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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회용품 사용 자제를 권하는 공익광고 |
용산구 이촌동에 사는 Y 씨는 서울대까지 지하철로 통학한다. 오늘도 사당역에서 2호선 열차를 기다리는데 열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지루한 마음에 두리번거리다 지하철 광고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의 평균 지속 기간 18개월…?’이란 솔깃한 멘트로 시작하는 영상은 알고 보니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자는 공익광고다. 사랑의 지속 기간과 직장 근속 연수, 평균 수명을 일회용품의 분해 기간과 비교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다. 요즘은 공익광고도 참 잘 만든다고 생각하며 Y 씨는 마침 도착한 열차를 탄다. 앞의 짧은 이야기 속 Y 씨와 비슷한 경험이 한번 씩은 있을 것이다. 상업광고와 마찬가지로 텔레비전과 라디오, 지하철, 신문이나 잡지에 공익광고는 항상 등장한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로 직접적인 계도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최근에는 광고의 기법도 다양해져 은근한 표현과 감각적인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요즘은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광고협의회가 직접 만드는 공익광고 외에 일반 사기업에서도 공익적인 내용을 담은 캠페인과 광고를 많이 제작하고 있다. 80년대 공익광고협의회는 정부의 정책 홍보 창구우리나라에서 공익광고를 만드는 대표적인 주체는 공기업인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광고협의회다. 1981년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방송광고 향상 자문위원회’를 구성한 이래 현재 말하는 공익광고 개념이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각 정부 산하기관들이 국민 계몽을 위한 포스터·영상물들을 자체적으로 제작했다. 1983년 ‘공익광고협의회’로 명칭을 바꿨고 1988년 비로소 지금과 같은 자율적인 공익광고 제작 주체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공익광고협의회가 공기업의 형태를 띠게 됐지만 사실상 80년대는 공기업과 정부 간에 구분이 없었다. 지금의 국정홍보처와 같은 기관이 따로 없었기에 공익광고협의회가 정부의 정책에 대한 메시지 전달을 거의 전담했다. 86년도에 9편까지 제작된 한강 시리즈가 대표적 예다. 그 밖에도 80년대 후반까지 인구폭발을 우려한 가족정책의 일환으로 ‘한 자녀 낳기’광고가 방영됐으며 저축, 과소비추방, 에너지절약, 국산품 애용, 노사화합, 청소년 선도 등 계도적인 내용들이 90년대 초반까지 광고됐다. 90년대 후반 이후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내용으로90년대 후반부터 공익광고협의회는 정부의 정책 광고 전달 역할에서 차츰 벗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정부의 정책 광고는 해당 부처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광고협의회’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광고는 1년에 방송광고 6-7편, 인쇄광고 9편 정도다.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광고협의회 채국병 씨는 “공익광고 협의회의 광고와 정부광고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는 시민사회의식을 지향하는 내용, 즉 배려나 환경문제 같은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광고는 말 그대로 정부 정책에 대한 홍보로써 의견광고라고 말할 수 있다”고 채 씨는 덧붙인다. 실제로 국정홍보처나 각 정부부처에서 공익광고협의회에 정책과 관련한 주제에 대해 광고를 해달라는 요청을 종종 한다. 물론 해당 기관에서 요청하는 주제가 내부의 지향과 맞는 경우 공익광고로 제작될 수는 있지만 최대한 정부광고를 배제한다는 것이 공익광고협의회 측의 방침이다. 예를 들어 한미FTA와 관련한 정책성 광고의 경우 이견이 있을 수 있어 광고할 수 없다고 한다. 주제 선정의 기본 원칙은 비정치성공익광고협의회는 매년 10월부터 12월까지 약 1500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다음 해 주제를 선정한다. 설문조사에 포함 될 주제에 대해서 각종 기관이나 단체에서 요청이 들어오는데 내부에서 지향하는 주제선정기준과 부합할 때 여론조사 항목에 포함시킨다. 그러면 공익광고협의회의 주제선정기준은 무엇일까? 명문화된 것은 아니나 비정치적, 비종교적, 비상업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연간 6개의 주제를 선정한다(방송광고 기준). 정치성이 없고 의견 대립이 팽팽하지 않은 사안에 한정해 주제가 정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현재 공익광고협의회가 말하는 공익의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익광고는 공공에 대한 봉사의 개념이다. 공익광고의 목적은 광고를 보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팁을 제공하고, 시민들의 마음을 독려하는 것이다”고 채 씨는 공익광고의 의미를 설명한다. 공익광고가 그처럼 추상적인 의미를 가지는 데서 그치는 것이 맹점이 아니냐는 지적에 “그렇지만 시기별로 당면한 사회문제를 공익광고로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90년대 이후 공익광고의 방향이 시민사회지향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정부와 시민사회 간 의견 대립이 있는 사안에 대해선 가치판단이 개입된 광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정치성과 가치중립성’이라는 공익광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특정한 쪽의 의견광고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제가 선정된 이후에는 시의성을 고려해 언제 어떤 내용을 광고할 것인지 조정 과정을 거쳐 광고를 집행한다. 광고 제작사는 공개 공모를 통해 정해진다. 과거 주제의 반복 속에 시대 변화를 반영한 주제들의 등장이렇듯 ‘비정치성’이라는 기본 원칙 하에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사안들을 제외하고 공익광고가 광고하는 내용은 어떤 것들일까? 환경과 사회복지에 중점을 두고 있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와 관련한 부분에 대한 광고도 여럿 제작됐다. 그럼에도 공익광고의 내용은 어느 정도 기존의 내용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2000년 이후 제작된 공익광고는 환경(산불예방, 자원절약, 수질보전, 재활용, 일회용품 사용 자제), 질서, 헌혈, 친절, 불우이웃 돕기, 소중한 가정, 배려, 국민 자신감 회복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과거 90년대 초반까지 정부에서 낸 광고의 내용과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심지어 2000년에는 마치 7,80년대의 대공안보를 연상시키는 ‘안보의식’광고가 제작·방영됐다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방북으로 하루 만에 방송 중단되기도 했다.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 변화가 있었다 해도 담고 있는 메시지 자체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는 셈이다. 채국병 씨는 “매년 광고 내용이 바뀌어야 할 필요는 없다. 환경 등에서 설득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큰 주제가 반복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과거와 소재는 같되 내용이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과거 ‘한 자녀 낳기’광고가 정부의 가족 계획과 맞물려 여러 편 제작됐는데 최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면서 2006년, 마침내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우려하는 인쇄광고가 등장했다. 새로이 등장하는 주제들도 있다. 2004년의 기회의 평등과 불법복제 예방, 2005년의 장기기증, 2006년의 문화체험의 중요성 등과 같은 주제가 그것이다. 앞으로 공익광고협의회에서는 지구온난화 등 가까운 미래에 심각한 문제로 제기될 수 있는 주제 등을 환기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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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녀 낳기에서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 환기로 바뀌어 가는 공익광고 |
광고 기법의 발달과 함께 위협소구 방식도 발달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공익광고의 방식은 놀랍게 발전했다. 내용 자체는 여전히 계몽적인 여지가 남아 있으나 깨끗한 색감과 감각적인 카메라 워킹, 다양한 음향, 세련된 은유적 기법 차용 등 방식 면에서의 진화는 눈에 띌 정도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시청자에게 공포를 만들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위협소구’ 역시 발달해 왔다. 2002년 방영된 ‘마약추방’광고의 경우 한편의 공포 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어두운 숲에서 땅을 파는 남자를 보여주며 ‘마약사용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한다. 2003년 ‘신용관리의 중요성’ 광고는 절제 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남자가 점차 늪에 빠지는 장면을 보여주고 결국 죽게 된다는 내용을 암시한다. 위협소구의 사용은 학자들 간에도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위협소구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채국병 씨는 “간접적 소구가 효과가 없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위협소구의 효과가 크다고 주장한다. 위협소구에 대한 반응이 동양과 서양에서 차이가 난다며 문화적 차이도 지적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위협소구의 사용이 빈번하고 세계 유수의 광고제에서 위협소구를 사용한 작품들이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위협소구의 사용을 긍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공익광고협의회 측 역시 위협소구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밝혔다. photo4공익광고는 과거보다 보는 이에게 더욱 친근하게 전달되고 있다. 또한 내용 면에서도 반복적이긴 하나 미래지향적인 부분이 첨가되는 것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몇해 전 ‘공익이라는 이름의 은밀한 폭력’이라는 책에서 신랄하게 얘기된 것처럼 공익광고 내용의 계몽 일변도의 위험성, 위협소구와 관련한 방식 상의 문제점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문제점을 잘 해결해 개인적 삶의 질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는 ‘공익’광고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