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환경 도시로 거듭나기
대규모 판자촌, 그 현장으로 가다. 구룡마을의 운명은 어디로…?
지하철 안엔 그들이 있다!

대규모 판자촌, 그 현장으로 가다. 구룡마을의 운명은 어디로…?

사람들은 ‘판자촌’을 추억 속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부를 상징하는 강남에는 아직도 대규모 판자촌이 남아있다.강남구 개포동 585번지에 있는 구룡마을.마을 건너편에 보이는 타워팰리스가 구룡마을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빈부 격차의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마지막 판자촌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사람들은 ‘판자촌’을 추억 속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부를 상징하는 강남에는 아직도 대규모 판자촌이 남아있다. 강남구 개포동 585번지에 있는 구룡마을. 마을 건너편에 보이는 타워팰리스가 구룡마을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빈부 격차의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판자촌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구룡마을의 실태와 개발을 둘러싼 문제들을 짚어보았다.88년 올림픽 이후 저소득층 중심으로 대거 유입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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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은 무허가촌인 까닭에 일반지도에는 집한채조차도 표시되지 않는다.

80년대 이후 재개발을 비롯한 도시 개발 사업들로 인해 철거된 주거지의 세입자과 저소득층은 도시 외곽에 판자촌을 형성하며 살아갔다. 구룡마을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개포동 개포성당의 봉사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할아버지들의 증언에 따르면, 80년대 초부터 마을이 형성되었고 86년 당시에만 해도 60여 가구만이 있었다. 그런데 86년 아시아 게임과 88년 올림픽 게임을 거치면서 대대적인 도시 정비로 인해 철거민들이 대거 발생했고, 일부가 구룡마을로 유입되었다. 하룻밤에만 2백에서 3백여 채가 지어지고 불법무허가 주택을 분양하는 일도 있었다. 또한 전세파동이 발생해서 전세가 만기된 저소득 서민층이 갈 곳을 찾지 못해 이곳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정부는 철거민들이 몰려드는 것을 묵인했다. 이후 한때 2200여 세대까지 증가했지만 현재는 1800여 세대, 4000여명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생계 불안정, 소수만 기초생활수급자 보통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는 사람의 소개로 오갈 곳 없어진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온다. 주민들은 주로 건설노동과 같은 일용직, 파출부, 폐지 줍는 일 등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나간다. 공부방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8년째 구룡마을에 살고 있는 외국인 선교사 후안 파블로 신부는, “(이곳 주민들은) 일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며 “남편은 지방에서 일하다가 가끔 오고 부인은 가락동 수산시장에서 식당 일을 돕는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도 건강이 좋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특별한 수입 없이 혼자서 생활하는 독거노인들이 전체 주민의 40-60%나 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성북구에서 염곡동으로, 염곡동에서 구룡마을로 옮겨왔어. 생활비야 자식들에게 조금씩 받고, 잠자거나 가끔 마실 나가고 채소 만지는 소일하면서 지내지.” 5지구에서 무를 다듬고 있던 한 할머니의 푸념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치매가 심각해지고, 자식들과 함께 살기도 어려워져서 이곳으로 오게 됐다. 능인종합사회복지관의 사회복지사 박동혁 씨는, “그나마 독거노인들 중에는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많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인이 장애인이거나 남편이 장애인인 경우”라고 지적했다. 구룡마을의 기초생활수급자는 현재 160세대 정도다. 무허가 주택지인 까닭에 주소지가 다른 곳으로 되어 있어서 대상자에게 공문을 보내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박동혁 씨는 “마을회관과 마을자치회와 연관해서 수급 대상자를 조사하고 있지만, 집에 사람이 있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빈 집도 많다”며 실태파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 가운데 조건이 되는데도 수급 받지 못하는 가구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열악한 주거환경, 대형 화재의 위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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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기줄과 수도관. 마을 곳곳에 보이는 위성안테나가 이채롭다.

현재 구룡마을은 9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으며, 새로 지어진 집을 제외하고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전기나 수도는 자치적인 조직을 통해서 공급받는다. 수도나 전기가 개개의 가구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거노인을 비롯해 생활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은 수도나 전기 요금이 연체되기도 한다. 한국 전력에 건의해서 원래는 농업용으로 들어왔던 것을 자치기관이 각 지구로 보낸다. 수도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분배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전깃줄과 수도관은 마구 얽혀 있다. 나무와 비닐, 헝겊으로 지어진 판자집의 특성상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많은데, 복잡한 전깃줄과 수도관에 가스통까지 더해져 위험을 더욱 가중시킨다. 실제로 작년에는 4지구의 7-8채가 화재로 탔으며, 99년에는 2지구 전체가 탄 적도 있다. 구룡마을로 수십 년째 요구르트 배달을 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는, “예전보다 사는 게 많이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도로 포장된 거랑 연탄가스 냄새 안 나는 거, 그거 밖에 좋아진 게 없다”고 답했다.가장 가슴 아플 때, “엄마, 우리 언제 이사가?” 아이들 교육문제도 여의치 않다. 주소지가 구룡마을이 아닌 다른 곳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근처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가까운 친척집이나 아는 곳으로 주소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이곳 아이들이 인근 학교에서 당하는 왕따 문제가 대두되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여건이 되는 일부 가정에서는 학원에 보내기도 하지만 근처 복지관이나 교회의 공부방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파블로 신부는 “외부의 학생들과 달리 아무리 공부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박탈감을 가지는 아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복지사 박동혁 씨도 “편부모 가정이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러한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 밖에 없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과연 (공부해야겠다고 느껴서) 스스로 공부하게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곳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엄마, 우리 언제 이사가?”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가슴 아픈 경우라고 한다.판자촌 벗어나기는 복권 당첨만큼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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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자 위에 헝겊을 덮어서 만든 집들. 구룡마을에는 빈집이 꽤 많아서 1000여 가구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찾아서 구룡마을을 빠져 나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파블로 신부는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들 가운데 3가족 정도만 이사를 갔다”고 증언했다. 마을회관 본부장 최철호 씨도 “고급인력이 아니고 대부분 밑바닥 층이라서 마을에서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형편”이라며, “전기나 수도 요금이 싸고 공과세도 없어서 부담이 적기 때문에 들어오면 잘 못나간다”고 덧붙였다. 사업 실패로 인해 8년 전부터 구룡마을에 살았다는 마을 중턱의 한 슈퍼 주인아저씨는, “집을 마련할 만큼 한 순간 급격하게 생활이 나아질 수가 없다”며 “누군들 헝겊집에서 곰팡이 냄새 맡으면서 살고 싶겠느냐”고 반문했다.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한 번 주어진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 어려워 보인다. 개발제한 올 연말에 풀릴 예정, 개발 추진 움직임 활발해져 한편, 현재 구룡마을 부지의 대부분은 개발이 제한된 자연녹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자연녹지 구역에는 용적률 50%이하, 4층 이하의 건물만이 지어질 수 있는데, 2005년 12월까지는 개발을 위한 모든 건축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구청 관계자에 의하면 12월에 개발 제한이 풀리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개발 제한이 풀리더라도 개발을 위한 아무런 계획이 없으며 당분간 개발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군인공제회 측과 건설업체가 이 일대 땅을 사들이면서 개발을 추진할 태세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이 일대 26만여평의 땅을 사들였다. 군인공제회가 이렇게 개발의지를 보이는 까닭은 이곳이 강남에 남은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기 때문이다. 군인공제회 측에서는 아파트 조성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으며, 구청 측에서는 “사업자는 택지 개발을 하고 싶겠지만, 특혜 시비 등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제한이 해제되더라도 조건이 맞아야 개발을 할 수 있는 만큼 당장 개발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개발 움직임에 맞추어 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이용한 사기도 일어나고 있다. 개발을 노리고 전입한 주민들에게 개발시 법적 권리(아파트 입주권, 이주비 등)를 보장해 준다는 명목으로 거주확인증을 비싸게 판 사람들이 있었다. 주민들의 얘기에 의하면 ‘딱지’로 불리는 거주확인증은 3천여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개발 이익을 보고 위장전입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항간에서는 이렇게 위장전입한 사람들이 주민의 30%나 된다고 하지만, 정확한 수치는 주민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개발 주도권 두고 이권 다툼 치열 주민들의 자치조직도 개발 이익과 개발 주도권을 둘러싸고 마을회관 측과 주민자치회로 양분되어 있다. 현재 두 기관에 따라서 수도나 전기도 각각 다르게 공급하는 실정이다. 자치회 측의 유아무개 회장은 군인공제회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주민자치회 측에서는 ‘개발을 통한 주민의 이익’을 주장하고 있는데, 무허가 주택지의 주민이 소유주와 손을 잡고 재산 불리기에 나서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마을회관 측에서는 이에 대해 반대 집회를 가지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주민은 이에 대해 “주민자치회 쪽에서 땅을 사서 주민이 땅을 구입해서 개발하자는 의견인데, 다른 쪽에서는 반대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두 지도부의 이권다툼은 서로 몽둥이를 들고 싸우다가 더욱 격해지면 크레인까지 동원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1년 전에 다툼이 가장 심했으며, 한밤중에 마을회관 측 컨테이너 사무실이 크레인에 의해서 부서졌던 일도 있었다. 얼마 후에는 자치회 측에서 같은 일을 당했다고 한다.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폭력과 충돌을 막을 특별한 조치도 없는 상태다. 자치조직의 지도부가 보이는 행태는 주민들의 이익을 진정으로 위하는지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한다. 98년 무렵, 비닐하우스촌인 송파구 개미마을의 주민들은 ‘주소지를 달라’며 소송을 내서 결국 승소했다. 구룡마을의 자치조직에서는 개미마을의 사례를 들어서 주민들에게 10만원씩을 소송비용 명목으로 걷었고, 이렇게 모인 2억여 원을 가지고 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 원고가 다른 곳에 주거지가 번듯하게 있는 투기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양 측 지도부에게 소송은 돈을 만질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또한 지난 5월에는 전·현직 마을자치회장 김 모씨와 신 모씨가 구룡마을이 재개발된다며 투자자와 건설업체를 속여서 투자하게 만들었고 결국 거액을 가로챈 혐의로 입건됐다. 이익을 남기려는 개발업자와 이권 다툼에 정신없는 지도부. 그 사이에서 노인들을 비롯한 진짜 어려운 형편의 주민들은 더욱 힘들어진다.“대책? 없어. 개발될 때까지만 편히 사는 거지.”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이 진행된다면 주민들은 당장 대책이 없다. “대책이 어딨어. 개발될 때까지 만이라도 편히 사는 거지.” 대책을 묻는 질문에 대한 한 주민의 답변이다. 거주 주소지가 없기 때문에 보상을 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구청 측에서는 “분양 아파트나 임대 아파트, 이주비 등은 현실적으로 사업자가 적절하게 주지 않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복지관에서도 “영구임대 아파트가 생기지 않는 이상 입주권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청으로서는 구룡마을이 계륵 같은 존재다.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이라는 특성과 개발의 최적지에 위치한다는 점 때문에 골치 아픈 대상이 되어버렸다. 현재 구청의 움직임은 추가전입자를 막기 위해 집집마다 번호를 달아놓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민들은 그들대로 개발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이곳에 남아 있는 실정이다. 철저한 실태조사와 장기적인 방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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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또 다른 비닐하우스촌인 포이동266번지. 구룡마을보다 나을 바 없는 모습이다. 79년 정부에 의해서 강제이주당했지만 점유권도 얻지 못한 상태.

구룡마을과 같은 무허가 주택지에 대해서 이호 책임연구원은 “현재 연구소가 자체적으로 추정한 것만 서울 지역에서 28개 마을 3728가구가 있으며 실제로는 훨씬 더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서울에만 1만여 명 이상이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강남·송파·서초·강동구 등 강남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은 “개발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공원 등 공공시설이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무허가 주택지의 주민들에게 주소지를 부여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서 구룡마을은 제외됐다. 투기 목적으로 전입된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워낙에 대규모 무허가 주택지라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주소지 부여를 목표로 한 소송에서 패한 것도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영향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곳 주민들은 주소지를 부여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구룡마을은 국공유지의 비율이 너무 낮아서 민간업체가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개발에서는 공공임대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민간인 개발의 경우에는 업자 측에서 개별적인 보상을 한다. 따라서 구룡마을의 개발과 철거문제는 장기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이 임대 아파트 쪽으로 이주할 수 있게 돕거나, 더 이상의 무허가 판자집의 전매나 상속을 철저하게 막아서 개발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도시연구소의 이호 책임연구원은 구룡마을의 개발에 앞서서, “각 가구의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해서 전세방이라도 얻을 능력이 있는지, 구청 측에서 융자를 해줘야 할 정도인지, 아니면 여유 있는 가구인지 등을 분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실태조사를 통해 각 가구의 수준에 맞는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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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팰리스를 비롯한 도곡동의 초고층 건물들이 구룡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다.

생존과 개발. 이미 주민과 개발업자, 땅 소유주, 구청 측의 갈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은 소외되어 있다. 지금, 구룡마을의 운명은 안개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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