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치가 인맥과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최근 서울시 의원 경선에 참가했던 o 후보(여성)는 이를 다시금 절실히 느꼈다. 상대 후보(남성)를 도와주던 한 상무의원이, 자신의 인맥 하에 있던 사람들을 대거 대의원으로 추천하여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여성후보, 경선이 싫다? 6.13 지방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에서 이 같은 이유로 떨어진 여성정치인은 부지기수다. 올해 2월 여성할당제가 각 당의 권고사항으로 채택되자 여성계는 올해야말로 여성정치의 원년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선의 결과는 참담했다. 할당제 규정인 30%는커녕 98년보다도 못한 2%대의 여성만이 당의 공천을 통과한 것이다. 이에 여성정치연대, 한국 여성단체협의회, 여성단체 연합 등은 광역의회 비례대표 의석을 100% 여성에게 할당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나 그 파급력을 확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당내 민주화의 진전을 위해 획기적으로 도입된 경선 제도가 오히려 여성의 정치참여를 가로막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현재의 비민주적 정치구조가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충남대 사회학과 장하진 교수는 특히 남성중심의 밀실정치가 여성을 정계 밖으로 밀어낸다고 말한다. 현재 지구당위원장은 중앙의 핵심인사가 낙점하고 있다. 정당의 근간이 되는 지구당을 중앙의 인사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다보니 정치인으로서 ‘뜨기’ 위해서는 총재 측근이나 가신무리와 가까워지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인맥에 의한 밀실정치에서 여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여성정치인이 전문성, 개혁성, 득표력 등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공정하게 비교 평가하는 기반이 없는 것이다. 고비용 선거구조 역시 여성을 정계에서 몰아내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당이 당비로 운영되지 않는 현재 구조에서는 지구당위원장 혼자서 건물비, 유지비, 인건비 등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며 그 돈은 한 달에 최소 국회의원 월급의 몇 배를 호가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뒷거래가 성행하게 되는데 여성정치인은 기본적으로 남성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정경유착의 끈도 없기 때문에 자연히 밀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정치 상황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경선을 실시하다보니 결과적으로 ‘합법적으로 여자를 주저앉히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왜 여성정치인인가? 그러나 경선 결과에 실망하는 곳은 여성 운동계 뿐이다. 한국 사회는 다른 분야에 비해 정치 분야에서의 성차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치는 여성과 관련이 없는 부분으로 간주되거나 여성정치 참여는 여성들만의 과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 김영옥 사무국장은 생물학적, 정치적 대표성을 지닌 여성이 정치에 참여해야 여성의 삶이 향상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이야말로 여성의 겪는 문제를 이해하고 이를 위해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양시, 양천구 쪽에서 여성의원들이 여성기금마련을 위해 애썼던 예를 들면서 “보육, 출산 등과 같은 여성 문제에 발벗고 나서는 남성의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 말한다. 이는 올해 지방선거에 나서는 여성후보들의 공약에서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많은 남성의원들이 지역개발이나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면 여성정치인들은 보육이나 출산, 지역의 환경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그는 여성정치세력화의 문제가 단순히 여성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문제를 넘어서, 현실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재 지방 의원들을 보면 대개가 지역에 이해관계를 가진 5~60대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대개 돈과 조직을 가지고 있는 지역 유지들로 기득권 세력과 야합하여 지역 정치를 주무른다. 반면 지역선거에 나서는 여성들은 대개 지역운동을 하다가 정치 공간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껴 정치에 입문했거나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선거에 나선다. 나는 이들이 인맥과 돈으로 얼룩진 지역 정치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고 말한다. 치마만 두르면 다 찍어라? 그러나 여성 정치 세력화의 당위성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여성후보를 찍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정치인이 여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기층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개혁적인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지극히 보수적인 박근혜 씨나 비리 사건에 연루되는 등 남성정치인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기존 여성정치인들의 모습을 볼 때 이 같은 생각이 기우라고만은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각각 다르다. 최보은 씨처럼 여성의 이해에 기반한 여성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여성운동을 진보성의 틀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최소한의 여성정치참여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기존의 여성 정치인들이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것은 워낙 적은 수의 여성참여만이 허용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 중의 극히 일부만이 정치에 참여하는 데다 이들 중 중앙당의 핵심권력과 가까운 사람들만 요직에 오르다 보니 진보적 여성정치인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여세연의 김영옥 사무국장은 비록 계층간의 차이가 있지만 여성으로서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문제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를 위해서 많은 여성의원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중앙정치에 비해 여러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 정치의 경우 많은 여성들이 지역에 기반한 진보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례로 고양시의 러브호텔건립반대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한 여성의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무관한 정치, 경제적 이슈에 치중하거나 무조건적인 개발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주민의 일상적 삶을 보다 편안하고 인간답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불합리한 정치구도와 성차별을 극복하고 여성의 정치참여를 당위적 차원에서 보장하고 나아가 진보적 여성정치인이 보다 활발히 정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할당제, 권고조항이 아닌 강제조항으로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사무국장 김영옥 씨에 따르면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여성 자신의 의식 전환이다. 여성 스스로가 정치 세력화 필요성을 자각하고 정치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세연에서는 이를 위해 여성들도 직업으로서 정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초, 중, 고, 대학생 여성들을 대상으로 정치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에게는 선거 참여를 넘어 선거 운동 자원활동을 권한다. “현재 여성정치인들의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자원활동가의 부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힘들다. 의식 있고 헌신적인 학생들이 많이 필요하다.” 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론 여성 스스로의 의식 전환 못지 않게 제도적 보완 역시 중요하다. “무엇보다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는 할당제가 권고조항에서 강제조항으로 바뀌어야 한다.” 권고조항의 한계는 이번 경선 결과에서 분명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 정치 문제를 지구당에만 맡겨두어서는 안되고 중앙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얼마 전부터 헐리우드 영화에 드문드문 흑인 대통령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에서 여성대통령이 등장하기까지는 몇십 년이 걸릴까? 더욱이 그것이 현실화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2%가 못되는 여성 의원만이 당내 공천을 가까스로 통과하는 현재의 상황은 여성 스스로의 주체적인 노력과 사회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