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1. 협상을 왜 했는가? 협상이 왜 ‘그 시점’에서, 반드시 ‘이뤄졌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총학이 학생정치조직 중앙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에 가까운 소문도 떠돌았다. 지금까지 공개된 속기록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협상을 고려하는 방안이 제시된 것은 6월 17일 사범대 학생회장에 의해서였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강대 강으로 가면 서로 피를 볼 수 있다. 협상해서 끝냈으면 좋겠다. 학생처(가) 안막혔으면 해보는게 어떨까’하고 발언했다. 총학생회장 지윤(인류 07) 씨 역시 “협상에 나서자는 의견 자체가 총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밝혔다. 협상 여부는 총학 집행부의 의사와는 별개로 총운위를 통해서 결정됐다. 실제 협상은 총운위원들 상당수가 동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점거해제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점거참여 인원이 줄어드는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비상총회TF팀집행위원장 한빛(정치 08) 씨는 “본부와 협상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어낸다면, 그때가 그것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협상이 사실상 결렬되었다고 생각한 6월 22일, 총운위에서는 본부의 강제 해산을 각오하고 점거를 유지할 것을 논의했다. 즉 협상만이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하고 협상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본부를 떠보기 위해서 협상에 들어갔던 것이다.쟁점 2. 협상과정을 비공개로 한 것은 지도부 중심의 의사결정 아니었나? 총운위원인 사회대 학생회장 김재의(사회복지 06) 씨는 “당시에는 협상이 공개되면 패가 노출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해서 비공개로 했다”고 말했다. 협상전략의 노출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씨는 “지금 생각해보니 협상을 한다는 사실 자체는 공개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협상과정이 전적으로 비밀이었던 것은 아니다. 총운위와 단운위를 통해서 전반적인 협상과정은 끊임없이 공유됐다. 이에 대해 사회/악반 학생회장 정성용(사회 10) 씨는 “협상 중간에도 단운위를 통해서 협상과정을 알았고, 전학대회 직전에 열린 단운위에서는 협상결과와 안건지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한빛 씨는 “학생회 라인이 분명 충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학생회 라인을 취한 것을 도덕적인 결함이라고 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밀실협상이라는 비판에 대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학생회를 통한 기존의 의견 공유 경로가 포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 문제이지, 협상과정이 공유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쟁점 3. 처음부터 점거해제를 염두에 두고 협상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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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연(좌측)은 총학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
사회대 학생회장 김재의 씨는 “사실 총운위에서 점거해제 대신에 총장실 점거 유지를 걸고 협상하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총운위에서는 점거해제를 하나의 카드로 제시하기로 결정했다. 본부에서는 점거해제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점거해제가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인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점거해제를 전제로 타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쟁점 4. 밀실야합, 연극, 추진단 해소 뒤 재구성 등은 학생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었나? 첫날 협상 자리에서 ‘정치라는 게 (…) 연극처럼 진행되는게 있잖아요. 저희도 연극적인 요소들을 넣음으로서 정치적인 압력을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라거나 ‘밀실야합같은 것이기도 한데, 본부 측에서 (…) 설준위원들에게 (…) 본부가 (보상을) 해줄 터이니 (…) 설준위를 사퇴하는 형태로 하’라는 등의 발언을 실제로 한 한빛 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그런 발언을 했다면, 그건 역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빛 씨는 이전에도 본부 측과 접촉을 해왔기 때문에 본부 측 협상단의 비위를 맞춰주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학생들이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과한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협상 전반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굳이 화를 내고 싸우기보다, 접촉을 통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정리했다. 또한 협상 중에 나왔던 표면적으로 추진단을 해소한 뒤 나중에 재구성해도 된다는 문제발언에 대해서 지윤 씨는 “추진단 해소 후 재구성이 되더라도 일단 실무기관인 추진단이 해소된 이상, 설립준비위원회가 7월까지 준비를 마무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재구성 여부와는 별개로 법인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단 교수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회유하는 과정에서 그런 발언이 나왔다는 것이다.쟁점 5. 협상 결과가 타협적인 것은 아닌가? 왜 협상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나? 협상 결과로 나온 담화문에 대한 불만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담화문의 수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화문 자체에 대한 것이다. 협상에 앞서 합의된 바에 따르면 사과문은 최소한 의견수렴 미비에 대한 학교 지도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총장의 국회출석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포함해야했다. 실제 담화문에는 ‘학생들의 의견수렴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서울대학교 집행부의 책임’이라는 것과 ‘국회에서 서울대학교 총장의 출석을 정식으로 요구하면 그것을 따라야할 의무’도 있다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포함됐다. 부가조항으로 포함된 대화협의체, 등록금, 본부스탁에 관한 조항은 교수측이 먼저 제의한 것으로 학생 측은 적절한 수준에서 수용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하지만 담화문이 점거를 기꺼이 해제할 만큼 학생들에게 와 닿았는지는 의문이다. 지윤 씨는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얻어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이상을 얻어내기는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학대회에 대의원으로 참여했던 정성용 씨는 “그 정도 담화문으로는, 아니 담화문이라는 것 자체가 점거 해제 이후 국회투쟁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총학생회장 지윤 씨는 “어쨌든 협상을 통해서 본부 측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협상 포기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 결과는 결국 총운위와 전학대회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효력이 발휘되기 때문에 ‘판을 깬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쟁점 6. 협상안이 거부됐을 때, 실제로 본부점거의 강제해산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됐는가? 크게 다음의 세 통로를 통해서 침탈 가능성이 전달됐다. 본 협상에 앞선 만남에서 본부 측은 계속해서 본부에 의한 강제해산 가능성을 언급하며 학생들을 압박했다. 또한 첫날 협상에서 한 교수가 ‘예전에 점거했던 최장기간이 22일 정도였는데 그것보다도 길게 이렇게 되면, 이게 어떤 기록 갱신도 되지만 사실은 굉장히 부담이 되는 거야’고 발언했다. 22일을 기점으로 강제해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23일 협상을 위해서 학생처장이 연락해왔을 때, 그는 본부 측 강경파를 언급하면서 사실상 마지막 협상임을 강조했다. 즉 실제로 본부에 의해 강제해산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됐는 지와는 별개로, 협상안이 거부되면 거의 곧바로 강제해산이 이어질 것으로 판단할 근거들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언급이 단순히 협상압박용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쟁점 7. 징계 때문에 타협한 것은 아닌가? 전학대회에서 대학원생 대표 박시훈(법학부 박사과정) 씨의 역할은 어떠한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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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대 학생회장 김재의 씨는 점거해제 과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
총학생회 집행부와 총운위원들이 징계 위협에 굴복해서 타협적인 자세로 나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실제 협상과정은 물론이고 총운위에서조차 징계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한빛 씨는 “사실상 비상총회 전부터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들까지 징계를 감수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참여했는데 징계 유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겠냐”며 “오히려 전례에 비추어보아, 아무리 잘 해결되더라도 누군가는 징계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징계와 관련된 의혹을 일축했다. 박시훈(스누라이프 필명 ‘우전’) 씨는 법과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설립준비위원회 학생복지분과 학생위원이다. 동시에 점거기간 내내 본부에 점심을 배달하며 점거를 지원하는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한기연은 전학대회에서 박시훈 씨가 했던 ‘1안이 선택되면 온건파들은 징계 절차에 있어 사면 내지 감면의 가능성 있다. 2안으로 간다면 온건파 발언력이 없어지고 징계 범위 늘어나고 강도도 세질 수 있다’는 발언을 근거로, 그가 협상을 종용하기 위해서 전학대회에 참가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한빛 씨는 전학대회에서 박시훈 씨의 발언이 사전에 조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시훈 씨가) 징계위원회에 관여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쨌든 그것과는 별개로 총학이 앞장서 징계, 침탈 이야기를 하는 것은 패배주의적으로 비춰질 거 같았다”고 술회했다. 그러며 “그래서 제 3자에게 부탁하자고 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강경하게 들렸다. 어떻게 보면 실수다”고 덧붙였다.쟁점 8. 전학대회 안건지가 편파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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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학생회장 지윤 씨는 8월 19일 징계위원회에 소환되었으나 출석을 거부했다. |
전학대회 안건지에 ‘현재조건’이라는 표제로 제시된 5가지 사항들이 객관적이지 못했고, 때문에 대의원 중 상당수가 오도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현재조건으로는 ▲추가적인 협상가능성이 없고 ▲협상안이 거부되면 침탈과 징계가 예상되며 ▲투쟁대상을 국회로 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서술됐다. 총학생회장 지윤 씨는 “그게 비합리적이었다면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대의원들이 배경설명 없이는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런 내용을 적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총운위원 김재의 씨는 “전학대회에 앞서 총운위에서 하나의 안을 내놓아야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 전원합의제인 총운위에서 현재조건과 1안, 2안으로 구성된 안건에 동의했지만, 지금은 그 당시 현재조건으로 제시됐던 것들도 재논의될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학대회 당시 2안에 대한 수정안을 발의했던 정성용 씨는 “안건지 자체가 상당히 편파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실제 점거에 계속해서 참여하지 못한 대의원들에게 현재조건이라는 것이 너무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았다. 사실은 그것도 논의의 대상이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즉 사전에 합의되었다는 이른바 ‘현재조건’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심각하게 차이가 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