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이슈]
누구에게도 인격살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 달, 그들을 잊기엔 충분한 시간

누구에게도 인격살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성폭행은 인격살인, 영혼살인이라고들 합니다.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이 당시에 느꼈을 두려움, 당혹감은 함부로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모든 범죄가 대부분 피해자의 의도나 기대와는 다르게 이뤄진 것이겠지만, 특히 성과 관련한 자기결정권이 완전하게 무시됐을 때는 얼마나 절망스러울까요.취재 과정에서 믿을 수 없이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울컥했습니다.그러나 성폭행의 고통은 그때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폭행은 인격살인, 영혼살인이라고들 합니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이 당시에 느꼈을 두려움, 당혹감은 함부로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범죄가 대부분 피해자의 의도나 기대와는 다르게 이뤄진 것이겠지만, 특히 성과 관련한 자기결정권이 완전하게 무시됐을 때는 얼마나 절망스러울까요. 취재 과정에서 믿을 수 없이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울컥했습니다. 그러나 성폭행의 고통은 그때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더럽다’고 규정하는 사회적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행 법에서 강간을 정의하는 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 안에 삽입되지 않으면, 속된 말로 ‘끝까지 가지 않으면’ 성폭행이 아니라는 규정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피해자의 상처보다, ‘가장’에게 ‘바쳐야 할’ 정조를 잃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동 성폭력 피해만 중심적으로 논해지는 현실에서, 성인 여성 성폭력과 그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기사를 써보자’며 시작한 특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요새 밤길이 너무 무서워 성폭력 기사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세상이 흉흉하니 밤에 늦게 다니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집에 늦게 들어가는 길에는 ‘별 일 없겠지’하면서도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면 괜스레 무섭습니다. 이런 것까지 걱정을 하게 하는 사회가 싫습니다. 그러면서도 늦게 들어가는 밤에는 ‘왜 오늘 짧은 옷을 입고 나왔는지’를 후회합니다. 저에게조차도 ‘성폭력 피해는 밤에 늦게 다니고, 짧은 옷을 입고 다니는 여성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사회적 시선이 내면화돼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중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답답해 답을 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사계획서를 쓰고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장애여성이나 이주여성, 성소수자들은 표현하고 싶어도 이를 ‘표현’해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지적장애여성들은 ‘성폭행’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이주여성들은 이를 ‘우리말’로 얘기할 수가 없었고,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위치 때문에 차마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이주여성인권센터에 전화하자 “성폭력을 당한 이주여성들이 전화를 해오지만 ‘미등록’문제 때문에 실제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성소수자들의 정치적 권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성폭력 문제에는 쏟을 여력이 없다는 이들 인권단체의 말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인격살인’인 성폭력에도 신경 쓰지 못하게 할 만큼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와 닿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게 세상이라면 정말 살고 싶지 않다.” 같이 특집기사를 쓴 한 기자가 저에게 한 말입니다. 성의 소중함과 이들 인권의 정당성은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폭력과 관련한 자극적인 기사에 ‘신상을 공개하고 전자발찌를 채워라’, 또는 ‘거세해라’라는 ‘자극적’인 일회성 대처 이외에 우리의 ‘시선’과 그들의 ‘인권’을 되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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