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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외판원들은 지하철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
“승객 여러분, 열차 안에서는 허가 없이 선전물이나 물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발견 즉시 승무원에게 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안내 방송이 무색하게 누군가가 외친다. “승객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잠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제가 정말 좋은 물건을 하나 갖고 나왔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마주 치게 된다. 그들 중 주위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키는 사람은 바로 지하철 외판원이다. 열차 속 적막을 깨고 나타나 잠시 소란스럽게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줄 아는 그들. 갖가지 생활용품들을 들고 나와 싼 값에 파는 그들을 취재했다. 서울의 지하를 누비는 이들 서울의 지하철은 천만 시민의 발이면서 동시에 노숙자, 걸인, 노점상인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 가는 삶의 터전이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들 중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자들이 있다. 바로 지하철 외판원이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외판원들이 물품을 공급 받는 도매상이 대략 7, 8곳 존재한다. 도매상은 인천에 있는 한 곳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에 있으며 동대문, 제기동, 회기, 구로와 같이 주로 1호선의 전통적인 상업 지역이나 지하철 환승역과 같은 교통 중심지에 분포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 도매상은 중간 도매상이다. 이 도매상이 들여 오는 물건은 영세 업체의 제품인데 우리 나라의 공장 뿐만 아니라 중국에 있는 한국인 소유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도 포함된다. 중국 물건을 한국으로 가져 오는 것은 일차 도매상이고, 이것을 서울 중간 도매상이 구입한다, 이러한 중간 도매상은 서로가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경쟁보다는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물건에 관한 정보, 즉, 그 물건을 공급 받는 도매상에 대한 정보나 국내 생산품일 경우 생산 공장에 대한 정보 등을 공유한다. 특히 단속이 강화된 시기에 이들은 서로 간에 연락을 취하여 단속에 대비하기도 한다. 각 사무실에 속해 있는 지하철 외판원의 수는 적게는 20명, 많게는 40명이다. 정확한 통계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사무실 당 평균 인원을 30명 정도로 볼 때, 대략 200명 내외의 지하철 외판원이 서울의 지하철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부터 70대 초반까지 다양하게 분포하지만 20대와 60대 이상은 많지 않다. 그만큼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남성이고, 여성은 10명 중 한 명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 중에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외판원이 된 장애인들도 극소수 있다. 담당 구역과 제품 가격은 암묵적 합의로 각 지하철 노선 별, 혹은 같은 노선에서도 지역 별로 특별히 더 잘 팔리고 덜 팔리고 하는 곳은 없다. 다만 5호선 등 일부 노선은 차 내부 소음이 심해서 목소리 전달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노선에 비해 기피 대상이 된다. 200여 명의 외판원들이 모두 마음대로 아무데서나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구역은 보통 노선으로 정해진다. 즉, 1호선 담당, 2호선 담당, 이런 식으로 구역을 정해 놓고 그 안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다. 상인들끼리는 크게 분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들 담당 구역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이다. 또한 가격도 도매상 차원에서 담합이 이루어지고 상인들의 마진율도 암묵적으로 담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싸게 팔거나 비싸게 팔 수 없다. 지하철 외판업 시장의 전체적인 재고량이 늘어 이를 덤핑으로 처리하기 위해 합의하에 가격이 전체적으로 하향 조정 되는 경우가 아닌데도, 누군가가 다른 외판원들보다 더 싸게 파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품질이 일반적인 제품에 비해 떨어지는 경우이거나 그 날 팔아야 할 물건이 팔리지 않고 많이 남아 빨리 처분하려고 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자의 경우는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소비자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궁극적으로는 전체 외판원들에게도 손해를 끼친다. 30대의 외판원 박 모씨는 “한 사람만 싸게 팔면 1차적으로 다른 외판원들이 손해”인데다가 “소비자들이 구입할 당시에는 싼 가격에 구입했다는 사실에 기뻐할지 모르지만 막상 사용해 보면 질이 나쁜 것을 금방 알게 되고 이는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쌓이면 결국 또다시 외판원들은 2차적인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저질의 상품을 파는 일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또다른 40대 외판원 윤 모씨는 “지하철 판매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도 여럿이 있는데 질 나쁜 제품을 생산하게 되면 그 공장과 거래하는 도매상들에게 신뢰를 잃고 배척당할뿐더러 설사 그것을 가져다 파는 외판원들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동료 외판원들에게 낙인이 찍혀 결국엔 이 바닥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악덕 업자들에 대한 이중의 ‘자체정화기능’이 있어서 요즘은 제품의 질이 상향 평준화되었다. 하루 8시간, 쉴새없이 소리 내는 목 건강을 지켜야 지하철 외판원들은 보통 하루에 8, 9시간씩 일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적게는 4, 5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을 하는 날도 있다. 특별히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는 않고 그저 판매원 자신의 몸의 피로도에 따라 하루 또는 그 이상의 휴식일을 정해 쉰다. 특히 이들의 재산 목록 1호인 목에 문제가 발생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다시 효과적인 판매 활동에 들어설 수 있다. 이 때문에 물은 항상 충분한 양을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몸이 많이 움직이고, 좀처럼 편하게 쉴 수 없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장기간 동안 버텨 내는 사람들은 드물다. 처음 외판업에 뛰어들면 2,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외판원들은 생계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전업했다가도 다시 돌아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건전지부터 라디오까지, 없는 게 없다 외판원들은 항상 큰 트렁크에 물건을 싣고 다닌다. 보통은 하루에 한 가지 물건만 판매하지만 항상 같은 물건만 파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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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판매 되는 물건은 다양하다. 가장 싼 물품의 가격은 단돈 천원으로 과자 값과 비슷한 수준이며, 가장 비싼 제품의 가격은 만원으로 지하철에서 판매되는 가격으로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까지 넓은 가격 폭을 갖고 있다. 물론 절반 이상의 제품이 천원 짜리이며 이것이 지하철 시장 물건의 가장 큰 장점이다. 품목을 살펴 보면, 몇 년 째 꾸준히 팔리고 있는 건전지를 비롯하여 볼펜 세트, 다기능 열쇠고리, 고무장갑, 선풍기 커버 등이 흔히 볼 수 있는 천원짜리 물건이다. 조그만 강력 손전등이 한 개에 2천원, 전기 라디오, 우산 등이 3천원이고,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인 무릎 보호대는 양 무릎 하나씩 2개 한 세트가 5천원, 허리 보호대는 가장 비싼 만원이다. 이 밖에도 전기 면도기, 추억의 팝송 CD 한 질도 만원짜리 ‘고가품’에 해당한다. 예전 인기 품목이었던 건전지 세트는, 무게는 무겁고 가격은 낮아 상대적으로 활동이 힘들어 외판원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요즘은 잘 판매되지 않는다. 대신 가벼우면서도 비싼 보호대가 상인들에게 팔기 편한 상품이다. 가장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보호대의 인기 비결은 계절의 변화,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제품의 특성에 있다. 추위로 인해 관절과 몸을 보호할 필요성이 커진 노인층과 운동을 하는 청소년층까지 다양한 구매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싸이즈도 대, 중, 소로 다양하게 있어 신체 싸이즈에 맞게 제품을 구입하도록 만든 것도 구매 가능 소비자의 연령 스펙트럼을 넓혔다. 예전에는 질이 조금 떨어져도 가격이 천원 짜리이면 질이 낮다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눈이 높아진 고객을 위해 가격대를 다양화 시키고, 파는 제품의 질도 한층 더 향상시켜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다 하고 있다. 판매되는 상품은 계절별로도 달라진다. 봄에는 손전등(일명 후레쉬), 휴대전화 케이스, 여름에는 우산, 부채, 미니 선풍기, 그리고 초가을 선풍기 사용이 끝나는 때는 선풍기 커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 가는 시기에는 보호대, 장갑 등이 있다. 우산은 여름에 잘 팔리는 품목이기도 하지만 사시사철 비가 오는 날만 되면 팔 수 있다. 비가 오면 다른 물건을 팔더라도 곧 판매를 중단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짐가방의 물건을 우산으로 교체해서 다시 나가기도 한다. 그 외에도 사계절 판매를 지속할 수 있는 제품은 모자류와 양말류 등이 있다. 외판원의 수지타산, 높지만은 않아 이들의 하루 수입은 3만원에서 5만원이다. 일하는 시간과 노동량에 비하면 그리 넉넉지 않은 수입이다. 무릎 보호대를 파는 40대 판매원 송 모씨는 “적게 파는 날은 20장, 많이 팔리는 날은 30장 정도가 팔리며 가장 많이 팔았을 때가 50장 정도였다”고 말했다. 5천원짜리 무릎 보호대 제품 한 세트(두 장)당 이윤이 1500원 정도로 20장 내지 30장이 팔렸을 때 수입이 3만원에서 5만원 정도가 된다. 다른 제품의 마진율도 이와 비슷한 30% 안팎이다. 끼니는 크게 신경 써서 챙기지는 않는다. 식사를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가면 추가로 교통비가 들뿐더러 시간도 많이 허비되기 때문에 김밥 한 줄로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아예 굶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한 끼 식사보다 차라리 물이 더 중요하다.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판매 자산이기 때문이다. 목을 자주 축여주어야 판매도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하루에 소비하는 교통비는 서울 시내 활동을 기준으로 하면 1800원이다. 오랜 시간 일하기 때문에 지하철 표 한 장과 추가 요금을 내는 것, 또는 교통 카드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처음에 표를 구입하고 중간에 새로 지하철 표를 한 장 더 구입하는 것이 가장 경비가 적게 든다. 판매 지역이 서울 밖 인천, 수원, 의정부 등지로 가게 되면 2천원을 조금 넘기기도 하지만 서울 지역을 근거로 하는 상인들은 서울 밖으로 멀리 활동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단속에는 속수무책 이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단속이다. 외판원들을 단속하는 이들은 공익근무요원과 청경(청원경찰)이다. 일단 한 번 적발되면 아무 소리 못하고 역무실이나 파출소로 끌려가 벌금 3만원을 물고 나온다. 그나마 예전의 5만원에서 내려진 것이 다행이다. 단속 공무원들도 실적이 걸려 있기 때문에 웬만해선 봐 주지 않는다. 외판원 송씨는 얼마 안 되는 하루 수입이 고스란히 벌금으로 나가면 “그 날은 의욕을 잃어 더 이상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며 “물론 벌금을 만회하기 위해 더 악착같이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는 편보다 차라리 푹 쉬는 게 정신 건강에도 낫다”고 말했다. 지하철 외판원들은 생계를 위해 막다른 길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 힘든 노동, 당국의 단속까지. 그들은 오늘도 고된 삶을 살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