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삽시다.’ 부동산 투기꾼들을 부추기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똑같이 땅을 사더라도 사유재산을 늘리기 위한 것과 미래를 위한 유산을 지키기 위한 것은 엄격한 구분이 필요하다. 후자는 ‘자연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땅을 삽시다’를 외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피상적인 말 같지만 함께 성금을 모아 산 땅이 최순우 옛집, 동강 제장마을,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에 이르고 이런 곳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정도면 이들의 땅 구입이 부동산 투기꾼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가? 문화유산을 시민의 힘으로 보전하겠다는 그들. ‘한국 내셔널트러스트’를 찾았다. 동유재산문화가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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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현판 |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 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해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 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이다. 1895년 영국에서 내셔널트러스트 협회가 설립됐고, 국내에서는 2000년 1월 발족했다.하지만 공식적인 단체 창립 이전부터 ‘미래세대를 위한 신탁’이라는 정신과 이념은 국내에 있어 왔다. 그것은 바로 한국 전통의 ‘동유재산문화’다. 동유재산이란 공동체와 운명을 같이 하는 재산으로 구성원 모두가 동의 하더라도 개인소유 또는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송산이나 공동 어장과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시기, 공동 자산을 개인명의로 등록해야 함에 따라 동유재산들이 소멸하게 됐고, 그 후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지금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흐름이 이어지게 됐다. 광주 무등산 난개발을 막기 위한 시민들의 땅 사기 운동이 국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시초다. 이후 정부에서 그린벨트 지역을 해제, 축소하자 이를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그린벨트로 소유권 행사에 제약을 받았던 지역주민들이 갈등상황에 봉착하게 됐다. 이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내셔널트러스트가 더욱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사유재산 행사로 인해 피해를 받은 시민들에게 성금으로 보상하며, 문화유산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땅 사기 운동으로 구입한 땅은 내셔널트러스트 이름으로 등록이 된다. 하지만 예전에는 관련법이 없어서 이렇게 구입한 땅을 내셔널트러스트의 이름으로 등록할 수 없었다. 땅은 단체가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 등록해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내셔널트러스트 대표의 이름으로 등록이 됐다. 이 경우엔 대표가 구입한 땅을 자의적으로 매매, 양도할 수 있다는 문제가 남게 된다. 그러나 2006년에 들어 국민신탁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국민들이 힘을 모아 구입한 땅을 단체의 이름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됐고, 그 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둘 수 있게 됐다. 정부에서는 이 법에 따라 신탁법인을 만들어 올해 하반기에 설립할 예정이다. 앞으로 내셔널트러스트는 이렇게 만들어질 신탁법인들과 대등하게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내셔널트러스트 자체에서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땅을 매입할 수 있고, 국가의 신탁법인과 임차관계를 형성해 임대 받은 땅을 관리·유지 하거나 보존활동을 할 수 있다. 기존 환경단체와 차별화를 선언하다.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는 8명의 실무자가 있다. 현장성이 중요하다보니 실무자의 수가 부족해 자원 활동가들도 다수 동참해 운동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다른 환경단체들과 동일하지만, 그 방향성에 있어서는 차별화를 지향한다. 동강 댐 건설에 관한 논쟁이 한창일 때도 다른 단체들이 댐의 백지화에만 매달렸던 반면, 내셔널트러스트에서는 땅 매입 운동을 통해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하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취했다. 이 밖에도 난개발 반대운동, 보전에 대한 대안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주민들과의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등 환경운동의 여러 가지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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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된 매화마을 |
처음에 언급했듯이,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서는 현재까지 시민자산을 3호까지 지정했다. 이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우가 바로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다. 매화마름은 1998년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식물이다. 강화에서 매화마름 군락지가 발견됐을 당시 이곳은 경지정리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이곳을 매입하려던 내셔널트러스트 측과 마을 주민들 간의 반목은 매우 심해서 직원들이 창고에 갇혀 협박을 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002년도에 912평의 땅을 매입한 이후 마을이 매화마름 마을로 유명해지고, 친환경농법을 사용하는 이 지역의 농산물 가치 또한 높아지게 되면서 환경보호에서 나오는 이익이 지역농민에게 성공적으로 환원되는 사례로 꼽히게 됐다. 현재는 마을 주민들의 참여도 늘어 ‘강화매화마름위원회’의 절반 정도가 마을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매화마름 군락지의 보호 방법에서부터 친환경적인 농작물 경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항들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동강의 경우 땅 매입에 한번의 실패를 겪은 후, 2004년 제장마을에서 5200평의 땅을 매입했다. 하지만 매입은 시작일 뿐, 이 지역 주민의 이익과 환경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사람들의 참여가 우리 활동의 기초가 됩니다.”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의 활동은 앞에서 나왔듯이 영국의 모델을 기초로 시작됐다. 1895년 시작된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은 긴 역사를 자랑하듯 ‘트러스트 액트’로 법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참여하는 시민들만 300만명이 넘으며, 이들을 통해 모으는 연회비만 해도 1000억이 넘는다.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상속세가 많이 부과되는 영국의 역사적 배경에서 성장한 측면도 있지만, 위와 같은 선진적인 시민의식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내셔널트러스트에는 1,400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월회비는 10,000원이고 청소년은 5,000원이다. 하지만 그 이외에 특정한 사업이 있을 때마다 목적성 기부금으로 회비와 별도로 내주는 회원들이 많다. 영국과 비교하면 극히 미비한 참여율이지만 예전에 비해 점차 회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 시민공모전을 통해 일반인들의 참여를 도모하고 있다. 시민공모전은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을 시민의 공모로 선정하는 행사로 2006년 현재 제 4회까지 개최됐다. 시민공모전에서는 실제로 보호를 요하는 희귀한 자연 유산, 문화유산에서 자신의 뒷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들이 응모되곤 한다. 자연·문화유산의 공모에서 뿐만 아니라 그 선정에 있어서도 네티즌 투표라는 방식을 통해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물론 그 선정에 있어서는 각 영역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단의 엄격한 심사를 거치고 있다.현재와 미래를 소통하는 통로로 발전하길…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이 내셔널트러스트에서 활동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봤다. 가장 먼저 정기적으로 일반 사무보조를 할 수 있는 자원 활동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매달 정기적으로 발송되는 뉴스레터까지도 일일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매입한 지역에서 친환경적인 경작, 매입 후의 관리 등을 위한 일손, 여름방학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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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내셔널트러스트를 꾸리는 사람들 |
내셔널트러스트에서 개최하는 캠프를 진행하는 인솔선생님도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활동과 더불어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회원도 언제든지 환영이다. 가치있는 자연·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일하는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활동가들은 언제 가장 보람을 느낄까? 자연유산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금호 부장은 1999년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의 설립 이후 발전과정을 함께해온 5년 동안 가장 뿌듯했던 시간은 동강의 땅을 매입하면서 문서에 사인하던 단 ‘10분’이라고 한다. 실제로 각종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자신으로서는 모든 일이 쉽고 기쁠 수만은 없다고 한다. 그가 말하듯이 내셔널트러스트의 모든 성과는 그들의 고생과 노력의 굵은 땀방울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땀방울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희망으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