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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문제는 장애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에 일반 성폭력보다 범죄 입증과 처벌이 더 어렵다. |
지난 해 8월, 대전에서 지적장애 여중생을 상대로 한 집단성폭력 사건이 터졌다. 고교생 세 명이 5월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정모(15)양이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 건물 남자화장실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한 것이다. 이후 이들은 정 양의 정보를 친구들에게 알려줬고, 6월 중순까지 대전 지역 4개 학교 고교생 16명이 정 양을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시민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격분했다. 같은 해 10월 대전지방경찰청 성폭력수사대가 가해 고교생 16명에 대해 ‘가해학생이 미성년자인데다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고 폭력이 행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구속 입건하자 사회적 파장이 더 커졌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트위터를 통해 “정말 이게 제정신으로 하는 짓일까요? 이 나라에서 딸 키울 수 있나요?”라며 경찰의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했다.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은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그러나 작년 대전 사건을 비롯해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들은 당시에만 화제가 돼 공분을 살 뿐, 금세 잊히고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며 사건이 종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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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장애인성폭력상담소 상담을 취합한 결과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피해가 전체의 약 65%를 차지했다. |
장애인 성폭력 피해,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현재 장애인 성폭력 피해 실태를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통계자료는 없다. 여타 성폭력 피해와 마찬가지로 전수조사를 담당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발생건수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자체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장애인 성폭력상담 건수가 510건, 2009년 838건, 2010년 1383건으로 그 숫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전체 장애인성폭력 피해자 중 지적장애인의 비율은 70%를 상회한다. 지적장애인이 인지능력이 떨어져 ‘성폭행’ 개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집단적이고 계획적으로 성폭행이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황지성 소장은 “지적장애인은 학교에 다니기 어려워 친구도 없고 부모도 생계에 종사하느라 바쁜 경우가 많아서 사회적 관계망이 부재하다”며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장애특성과 사회적 상황을 잘 알고 범죄를 저지르는 현실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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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강동지회 회장 오금옥 씨는 “장애인 부모부터 올바른 성의식을 가지고 피해 자녀의 의사를 충분히 묻고 성폭행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며 보호자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피해자보다 권력 우위에 있는 보호자지적장애여성 성폭력의 특수한 문제 중 하나는 지적장애의 특성 때문이다. 지적장애인들은 인지능력과 판단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폭력’ 개념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부분 피해자 본인이 이를 피해로 인지하고 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보호자나 교사를 통해서 신고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작년 대전 성폭행 사건 역시 성폭행이 계속 행해지던 중 피해 여중생이 학교 교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얘기가 나오게 됐고, 이를 해당 교사가 상담소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까이에 있는 보호자나 교사가 성폭력 가해자인 경우에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심지어 사건 자체가 아예 묻히는 경우가 많아 더 문제가 된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의 자체통계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성폭력 피해 중 75% 이상이 친족이나 주변 사람에 의한 성폭력이었다. 장애여성공감의 상담 사례 중 많은 지적장애여성의 경우 또한, 어렸을 때부터 친족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에 의한 성폭력에 노출돼 왔지만 신고나 지원으로 이어질 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황지성 소장은 “지적장애인의 부모 자체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이렇듯 피해자가 다른 사회적 관계망 없이 완전히 고립돼 있는 상황이라 보호자가 성폭행했을 경우 이 사실을 다른 곳에 알릴 수조차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보호자가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경우다. 이는 아직까지 많은 보호자들이 장애인의 성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고,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과 보호자 사이에서는 보호자가 절대적인 권력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보호자의 말이나 의사가 절대적이고 지적장애인은 그 결정에 순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피해자를 가장 생각하고 아껴야 할 보호자가 성폭행에 대해 얘기를 꺼리고 “그건 성폭행이 아니라 장난이고 추행이었다”고 축소해버리거나,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고소를 하지 않거나 고소를 해도 곧 취하해 버리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강동지회 회장 오금옥 씨는 “장애인 부모부터 올바른 성의식을 가지고 피해 자녀의 의사를 충분히 묻고 성폭행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며 보호자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의 민병윤 소장 역시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보호자가 가해자와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에는 상담소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상담소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했다. 지적장애인이 사랑, 연애와 성폭력 개념을 혼동해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 때문에 보호자는 피해라고 하는데 피해자는 피해가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성폭행을 하면서 “이게 사랑이다”라고 계속해서 주입할 경우 가해자와의 관계, 상황 등에 상관없이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착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적장애의 특성과도 상관이 있다. 즉 “지적장애인 역시 사람이기에 관계 맺기의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이 황지성 소장의 설명이다. 지적장애인들은 일반적인 통로로 인간관계를 맺기가 힘들기 때문에 강압적인 성관계를 오히려 타인이 자신을 받아들여준 경험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 해결을 어렵게 하는 그것, ‘항거불능’은 무엇인가 강압적 성관계가 자신이 경험하게 되는 거의 첫 인간관계인 상황에서 지적장애인은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성관계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상황에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장애특성 때문에 작은 위협, 유인, 매수에도 가해자의 의도대로 이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장애인 성폭력 사건 판결 시 폭행이나 협박 없이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장애인이 성폭행 사건에서 ‘항거불능’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해 가해자 처벌을 어렵게 한다.현행 성폭력특례법 제 6조에는 ‘신체 또는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을 강간이나 강제추행의 죄로 처벌’토록 명시돼 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는 “‘항거불능’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라는 구성요건을 보완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다룸에 있어 ‘항거불능’이 만족해야 할 하나의 조건이 아니라 장애의 설명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항거불능’조항을 지나치게 엄격히 해석해 많은 장애인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해왔다.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의 상태’ 판단은 재판부마다 확연히 달라 논란이 돼 왔다. 2007년 7월 대법원 판결은 이전까지 ‘항거불능의 상태’를 엄격하게 판단하고자 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장애특성을 잘 반영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 판결은 ‘항거불능’이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는 경우뿐 아니라, 장애가 ‘주된’ 원인이 돼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 판례 이후로도 ‘항거불능’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사건마다 일관성이 없었다. 피해자의 성적자기방어능력을 판단함에 있어 장애등급, 학력, 지적능력, 일상생활능력, 저항여부, 성폭행경험 등이 그 기준이 된 것이다. 일례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거나 임신, 피임, 낙태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성적자기결정능력이 있는 것이라고 본 판례들이 있는가 하면, 장애인인 피해자가 비장애인이 다니는 학교를 졸업했다면 학업성취도에 상관없이 지적능력이 인정돼 항거불능 상태가 부정된다. 이에 대해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김정혜 펠로우는 “성폭력과 관련한 여타 정황들로부터 항거불능의 상태를 의심하고 그것이 피해자의 장애로 비롯됐는지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항거불능’조항이 문제가 되자 여러 장애인권단체에서는 이 조항에서 ‘항거불능’개념을 삭제하거나 법조항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민병윤 소장은 “‘항거불능’상태에 대한 해석을 판사 개인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 혼란을 빚기 때문에 ‘항거불능’이라는 용어를 아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차혜령 변호사는 “항거불능 조항만을 삭제하거나 개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며 “법개정보다 실제 현행법을 적용하고 수사, 재판하는 과정 상에서 장애특성을 고려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수사과정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애인권성폭력 사건의 수사과정에서도 장애여성의 인권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장애특성을 수사과정에서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 피해자가 16세 미만이거나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할 때는 성폭력특례법 제25조 3항에 의거해 피해자의 진술내용과 조사과정을 촬영, 보존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의 반복 진술로 인한 심리적·정신적 고통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실제 수사, 재판과정에서는 전문조사요원의 부족과 시간상의 제약으로 이것이 무시되고 있다. 피해자의 지적장애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진술요구도 문제다. 현행 수사절차법 상으로는 지적장애인이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거나 재판과정을 이해하게 하는 장치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재판과정에서 재판부는 장애특성에 대한 고려 부족으로 지적장애여성의 진술 능력에 대해 의심하기 일쑤다. 황지성 소장은 “지적장애여성이 충분히 일관성 있는 진술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에서는 이들이 날짜나 수치 등을 특정하며 진술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들의 진술능력을 의심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차혜령 변호사 역시 “장애인 피해자가 수사나 재판절차를 거칠 때 정당한 편의가 제공돼야 한다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자체도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다”며 장애인권이 기본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성폭력 이후, 장애여성이 갈 곳은?성폭행 수사과정에서도 차별받는 장애여성은 성폭행 피해 이후에도 갈 곳이 없다. 전국에 성폭력 보호자시설은 모두 19곳인데 이중 장애인성폭력 피해자시설은 세 곳 뿐이다. 청주 장애여성성폭력보호시설 ‘모퉁잇돌’ 송은주 대표는 “그나마 있는 피해자시설도 상담원 1명이 장애인 15명을 관리하는 실정”이라며 제대로 된 서비스가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을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피해자들은 전문 장애여성 보호시설이나 쉼터가 없어 비장애 여성피해자들이 가는 쉼터에 가게 된다. 그러나 다른 쉼터에서 이들을 잘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 문숙영 씨는 “장애인 피해자들이 입소할 수 있는지 문의전화를 계속해오고 있지만 그들의 경우 전문적인 일대일 케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쉼터는 인력 문제로 장애인들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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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황지성 소장은 “지적장애인의 삶의 맥락 속에서 성폭행범죄는 단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다”며 전반적인 지적장애인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
대부분의 지적장애 성폭력 피해여성은 사건 조사 중 이전에도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더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황지성 소장은 “지적장애인의 삶의 맥락 속에서 성폭행범죄는 단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다”며 전반적인 지적장애인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지적장애인의 성관계, 성폭행 패턴 상 일반적으로 ‘싫으면 싫다고 말해라’는 매뉴얼은 통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황 소장은 “지적장애인 성폭행 예방을 위해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교육이 아니라 그들의 자존감 향상을 통한 성적 협상력 증대”라고 역설했다. 장애인에 대해 말 뿐인 존중이 아니라 ‘실제적’ 존중으로 나아갈 때 그들의 인권도, 자존감도 향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