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모든 것이 아직 신기하기만 한 L어린이(5세)는 봄기운이 묻어나는 날, 가족과 함께 동물원에 왔다. L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TV 화면에서만 봤던 얼룩말이며 호랑이를 정말로 볼 수 있다니! 어린이대공원은 그 또래들의 재잘거림과 환희로 가득하다. 동물원에서는 L과 같은 어린이들을 위해 각종 동물 쇼를 준비해놓고 있다. 티켓만 사면 돌고래가 재롱을 부리고 바둑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기에 동물원은 주 타겟인 어린이들과 자식에게 뭔가를 더 보여주고 싶어 하는 부모에게 언제나 인기 절정이다. 동물원에서까지 교육열이 넘치는 부모들은 열심히 동물에 대해서 설명한다. 엄마, 왜 코끼리는 계속 머리를 흔들고 있지? 어머니는 최대한 교육적으로 대답한다. 즐거워서 춤을 추고 있는거란다! |
동물원? 누구를 위한 곳인가
| ###IMG_0### |
| 아이는 동물원에서 무엇을 보고 들을까? |
어린 시절, 책이나 TV에서만 접하던 얼룩말이며 기린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동물원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흔히 동물원은 대중 생태 교육의 장으로 여겨져 왔을 뿐 아니라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자연 친화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온 동물, 야행성 동물 등은 1년 내내 바깥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실내 사육장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받아야 하며 스트레스로 인해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다. 환경연합 시민단체 ‘하호’ 가 발간한 서울대공원 보고서에 따르면 동물들은 폐쇄된 곳에 오래 갇혀있을 경우 자연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맹수사의 호랑이가 같은 곳을 맴도는 것이나 코끼리가 끊임없이 머리를 흔드는 것 등은 모두 이런 이상행동의 일종이다. 프레니월드의 겨울부천 프레니월드는 2005년 8월 부천 영상문화단지에서 개장했다. 세계 각국의 희귀 애완견 140여마리와 함께 애견테마센터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프레니월드는 개장 이전부터 동물자유연대 등의 시민단체에 의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받았다. 시민단체들은 “전국의 동물원이 대부분 적자를 내고 있는 상태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테마파크가 적자운영을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애견 쇼, 애견 연기학교 등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의 테마파크는 바람직하지 않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프레니월드는 예정대로 개장했으며 개장 한 달 후 부도를 내고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 ###IMG_1### |
| 애견 경매장, 뷰티센터, 교배장 등 한때는 화려한 시설을 자랑했던 프레니월드 |
부도 이후 남은 애완견들에 대한 관리 소홀로 지난 겨울 시가 천만원에 달하는 달마시안을 포함한 애완견 열다섯 마리가 동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동사 사건 발생 이후 기자가 찾아간 프레니월드는 스산한 모습이었으며, 시설물이 그대로 남아있어 뒤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사진 촬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카메라를 막던 관계자들은 동사 사건 이후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남은 동물은 전혀 없냐는 질문에 “사건이 터진 이후에 전부 위탁업체로 보냈다” 고 강경하게 주장하던 관리자의 말과는 달리 무너진 담장 너머로 몰래 들어가 본 프레니월드에는 달마시안과 닥스훈트 등을 포함해 열 마리가 넘는 개들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었다. 사납게 짖어대는 애완견들 외에도 승마 코너의 말들 역시 좁은 마굿간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겨울을 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탄생한 애견테마파크에서 되려 애견이 동사하기까지 한 이번 사건은 동물이 인간의 유흥을 위한 객체로 전락해버린 현실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었다. 21세기의 서울, 19세기의 동물원지금의 동물원과 같은 개방형 야외 동물원을 처음 세운 사람은 1907년 독일 슈텔링겐에 20세기를 대표하는 동물원을 세운 카를 하겐베크(1844~1913)이다. 당시 그의 동물 전시는 혁명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아시아를 포함한 유럽 이외 대륙의 사람들을 데려와 인간 동물원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유럽인들이 비 유럽인들을 보는 시각과 지금 우리가 동물을 보는 시각이 비슷했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비 유럽인들은 ‘서구화’인 문명화에 성공하여 전시품의 신세를 면했다는 것.
| ###IMG_2### |
| 한데 뒤엉켜있는 캥거루들. 고향땅의 초원을 뛰노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
하지만 동물들은 아직도 유리창 혹은 철창 너머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받으며 하겐베크 시절의 동물원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의 동물원 역시 19세기에 탄생했던 초기 동물원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물원인 어린이대공원과 서울대공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점, 화장실, 기념품점 등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넓고 안락한 것에 비해 동물의 공간은 협소하고 볼품없다. 2004년에 동물원에서 사망한 1백18마리의 동물 중 55%가 간경화, 뇌출혈 등 인간이 걸리는 성인병으로 사망했다는 통계가 보도된 적이 있다. 이는 동물원의 동물들이 자연과 동떨어진 환경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린이대공원은 서울대공원에 비해 현저히 시멘트 바닥이 많다. “아무래도 시멘트 바닥이 청소하기에는 훨씬 수월하니까요” 어린이대공원에서 사람들이 주는 과자를 받아 먹는 염소를 지켜보던 한 사육사는 시멘트 바닥 위의 배설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영양상태에는 큰 문제가 없어요. 특별히 주의 기울일만한 부분도 없구요.” 하지만 온갖 감미료에 입맛이 길들여져 가는 염소에게서는 더 이상 자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밀림에 서식하던 오랑우탄에게 모래바닥 사육사를 제공하면서 벽에 울창한 밀림 벽화만을 그려놓은 동물원의 단면은 지금의 동물원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려준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 – 생태동물원
| ###IMG_3### |
| 어린이대공원의 맹수사. 시멘트 바닥에 철근 구조물에서는 생명의 온기를 느끼기 어렵다. |
| ###IMG_4### |
| 베를린동물원의 맹수사. 자연스러운 환경 조성이 눈에 띈다. 사진출처 : 하호 |
예술문화 비평가인 존 버거는 ‘공공 동물원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은 일상생활에서 동물이 사라지게 되는 시기이며, 사람들이 동물을 관찰하고 구경하러 가는 동물원은 사실 그런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곳’ 이라고 썼다. 인간 중심의 문명 발달로 평화로운 공존은 어려워졌지만, 동물원이 필요하다면 최대한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며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외국의 선진 생태동물원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은 개방형 우리가 아닌 작은 관람창을 통해 동물을 관찰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이는 동물들이 대중의 시선에 노출됨으로써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시키는 등 동물을 위한 동물원의 모습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서울대공원은 2002년 발표한 선진화 10개년 계획을 통해 생태형 동물원으로 탈바꿈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올해 9월까지 완공하겠다던 1만 6000평 규모의 한국생태동물원은 아직 착공조차 하지 않고 있다. 동물 보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서식지 내에서 생존을 영위할 수 있는 ‘서식지 내 보존’ 이지만 사실상 인간의 문명으로 뒤덮인 지구에서 동물의 서식지를 보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여 동물원 같은 곳에서 개체를 보존하는 것이 ‘서식지 외 보전’ 인데, 이는 주로 동물원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서식지 외 보전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외국의 생태형 동물원의 경우 명칭부터 ‘동물보전센터’ 등으로 변경되었으며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종 보존과 생태교육의 현장이라는 본래 목적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
| ###IMG_5### |
| 창살 너머로 다시 날아볼 수 있을까? 어린이대공원의 대머리독수리에겐 날개짓을 할 공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
분명히, 동물은 지금의 동물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하지만 비단 동물원의 동물들만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피를 위해 희생되는 많은 동물들이나 인간이 쓸 화장품, 약품을 위해 실험대상이 되고 있는 동물, 단순한 오락거리 제공을 위해 피를 흘리며 동족과 싸워야 하는 투견, 투우 등… 이제 곧 봄이 오면, 겨우내 휑했던 동물원도 나들이객들로 붐빌 것이다. 철창 우리 너머로 무심한 눈길만 던지지 말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본다면 그것만으로도 동물의 권리를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실험대 위에 올라와 안구에 약품을 테스트당하는 토끼가, 주인 가정의 고요를 위해 성대 결절 수술을 받은 애완견이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보세요, 하고 말이다. “나는 야생을 잃고 감옥같은 곳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의 생활, 몸짓과 눈, 표정을 통해 드러나는 ‘마음’ 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동물원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별’ 의 감독인 황윤씨는 말한다. 사람의 눈높이 대신 그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사라진 동물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은 이제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