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려했던 일이, 우리가 처음에 반대해서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어.” 청계천 상권 수호대책위원장 이웅재 씨가 입을 열었다. 2011년 현재, 청계천 복원 사업이 끝난 지 6년이 지났다.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주 대책은 올해 말까지 마무리된다. 그러나 청계천 상인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빈 점포를 지키고 있다. ‘가든 파이브’를 내세운 이주 대책은 실패했고, 이주하지 못한 상인들은 청계천에 남아 막개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청계천 상인 이주대책, 8년 간의 기억 ‘환경과 생명 그리고 역사·문화의 복원’이라는 구호와 함께 2003년 7월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청계천은 조선 전기에 인공하천으로 조성된 후 1960년대 도시 설비 차원에서 복개됐다. 복개된 하천 위에 자연발생적으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7~80년대에 들어 청계천은 서울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상징하는 상업 지구로 발달했다. 2002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당선된 후 ▲지속가능한 도시 패러다임으로의 변화 ▲생태환경의 회복 ▲청계고가와 복개의 위험요인 예방 ▲역사문화 공간의 회복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취지로 청계천 복원 사업이 추진됐다.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청계고가도로, 삼일고가도로, 복개 구조물을 철거한 뒤 태평로에서부터 시작해 성동구 신답철교까지 이르는 5.8km의 하천 구간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의 희망찬 문구 이면에는 몇십 년간 청계천과 함께해온 상인들의 고통이 존재했다. 복원 사업으로 인해 많은 수의 청계천 상인들이 금전적인 피해를 입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것이다. 이에 2002년 8월, 이 전 시장 취임과 동시에 청계천에는 36개의 상인회들이 연합한 형태의 ‘청계천상권 수호대책 위원회(수호대책위)’가 설립됐다. 수호대책위는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서 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대체 상권 등의 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같은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2003년 2월부터 6월까지 청계천과 종묘 공원 등지에서 총 다섯 번의 집회가 이뤄졌다. 수호대책위 이웅재 위원장은 “처음에는 3천여명이 지지했지만, 집회가 거듭되자 거의 22만 명에 가까운 상인들이 동참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2003년 6월 말, 서울시는 마침내 수호대책위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 청계천 상인 이주 대책을 발표했다. 문정·장지 일대에 동남권 최대의 유통 단지인 ‘가든 파이브’를 유치해 대체 상권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주 대상자는 청계천변 200m 반경 안에 있는 상점들이었으며, 상인 수는 6천여 명에 달했다. 서울시는 이들에게 금융 지원과 더불어 상업 단지 주변에 컨벤션 센터, 호텔, 아파트 단지 등의 집객 시설이 모인 활성화단지를 조성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2010년 6월 10일 가든 파이브가 개장했다.‘가든 파이브’라는 감언이설에 소상인들은 한숨만 2011년 현재, 가든 파이브는 개장한지 1년이 넘었지만 ‘동남권 최대 유통단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텅 비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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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든 파이브 라이프관 2층, 대다수의 점포들이 비어있거나 문을 닫았다 |
가든 파이브의 입점률은 수치상으로 70%에 달하지만 전체 8천여 개에 달하는 점포 및 창고 중 약 3천 개만을 청계천 상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다점포 계약까지 포함한 것으로, 실 소유자 수로 따지면 이주 대책 대상자인 6천여 명 중 23% 정도만이 입주한 셈이다. 이마저도 계약만 한 후 청계천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장사를 포기한 점포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실제로 영업 중인 점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청계천 전자 상가 상인들이 이주한 ‘테크노관’의 경우, 휴일 오후에도 총 130 점포 중 8점포만이 영업 중이었다. 가든파이브 라이프 관리단 대표위원회(가든파이브 대표위) 모상종 부회장은 “라이프관에만 청계천 상인들이 1,500명 정도 왔으나, 그 중 절반 이상이 장사를 포기하거나 청계천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가든 파이브에 청계천 상인들이 들어서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값비싼 분양가 때문이다. 2003년 서울시에서는 이주 대상자들에게 금융 지원을 포함한 특별 분양 조건을 내걸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라이프관 상인 A 씨는 “영세 상인들의 실정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이 비싼 분양가 때문에 많은 상인들이 이주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테크노관에서 전자 기기를 판매 중인 상인 조모 씨는 “입주 지원책에서 상인들에게 제시한 분양가는 7천만 원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1억 5천만 원 정도에 분양됐다”며 서울시의 말 바꾸기를 지적했다. 값비싼 분양가뿐만 아니라 가든 파이브는 청계천 상인들의 상행위 형태에 맞지 않게 조성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많은 수의 이주 대상 상인들은 물건의 판매와 가공을 함께 하는데, 가든 파이브와 같은 백화점 식의 건물 구조에서는 오직 판매만이 가능하다. 청계천 상인 이모 씨는 “가든 파이브에 입주했다가 건물 안에서는 시동을 걸 수도 없고 물건을 가공할 수 없어서 청계천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밝혔다. 금전적인 부담을 안고 가든 파이브에 입주한 이주 상인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서울시는 2003년 청계천 상인 이주 대책의 일환으로 가든 파이브 상업 단지 근처 활성화단지에 집객 시설을 유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가든 파이브가 개관한 지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활성화단지 조성을 위한 서울시의 계획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 리빙관 상인 B 씨는 “여기는 상권 형성 자체가 되지 않는 지역”이라고 말하며 “금융지원책보다는 상권을 활성화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크노관에 입주한 상인 조모 씨는 “인터넷 판매 수익까지 합쳐도 일 년에 칠천 만원 넘게 적자를 보고 있어 여기에 온 것이 후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나가고 싶어도 장사가 안 되니까 점포가 팔리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청계천을 떠날 수 없는 소상인들 가든 파이브에 입주하지 못한 청계천 변의 수많은 가게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2003년 시작된 청계천 복원 사업은 2005년 말 막을 내렸다. 하지만 복원 사업으로 인한 상권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으로 남았다. 하천을 복개하면서 청계천 변에는 양방향 2개 차도만 남게 됐다. 복원 구간을 통과하는 버스 노선도 한 개로 줄어들면서 소비자 접근성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청계천 상권의 큰 축이자 청계천을 가로질렀던 세운·현대 전자상가는 건물 중간 부분이 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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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 공사로 세운 상가의 중앙 부분이 헐렸다. 사진은 상가의 잘린 단면. |
수호대책위원장 이웅재 씨는 “상가 건물이 동강나고 하나의 상권이 동서로 분열됐다”며 “사실상 청계천 복원이 청계천 상권 자체를 죽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운5구역에서 공구상을 하고 있는 전용식 씨는 “옛날엔 공구 상가 하면 청계천이 대표적이었는데, 복원 사업 이후로는 상권이 급격하게 줄어서 수입이 그 전에 비해 30% 정도에 그친다”고 밝혔다. 청계천 상가의 더 큰 문제는 청계천 복원 사업 전후로 계속 진행되고 있는 무모한 재개발 사업에 있다. SH공사는 지난 해 7월 세운 5구역을 재개발한다는 명목으로 50% 가량의 땅을 매입했으나, 사업성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행 중인 재개발 사업을 중지했다. 이에 세운5구역 상인 전용식 씨는 “SH공사가 땅을 다 사들인 탓에 주변에 남은 점포도 별로 없어서 상권이 다 죽었다”며 황당한 심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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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개발 사업 중지로 인해 빈 점포뿐인 세운5구역. 폐점 후 버려진 공구들과 기계들이 상가 한쪽에 널려있다. |
실제로 지금 세운5구역은 거의 모든 점포가 문을 닫은 상태다. 올해 8월 SH공사는 세운3구역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으나 이에 대한 상인들의 의견도 회의적이다. 수호대책위 이웅재 위원장은 “재개발에서 나온 인센티브가 ‘초록띠공원’ 조성 등 겉치장을 하는데 쓰이고 있다”며 “세운지구의 막개발 때문에 그나마 남았던 청계천 상권조차 기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청계천에서 장사를 하는 대다수의 상인들은 몇십 년 동안 점포를 지켜온 사람들이다. 세운5구역 상인 유충호 씨는 “나같은 경우 60년 장사를 해왔는데 보상이란 건 10원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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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인 유충호 씨는 “청계천 상인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
서울시의 대책은 가든 파이브 입주 대상자들로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청계천에 남은 상인들에겐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유충호 씨는 “내 나이가 많지만, 장사할 수 있는 한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호대책위원장 이웅재 씨 역시 40년간 세운상가를 지키며 장사를 해왔다. 그는 “다른 곳으로 이주할 생각이 없다”며 “청계천은 나에게 제2의 고향이다”고 전했다.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현재 서울시는 가든 파이브 이주 상인들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올해 말을 기점으로 청계천 상인들에 대한 입주지원책은 모두 끊긴다. 테크노관의 상인 유모 씨는 “현재 1년 이상의 입주를 조건으로 1년 간 서울시가 관리비를 대납해주는데도 적자인 곳이 많다”며 “이 지원마저 끊긴다면 장사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걱정을 표했다. 이에 가든 파이브 대표위에서는 서울시를 대상으로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임대료 삭감 ▲관리비 보조 ▲활성화 단지 조성 ▲점포 미공급분 해결을 골자로 한다. 가든 파이브 대표위 모상종 부회장은 “우리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시의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법적 소송까지 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수많은 청계천 상인들이 서울시의 이주 대책에 반발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더 이상 대화의 창구가 없다. 2002년 서울시에서 청계천 상인들과의 대화 기구로 마련한 ‘청계천상인대책위원회’가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계천 상인들은 복원 사업이 완공된 지 6년이 흐른 지금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된 상태에서 어떠한 요구도 할 수 없게 됐다. 수호대책위 이웅재 위원장은 “이제 서울시에게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만한 통로가 아무 것도 없다”며 무력감을 드러냈다. 덧붙여 그는 “청계천 상인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1년 현재 청계천 복원 사업은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천과 녹지 공간은 깨끗하게 복원됐고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은 한층 향상됐다. 그러나 서울시가 등진 청계천 상인들의 삶은, 누가 ‘복원’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