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볼 만한 팬클럽?

정치인 팬클럽 그 바람이 분다.남한 사회에서 그 역사를 민중이 주도해서 바꾼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그만큼 일반 민중은 남한의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1960년 4월19일, 1980년 5월18일, 1987년 6월항쟁에서 민중은 역사에 전면에 나섰지만, 그 결과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지금 2002년 양대 선거에서 민중의 역사가 다시 한번 그 실체를 드러내려한다.

정치인 팬클럽 그 바람이 분다. 남한 사회에서 그 역사를 민중이 주도해서 바꾼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일반 민중은 남한의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1960년 4월19일, 1980년 5월18일, 1987년 6월항쟁에서 민중은 역사에 전면에 나섰지만, 그 결과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지금 2002년 양대 선거에서 민중의 역사가 다시 한번 그 실체를 드러내려한다. 우리가 나서면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겠다’고 나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필두로 하여, 부패척결을 얘기하는 ‘깨끗한 손(이문옥 서울시장 후보 지지, 이하 깨손)’등이 그 얘이다. 노사모는 지난 3.16일 민주당 광주 국민경선을 시작으로 ‘노풍(盧風)’을 불러일으켜,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되는데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고 깨손은 부패추방의 의지를 모아 아래로부터의 추천에 의해 이문옥이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가 되게 했으며 옥풍(玉風)을 준비하고 있다. 선거관리법상 위 단체들의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체 선거에서 직접활동은 저촉되지만, 인터넷을 통한 이들의 활동은 분명히 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팬클럽 그 시작은…… 서울대저널 4월호에서 전순옥 선생님이 “70~80년대에서부터 잠재되어있던 사회개혁의 열망이 시민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라고 하신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또한 노사모 회원 김남수씨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학교를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은 아니에요. ……(중략)……평범하게 공부하고 직장생활 하죠. 술 먹고 정치 욕하는 그런 평범한 생활이었거든요. 그러나 변화에 대한 생각은 있었어요. 왜 직장에 들어가고 나니까…..때가 묻는다고 표현하죠. 그런 것에 대한 갈등을 가지고 있다가, 우연찮은 기회에 딴지일보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여태껏 속고 살았나 생각했죠.” 사회개혁에의 열망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한 형태가 정치인 팬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열망이 인터넷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드러났고, 그 열망이 현실에서 선거라는 공간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팬클럽 어떻게 굴러가나? 현재 노사모는 그 회원수가 40000명을 넘어섰다. 3.16광주경선을 계기로 급격히 증가한 결과이다. 깨손의 경우는 지금 회원수가 400여명이며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둘 다 인터넷을 매개로 해서 온라인 활동과 회원들간의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온라인 상에서 자유롭게 토론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의견은 언제라도 개진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원하지 않는 활동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강제도 없어, ‘동질성의 폭력’을 지양하기도 한다. 조직구성의 경우 노사모는 회원들의 전자투표로 대표일꾼을 뽑고, 각 지역마다 지역의 대표일꾼이 있다. 대표일꾼들의 회의에서 문제가 되는 안(案)들의 최종결정이 내려진다. 깨손의 경우 “우선은 대표라는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통제가 불가능하죠. 개인에 대한 통제뿐만 아니라 당에서도 저희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거죠.”라고 대답해주신 한 회원의 말처럼, 완전히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누구나 마음대로 일주일에 2번씩 열리는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고, 거기서 내려진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법이다. 정치인 팬클럽의 가능성….현재의 한계 “나는 그러한 견해가 노사모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노무현의 발견으로부터 촉발되는 정치적 ‘나’의 각성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노사모 회원 노혜경씨의 말이다. 정치인 팬클럽을 맹목적인 팬클럽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나,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인물중심의 정치단체로 한계 짓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또한, 노사모의 가능성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서 “정치참여의 훈련을 하고 있다. 아까도 얘기를 했지만 투표에만 참여하는 사람들이 수동적인 사람들이 누굴 찍던 관계없다. 라는 생각이 바뀌어 간다. 상당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라고 김남수씨는 대답한다. 우리가 정치인 팬클럽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제(諸)단체들은 어느 보수(?) 논객이 비판한 것처럼 광신도나 흥사단이 아니다. 건전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생각을 논의하고 혹은 실천을 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분명한 한계도 가지고 있다. 정치인 개인에 대한 감동에서 혹은 그 인물에 대한 믿음에서 그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정치인이 팬클럽이 가지고 있는 기대치에서 벗어났을 때, 그 한계가 나타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명확한 선긋기가 불가능한 정치라는 공간에서 그 후보에 대한 명확한 비판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 5월 13일에 있었던 노사모 대표일꾼 명계남씨가 기자회견에서 “盧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보인 경우가 있나.” “그런 적 없다.” “앞으로도 비판 계획이 없나.” “그렇다.” 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후보가 기대치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는 것이 그 모임의 존립요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그 후보에 대해서 실망을 한 회원들이 많아지면, 그 수만큼의 사람들이 팬클럽에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완벽한 선거조직이나 정치조직이 될 수는 없다. 당도 될 수 없다. 그것이 한계다. 자발적이라고 하는 면들이 구성원들을 보면 알겠지만 자신의 생업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것이 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김남수씨의 말처럼, 완전한 정치조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역할에 한계가 분명하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앞에서 얘기되었듯이 자발적인 참여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정치인 팬클럽은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 방향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노혜경씨의 말처럼 “정치적 ‘나’의 각성”을 통해 우리가 직접 참여하겠다는 모습에서 ‘진보’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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