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Mayday(노동절)이다. 1889년 7월 14일 세계 여러 나라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모인 제2 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일일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정한 것이 5월 1일 세계 노동절인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기본적 경제구조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와 생산수단이 없이 자신의 노동력으로 임금을 받아야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는 노동자로 구분되어 진다. 그리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역(力)관계에서 하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착취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처럼 단순한 이분법적 구조가 현실 사회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들을 들추어 본다면 이러한 구분이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은 하루 14∼15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의 저임금을 받아가며 살아갔다. 또한 이들은 등뼈가 휘어지거나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되었고 특히 여성들은 골반이 기형화되어 유산이 잦았다.” 라고 기술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절 이전의 노동현실은 이처럼 냉혹했고, 이러한 상황에의 저항.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기억하고 단지 5월 1일 하루 만이 아니라, 매일을 치열하게 살자는 의지가 노동절을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근의 발전노조파업, 우리 가장 가까이의 시설노조 파업. 기숙사노조 파업. 작년에 불거진 병역특례요원들의 파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노동문제인 것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다운 사회에서 살고 싶은 것 역시 작은 소망이다. 이러한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에 우리의 선배들은 노동자와 학생은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시작된 것이 노학연대 운동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아마 평범한(?) 새내기라면 첫 외부 집회를 경험 할 수 있는 것이, Mayday와 4.30전야제일 것이다. 본 기자도 99년 전야제에서 노학연대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 보이는 노학연대의 모습은 어떠한가. 기자에게 보이는 모습을 실제로 노학연대 운동을 하고 있는 경제학부 99학번 백종성학우와 영국에서 노동학 관련 박사학위를 따고 현재 성공회대에 조교수로 계신 전순옥씨를 만나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노학연대라는 얘기가 학내에 쉽게 들리는데, 실질적으로 노동자들 집회에서 학생들은 항상 맨 뒤에 있고, 참여하는 학생들의 수도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노학연대가 지금에도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백종성(이하 백) 그렇죠. 학생운동의 영향력&발언력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에요. 이는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학생운동의 역량이 줄어 든 것이 있고요. 그리고 노동운동이 양적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에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게 된 거죠. 그렇다고 노학연대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죠. 연대라는 것도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노학연대라는 그 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자주 볼 수 있는 연대라고 하는 것은 대규모 집회에 참여하는 것, 일정 시기에 행사가 있으면 같이 가서 참여하는 것.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백-event성 연대만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겠죠. 연대라는 것은 서로가 고통을 알아가고, 서로의 문제를 자신의 일로 체화하는 것이 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죠. 여기서 일상적 연대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학연대가 학내에서 크게 이슈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백-연대활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퇴조된 것이 사실이죠. 특히 노학연대를 몸으로 체화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적극적 참여의 동인과 동기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고요.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려는 학우들을 연대의 주체로 서게 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보면 알 수 있듯이 선거시기에도 노학연대의 문제의식은 크게 들어나지 않잖아요. 실제로 학생들은 장래에 대한 염려가 많은데요. 노동유연성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는 고급인력이 되기를 바라지 사회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고 보이는데요? 전순옥(이하 전) 노동운동을 통해서 함께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죠. 물론 학생들은 학과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요. 그것이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겠지만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고자 하는 생각을 가져야죠. 너무 낙관적이신 거 아닌가요???(웃음) 좋은 말씀 해주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설득력이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되거든요. 전-그럼 이렇게 얘기해보죠. 물론 가두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해요. 하지만 일반 학생들의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을 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radical한 언어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어요. 그들에게 누구나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분야에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되요. 예를 들자면 영국에 가서 만난 친구 중에 80년대 학번으로 소위 386세대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학교를 다닐 때는 데모를 하지 않는다고 소외를 당했다고 해요. 하지만 한 친구가 끊임없이 얘기를 들려줬고 그것이 자신의 지금 모습을 만든 하나의 요인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런던에 있는 대학에서 노동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데, radical했던 사람보다 더 나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천천히 ‘시민’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는 생각. 혹은 현 사회에 불만은 있지만, 그 문제점을 해결한 다기 보다는 그저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이 학우들에게서 보이는 일반적인 모습 아닌가요? 특히 저희 학교 같은 경우에 더욱 그러기 쉽다고 생각하구요. 전-노동운동 여성노동자운동 모두 남을 위한 운동이 아니에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그렇게 운동하게 되는 것이죠. ‘소풍가서 놀고 싶은데 자리가 너무 더럽다’고 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치우고 나서 놀겠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이런 활동에 같이 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자신만의 노력으로 좋은 궤도에 올라가면 홀로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인데요. ‘운전’의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홀로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사고 안 나는 거 아니잖아요. 백-분명히 서울대생이라는 기득권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현재 삶의 불안정성 때문에 고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우리는 선택을 하게 되겠죠.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소위 ‘성공’이라고 하는 것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투쟁을 통해서 현재의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데 노력할 것인가. 거기에서 서로가 대화와 충돌을 통해서 명확한 상을 제시해준다면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기 힘들지 않나요? 전-현재 명확한 상을 제시하기는 힘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피폐해져서는 안 된다. 군부독재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과거에 우리는 아무 것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많이 바뀌어왔죠!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일상적 연대라는 말을 하셨는데 부연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백-얘를 들면 1:1연대를 얘기할 수 있겠죠. 한 단위나 한 반, 한 과가 가는 사업장이 존재할 수 있겠죠. 물론 거대 사업장이라기보다는 소단위 사업장이 되겠죠. 지속적으로 연대를 하고 있는 사업장을 찾아가면, 서로가 알아가게 되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게 되는 거죠. 서로가 배우고 생각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게 되는 그러한 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지역노조를 보면서 그 가능성을 느꼈는데요. “너희 집회 한번 가 줄께, 우리 집회 한번 와다오.”수준의 품앗이 투쟁에서 “우리 투쟁 따로 없고, 너희 투쟁 따로 없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인식의 공동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거든요. 모든 투쟁에 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전체가 ‘1보 전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품앗이 투쟁이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에도 당연히 적용될 수 있는 것이 구요. 우리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자신의 문제로 체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하면서 그 곳에서 삶의 질서를 체화해 나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를 체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새로운 주체형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죠.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형,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끼고 나눌줄 아는 인간형이 만들어져 갈 수 있는 것이죠. *본 기사에서 인터뷰는 두 분을 각각 만났습니다. 기사를 구성하면서 두개의 인터뷰를 섞게 되었습니다. 지면관계로 전체 내용을 다 싣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