 하는지 그 의도 하나는 확실하게 어 필하는 A4 한 장. 그것을 받아들게 된 건 보통 리풀렛이 배포되는 장소인 셔틀버스 앞이나 학관 앞 따위의 공간에서가 아니라 서울대저널 편집실 에서였다. 보기 드문 후덕한 미소로 얼굴 가득한 편집장이 내 손에 리플렛을 쥐어주며. 이번 달에 는 ‘참가기’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 이다 원래는 즉석에서 답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였다. 기사꺼리로서 시의적절하고, 소재에 대한 개인적 관심도 있었지만, 기사를 쓰기 위해 굳이 ·주최 측’ 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부담까지 젊어져야 할 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만만치 않은 일 정에, 하루는 수업을 빠져야 했다.) 기사가치인 가. 기회비용인가? 양자 간의 미세한 저울질을 시 도하는 찰나, 껏가에 들려온 한 마디가 저울추의 균형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패널 하게 되면 돈도준대요” 합의회의가 뭔데? 특별히 이쪽으로 관심이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패널’ 이나 ‘합의회의· 라는 용어에 대해 생경함을 느끼는 것이 아무래도 일반적인 반 응일 게다. ‘합의’ 라는 단어와 ‘회의’ 라는 단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어이지만, 이들을 합성해 만든 ‘합의회의’ 라는 새로운 단어는 웬지 익숙하 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합의하 는 회의’ 정도의 돗이 아니라, 좀 더 제한된 사회 적 의미를담는다. 합의회의는 1990년대부터 유럽에서 확산되기 시 작한 기술영향평가의 한 방법이다- 사회적으로 논 쟁이 되는 과학과 기술적 문제를 주제로 하여, 보 통 시민을 중심으로 꾸린 패널(배심원의 의미에 가깝다) 집단 내에서 토론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로서 작성된 합의문을 정책결정의 중요근거로 삼게 된다는 점이 합의회의의 주요한 특정이다 토론을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의 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사전에 거치며, 그 전문가 들의 답변을 시민패널들은 내부의 토론을 거쳐 평 가하고, 판단의 근거로 삼게 된다. 여기서의 커워드는 ‘시민’ 이다. 과학기술에 관련 된 정책 결정을 ‘시민’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합 의회의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이 ’시민1들이 라는 게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예컨대, 시장에 서 야채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나, 택시를 운전하는 할아버지와 같은 이들도 이 범주 내에 들어간다. 이를 이른바 ‘전문가’ 들이 모여 앉은 밀실에서 이 루어지는 한국의 과학기술 관련 의사결정과정과 비교해 보면, 합의회의의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합의회의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판단 에 있어 과학자, 전문가, 공무원, 이해당사자들보 다 일반 시민들의 평범한 지식이 더 유효하고 중 요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전제로 한다 예컨대, 핵 폐기장의 부지를 선정하거나, 좀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에너지정책의 전반적인 방향을 결정할 때. 시 민들을 모아 놓고 토론을 진행한 후 그들이 도 출한 견해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면, 최근의 부안 사태와 같은 사회적 갈등을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합리성까지도 제고할 수 있다 는 식이다. 이러한 진보적인 의사결정방식은 덴마 크와 네덜란드에서 활발히 추진되어 왔고, 현재는 스위스,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도 시 행되고 있다. ’서울대 학생증의 미래에 대한 합의회의’ 몇 년째 논란이 되고 있는 S-Card 문제를 주제 로 ‘서울대 학생증의 미래에 대한 합의회의’를 연 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자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언젠가 관련서적을 읽은 후, 이런 민주적인 제도가 한국에 제대로 도 입되려면 59267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라며 자조하던 기자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바로 지금 이곳 서울대에서 합의회의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단순 한 형식치레가 아니었다. 열었다는 자체에 의미블 두는 수준에 불과했던 이전의 국내사례와는 달리, 이변 경우는 정책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대 학본부)이 그 개최하는 ‘진짜1 합의회의였다. 게다가 이번 합의회의는 ‘학생이 학교행정에 참 여하는 최초의 사례’ 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총학이 열심히 싸워서였는지, 본부관계자가 도장 을 잘못 찍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간에 학교행정에 있어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했던 적이 없기로 유명한 대학본부가 학생증 문제의 결정을 학생들의 손에 직접 맡겨 벼린 것이다, 이 정도면 ‘참가기’ 의 무대가 될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합격이 장난이 아닌데 .. – 패널은 어떻게 선정되는가 기사를 써내기 위해선, 그 무대장치 뒤로의 잠입 에 성공해야 한다. ‘학생패널’ 이라는 배우가 돼야 무대 뒤를 구경할 수 있고, 기사화할 수가 있다 배우가 되기 위해, 기자는 극장의 주인을 찾아갔 다. 공대 전기공학부 96학번이었고, 지금은 대학 원을 다닌다는 준비팀장 이종민 씨. 당시만 하더 라도 열악했던 인력 상황 때문에 준비 팀 일을 거 의 혼자 책임졌기 때문인지, 상당히 피폐해(7) 보 이는 얼굴로 그는 말했다. 패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지원서를 제출해야 하고, 면접 절차를 거쳐 야한다고. 지원서와 면접에서 받은 질문은 거의 비슷했다. 신상명세, 지원 동기, 학생증과 S-Card 통합에 대한 견해, 준비팀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이었고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했던 답안을 제시했다. 그 런데 그런 노력이 전혀 쓸모없는 것이었다는사실 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패널 선정에 있어 핵심적 목표는 똑똑한 지원자나 준비된 지원 자의 선발이 아니라, 패널 집단의 다양성 확보에 있었다. 좀 더 부연하면, ‘찬반/성별/단대/학번 등의 기준을 고려하여 최대한 편중되지 않은 다양 한 이들을 포함시 거는 방향으로 선발한다’ 는 것 이 패널선정 원칙이었다. 한 마디로, 자신과 비슷 한 지원자들이 많으면 불리했다. 그런데 ‘반대 의 견을 가진 공대 고학번 남학우’가 대거 지원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최악의 조건을 맞이한 셈 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불합격을 통보하는 전화가 걸려왔고, 기사는 존폐여부를 둘러싼 위기 를맞이했다. 나중에 개인적 사정으로 중도포기를 선언한 패 널 한 명이 생겨, 그를 ‘맴빵’하는 것으로 상황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교훈 한 가지를 배우기 위해 비싼뱃가를치를뻔했다 “합의회의 패널이 되고 싶은 자여, 튀는 표본이 되어라. 튀고 또 튀어라” 준비회의 이모저모 학생패널들이 참가한 첫 행사는 10월 11일에 열 린 준비회의였다 준비회의에서 가장 먼저 진행된 일정은 패널, 준비팀 등 참가자들에 대한 소개였 는데1 소개 도중 아는 열굴들끼리 서로 알아보고 미소짓는다. 패널 중에 현재 학내언론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합의회의라는 소재에 대한 학내언론의 관심을 반영한 것인지, 14 명의 패널 중에 서울대저널 기자가 2명이었고 SNUNOW 전 편집장과, 이공대저널 기자도 있었 다. 준비팀원 중에는 교지관악 편집위원도 있었으 니, 대학신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악언론이 이 자리에 모였다고도 볼 수 있었다. 과장을 조금 섞 으면, ‘기자가 판치는 합의회의’ 라고 불러도 무방 한수준이었다. 언론인이 많다는 것 외에도, 학생패널 내에서 공 대와 자연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 또한 푸렷한 특정이 었다. 전공과 관련한 주제에 대한 관심이 그 원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의 학내행사에서 저조하기 이를데 없는 이공계열 학부생들의 참여율에 벼하면, 이번 합의회의에 대 한 이공계열 학생들의 참여도는 지극히 높은 수준 이었다. 참가자 소개가 끝난 후, 합의회의 제도 전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이번 합의회의의 준비과정 과 전체 주제에 대해 개괄하는 것을 끝으로 서론 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이 마무리되었다. 본격적인 라운드가 시작되는 건 이제부터였다. 필요한 것은 토론이었다 합의회의에서, 준비회의란 원래 본회의에서 다 룰 질문의 문항들(ex: 학생증의 기능은 무엇이어 야 하는가?)을 선정하는 것을 주요 작업으로 한 다. 그 질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논점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에 도웅을 주기 위해 각 단체들은 스스 로의 입장을 제시한다. 패널들은 그것을 모두 듣 고, 이후에 별도의 공간에서 이어지는 패널 간 자 유토론을 통해 질문안을 확정하게 된다. 이번 준 비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한 단체는 총 8개로, 대학 본부 학생과, 반감시모임 뒤통수, S-Card 발급 주제이자 재정을 담당하는 농협, S-Card의 기술 적 지원을 담당하는 심트라, 총학생회, 대학본부 내 정보화본부, 생협, 생협 학생위원회였다. 같은 사안에 대한 다른 입장들을 차례로 접하며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건, 논의의 장이 열린다는 것 자체가 가져다주는 힘이었다. 각 단체가 제시 하는 입장은, 이전까지 흔히 보아 왔던 ‘우기기’ 의 수준이 아니었다. 거친 논리가 아닌, 세련되고 다듬어진 논리들이 등장했다. ‘토론은 이래서 하 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논의의 수 준이 높았다 힘과 힘의 대결이 아니라, 토론의 장에 던져져 논리와 논리의 대결을 해야 하고, 그것을 다른 누 군가에게 심판받아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각각은 자신의 주장에 합리성을 담보해내기 위해 고민하 게 된다.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게 되며, 그만큼의 세 련됨을 확보할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은 S-Card 를 옹호하는 측의 입장을 들을 때 특히 강렬하게 느껴졌는데, S-Card의 사용확대가 가져오는 긍 정성에 대한 설명이 예상과는 다르게 상당한 설득 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증과의 통합 여 부를 논외로 하자면 그러했다J 실제로 기자 본인 뿐만 아니라, S-Card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 지라곤 입학과 동시에 선배들에게 받았던 유인물 에 쓰여 있던 내용 별 쓸모도 없이 개인정보만 유출시키는 골칫덩이. 학생들을 기만하여 개인정 보의 집적을 노라는 빅 브라더 등등 – 이 전부였 던 상당수의 학생패널들이, 설명을 들은 후에는 S-Card 사용확대 자체의 긍정성을 대부분 인정 하게 되었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그 동안 본부와 농협 측이 S Card 사용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주로 채택했던 ‘학생증과 S-Card의 강제적 통합’ 이라는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보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 기할 수가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16000명을 넘 는 카드를 사용자들 확보하기는 했지만, S-Card 의 실사용률 자체는 매우 낮은 상황이다. S Card의 사용확대를 위해 그들이 했어야 하는 것 은, 토론자리에서 보여주었던 이런 설득력 있는 선전 ‘ 홍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학생들이 강제 적으로 S-Card를 발급받게 하려는 무리한 접근 방법이 결과적으로 S-Card, 본부, 농협에 대한 학생사회의 불신만 가중시켰다는 사실이 시사하 는 바는 작지 않다. 그들이 합의회의에서처럼 학 생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시커고 설득하려는 태도를 좀 더 일찍 취하지 않았던 것은 매우 아쉽 다. 본회의, 전문가들과 함께 시작하다 준비회의가 열렸던 날로부터 닷새 후인 16일, 본 회의가 열렸다, 16일이 축제 휴강일이었기에 본 회의 일정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거의 ‘하루종일’ 에 가깝도록 내정되어 있었다. 그도 그 럴 것이, 보통 합의회의는 2박 3일 정도의 시간 동안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얀데, 이번 합의회의는 학생이라는 패널들의 신분을 고려해 1박 2일로 줄 여 잡았으니 그만큼 더 압축적인 일정이 되는 것 은불가피했다. 본회의에 내정된 시간 중 대부분은 전문가패널 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할당되어 있었다. 합의회의 의 본질은 학생패널 간 토론의 결과에 의해 합의 문을 도출하는 것이지만,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의 학생패널들에게 무작정 토론을 시키고, 그 결 과를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패널은 기본적으 로 비전문가인 만큼,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토 론에 임하기 전에 주제어1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 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패널들을 초 빙하며‘ 그들은 학생패널들에게 주제어1 관한 자세 한 설명을 하고, 자신들의 견해를 충분히 알려주 는역할을맡는다. 이번 합의회의에서는 정보화 혹은 정보 인권이 라는 분야에서 상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 이틀이 패널로 선정되었다. 개인정보분쟁 조정위원회, 한 국전산원 정보화지원단‘ 지문날인 반대연대,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카이스트 지식기반전자 정부 연구센터 등 화려한 경력을 지난 패널들이 대거 초빙되었다. 실제로 이들의 발제, 답변의 전 체적인 수준은 준비회의에서의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였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들의 발언에서 느껴지는 연구의 갚이는 작은 학술대회를 연상시 겼으며, 쉬운 설명으로 주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 이는 것에 있어서도 별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대부분의 전문가 패널 이 애초에 주어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함으로써 논의시간을 크게 늘렸다는 점이 조금 아 쉬웠을뿐 그 길었던 26시간 길었던 전문가패널과의 대화를 끝내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학생패널들은 중앙전산원 3층으 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토론이었다 단 순히 학생증 통합에 관련해 어떠한 결론을 낼 것 인지의 문제뿐만 아니라, 토론의 절차에 관련한 기본적인 사항부터를 패널들 스스로가 정했다 사 회자를 누구로 선출할 것인지, 패널 내에서의 합 의란 무엇으로 정할지(만장일치인지 다수결인지), 토론의 시간은 어떻게 한정할 것인지 등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학생패넬들이 결정했다. 학생패널이 내렬 결정의 독립성과 권위를 형성하기 위함이란 다. 막상 토론의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의외로 상황 은 종결이 쉬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입장 없음’ 이 가장 많았던 패널 모집 당시의 상황과는 달리, 학생증 통합에 대한 패널들의 의견이 ‘반 대’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것이다. 세부적인 입장 을 둘러싼 차이는 존재했으나, 대다수의 패널들 은, 학생증 발급과 농협 계좌 개설을 연동시켜 처 리함으로써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 개 인정보를 금융권에 제공하게끔 만드는 행위는 프 라이버시권에 대한 침해라는 견해에 동의하고 있 는 상태였다. 사실 합의회의는 이러한 결과에 대 한 기대에 기반해 성립한다고 한다. 충분한 시간 동안 이성적인 토론을 진행하면, 그 결과 합리적 인 결정 쪽으로 많은 이들의 견해가 가울어질 것 이라는 기대. 이후 계속되는 토론을 통해 세부적 인 입장 차이를 좁히고 나니, 결국 학생증과 sCard를 분리하고. 학생증은 장기적으로 RF 카드 화하는 방향으로의 합의가 도출되었다. 힘든 고개를 하나 넘으니 시간은 이미 새벽 1시 를 념어가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아직 끝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 작성이 기다리고 있었 다 이제까지 이룬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자 회견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글로써 담아내야 했는 데, 이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다들 아침부 터 14~15시간 통안 계속한 고도의 정신노동으로 축적된 피곤이 한계치를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퉁퉁부은눈과초훼해진 얼굴로 버티던 패널들의 대부분은 결국 근처에 놓인 소파에 누워 신문지를 대강 덮고 자다가, 적당한 때 다시 일어나서 작업 을 재개했다. 소모라는 단어 외에는 딱히 어울리 는 표현을 찾기 힘든 실천을 집단적으로 계속한 끝에, 결국 정오에 임박해서야 완결된 형태의 합 의문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장장 26시간의 노 동을 한 끝에 탄생한 결정체였다. 썰렁했던 기자회견, 그러나 … 합의문을 부랴부랴 인쇄해서 기자회견장으로 뒤 어갔지만, 기자회견이라고 해서 거창한 무언가를 예상했던 패널들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한 국에서 정책결정기관이 개최한 최초의 합의회의’ 라는 의의가 무색하게도, 기자회견장은 썰령하기 그지없었다. 마침 그 날 비슷한 시기에 법대 모 교수의 의문사 관련 기자회견이 있던 이유로, 서 울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대부분은 그 쪽으로 발 길을 돌린 상태였다. 취재를 온 언론은 inews24 라는 인터넷 언론과 SNUNOW가 전부였고, 그 외의 방문객은 모두 본부와 농협에서 온 이들이었 다. 심지어는 합의회의의 기사 후원을 약속한 대 학신문조차도 휴간을 이유로 취재기자를 파견하 지않았다. 언론의 전반적인 무관심 가운데서, 기자회견까 지 자리를 지켰던 패널들을 그나마 위안했던 한 가지 사실은, 대학본부와 총학생회가 합의회의에 서 내린 결론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 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정말로 현실화 되었다 현재 대학본부는 합의회의의 결론을 수용하여. 학생증과 S-Card를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는 입장을 밝힌 상태이다. 이 정도변, 26시간의 노동은 분명 의미 있는 1소모1였던 셈이다. 노력은 결국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합의회의를 학교 담장 너머로 앞서도 언급했듯이, ‘서울대 학생증의 미래에 대 한 합의회의’는 단순히 서울대 학생증만의 문제 는 아니었다. 이번 합의회의는 집단의 정책결정과 정에 있어, 구성원들의 견해를 어떠한 방식으로 도출해 내고. 어떠한 방식을 통해 반영해야 하는 지에 대해 하나의 유의미한 모텔을 제시했다는 의 의를 지닌다. 최근의 부안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 처럼, 공론화와 토론에 의한 의사결정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 이는 서울대가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과연 어떠한 메시지 인가? 합의회의 결과보고서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다음과같다 “의사결정의 신속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성원 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절차와 설질에 있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결정은 민주적 원칙에 위배될뿐더러 결국 구 성원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