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G_0### |
| 서종모 교수는 과거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 필요한 노력의 양이 늘어난 것뿐, ‘이공계 위기’를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서울대학교 홍보실 |
이공계 위기는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제기된 문제다. 그 배경과 대책에 대한 분석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공계의 ‘암울한 현실’과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상당한 이공계 인력이 여전히 의학, 치의학, 약학 전문대학원으로의 진학을 고민한다. 남아있는 학생들 역시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2007년 8월, 서울대학교는 동국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 서종모 교수를 전기공학부 교수로 신규 채용할 것을 결정했다. 의사를 교수로 채용한 것은 서울대 공과대학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최근의 이공계 위기와 대비돼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서울대학교는 “글로벌 시대의 학문 간 융합을 통한 대학과 교수사회의 새로운 길 찾기”라고 임용 의의를 밝혔다. 의학과 공학기술을 접목해 인공 눈 개발 연구에 기여하고 싶어 연구실과 공과대학의 교단의 문을 두드린 서종모 교수. 그를 만나 이공계 위기와 이공계가 당면한 현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공계 위기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인가. 정말 이공계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이공계 위기’라는 이야기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때나 위기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고, 그런 식이면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순수학문 모두 위기에 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공계 위기를 규정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과거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 이를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양이 늘어난 것뿐이다.-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으로의 진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어떤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나.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보통 다른 방향으로의 진출을 부정적이라고 인식하지만 오히려 이공계인들의 다양한 진로 선택을 독려해야한다.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중국의 지도자들을 보면 이공계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다. 이공계의 꾸준한 발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법조계, 금융계, 정계, 재계, 의학계열 등 다양한 방향으로의 진출이 늘어나야한다. 전문대학원으로의 진출이 급증하는 것은 일종의 일시적인 흐름이라고 본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과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화학공학과, 1970~80년대의 IT, 반도체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한 제어·계측, 전기, 전자공학과에 학생들이 몰린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최근의 이러한 현상들은 위기라기보다는 흐름의 변화라고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철저한 준비와 충분한 심의를 거치지 않은 전문대학원이 무분별하게 도입되면서 진로 이전의 방향이 지나치게 획일화됐다는 점은 문제가 된다. 전문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전공과의 융합이나 사명감보다는 수익이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인원의 비율이 늘었다. 애초의 도입 취지는 무색해져버린 것이다. – 2000년대 초반의 의대 광풍과는 별개로, 최근의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열풍은 이공계 내부의 우수한 학부생과 대학원생과 같은 고급 인력을 유출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나. ‘고급 인력’에 대한 규정 역시 불분명하다. 보통 고급 인력으로 분류되는 기준은 학점이나 영어공인점수 등의 스펙들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높은 스펙을 입증할 뿐 고급 인력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성이다. 반면, 공학자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연구에 대한 열정과 끈기라고 할 수 있다. 즉, 고급 인력이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열정이지 학점이나 스펙이 아니다.- 이공계 학과가 학부제로 전환되고 공과대학이 계속 신설되고 있다. 이처럼 이공계 인력을 과잉 공급하는 정책이 이공계의 처우와 질 하락을 불러 일으켰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동의하는가?
| ###IMG_1### |
|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으로의 진출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
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기본적으로 연구와 교육을 동시에 추구하는데,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육대학과 연구대학의 목표는 분명 구분돼야 한다. 교육대학은 사회와 기업에서 필요한 사람을 길러내는 데 목표를 두고 ‘전문성’을 강조한 교육을 해야 한다. 반면 연구대학은 창의성과 열정을 가지고 학계와 연구계에서 헌신할 사람을 길러내는 데 목표를 두고, ‘창의성’을 강조한 교육을 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이 생겨나는 공과대학은 사실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들이기 때문에 이공계 인력 과잉공급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공계의 처우와 질과 관련해서는 이공계 인력의 증대를 탓하기보다는 공학이나 기초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성과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왜곡된 구조에 원인을 돌려야한다.- 과학기술인들이 지나치게 자신의 연구에 몰두해 과학의 대중화 또는 중요한 쟁점에 대한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 ###IMG_2### |
| 서종모 교수는 융합과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이공계인들의 다른 방향으로의 진출이 오히려 독려돼야한다고 말했다. |
전문화된 사회에서 너무나 다양한 것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과학의 대중화나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분명 필요하지만, 모든 과학기술인들이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학 관련 교육학과나 과학의 대중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힘쓰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중요한 쟁점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학습효과의 영향도 크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생겨난 현상 중에 ‘비전문가들의 전문가화’가 있다. 이전에는 한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고 그 업적을 학계의 내부 검증에 의해 인정받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보급 이후에는 인터넷이나 학계 밖에서 검증의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이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지식으로 학계에 속한 전문가들을 비난하고 매도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학계의 전문가들은 위축됐다. 그래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선뜻 목소리를 내려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이러한 효과에 의해 과학기술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 이공계에서 타 진로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어떤 교수는 ‘최후의 변절자’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개인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막거나 저해돼서는 안된다. 또한 모든 학문이 서로 융합돼 발전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진로로의 이전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같은 이공계 안에서도 순수과학과 공학이 처한 현실이나 문제의식은 다를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동의하는가? 아니면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가. 순수과학은 공학보다 더 어려운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학은 수익과 부가가치가 직결되어 있는 만큼 그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만 순수과학은 그 성과를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순수과학은 학문 특성상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므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보호해야한다.- 이공계가 당면하고 있는 혹은 가장 시급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공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자신감과 동력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이뤄낼 수 있다는 의지가 많이 사라졌다. IMF 당시 실업난을 겪고 이공계 인력들이 설 곳을 잃었던 상황이 현재 세대들에게 전해진 ‘학습 효과’도 상당하다. – 그렇다면 현재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앞으로 공학을 전공할 학생들을 위해 무엇이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보는가. 국가의 기술과 부가가치가 직결된 이공계의 성과를 높게 쳐주지 않는 분위기가 우선적으로 해소돼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스타플레이어를 발굴하고 롤 모델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여기서 말하는 롤 모델은 학문과 연구에 힘쓰는 개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공학 기술을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연구소나 대기업의 특정 사업부서도 이에 해당한다. 2009년 삼성전자가 의료기기 시장에 뛰어들면서 메디슨 초음파 회사를 인수한 바 있다. 이 당시 언론에서는 작은 규모의 회사를 무분별하게 합병했다는데 초점을 두고 삼성전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필립스, 지멘스, GE 등 몇몇의 글로벌 기업이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브랜드 파워를 가진 삼성전자의 시장 진출은 분명 국가 차원에서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물론 특정 기업을 무조건적으로 띄워준다거나 비난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공계인들 상당수가 진출하게 될 기업이나 산업체들이 잘한 점은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진로를 고민하는 이공계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 본인이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갔으면 한다. 이 답을 얻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답을 얻고 그 길을 찾아가면서 만족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학의 길을 계속 걷고자 한다면 주변의 시선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본인의 꿈을 확고히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