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문가 지승호를 인터뷰하다

봉준호, 하종강, 유시민, 크라잉넛, 박노자, 강준만, 마광수, 한홍구, 안수찬.이 사람들의 공통점은.지승호와 한 번 이상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도대체 지승호가 누구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이 있겠지만 그는 인터넷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한국 최초의 인터뷰 전문가이다.

봉준호, 하종강, 유시민, 크라잉넛, 박노자, 강준만, 마광수, 한홍구, 안수찬.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지승호와 한 번 이상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지승호가 누구지?”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이 있겠지만 그는 인터넷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한국 최초의 인터뷰 전문가이다. 국내 유일의 전업 인터뷰어인 그는 최근 「비판적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마주치다 눈뜨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 등에 이은 열 번째 인터뷰집인 「禁止를 금지하라」를 펴냈다. 11월 23일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섭외하기가 쉬울 것 같아서 부른 거죠?”라며 능청스럽게 첫인사를 건넸다. 그의 말대로 이메일 한방에 섭외는 끝났지만 전문 인터뷰어를 앞에 두고 인터뷰어 노릇을 해야 하는 기자는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사회에도 관심이 없던, 그저 농구하고 음악듣기만을 즐기던 사학과 대학생이 잡은 첫 직장은 일종의 IT업계. “외국 미디어에 있는 정보를 모아다가 한국 회사에 넘겨주는 일을 했는데 그걸 통신을 이용해 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핫윈드’라는 잡지와 함께 일을 하게 됐고, 거기 편집장이랑 술을 마시다가 사회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는데 글로 써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어요.” 인터넷 논객다운 시작이다. 이렇게 시작한 글쟁이 인생은 99년 ‘시비걸기’라는 시사평론 사이트를 열면서 본격화 됐다. “‘딴지일보’ 나온 시기랑 비슷하게 ‘시비걸기’를 시작했는데 수익이 안 나서 1년 만에 문을 닫았어요. 콘텐츠만 가지고 프리챌로 갔죠.” 이사람 정말 강하게 자랐구나.“사람들 만나는 게 정말 큰 공부예요”맨땅에 헤딩하기처럼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인터뷰라는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해 나갔다.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 좀 다르잖아요. 저사람 왜 저럴까, 왜 저렇게 욕먹을까, 궁금하잖아요. 사람들은 무슨 말이든 자기 생각과 다르면 일단 욕부터 하는 경향이 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곰곰이 따지기는 어렵잖아요. 그런 사람 찾아가서 발언 기회를 주고 하나하나 캐물어보는 거죠.” 그는 인터뷰를 위해 철저히 준비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인터뷰이와 관련된 책은 물론이요 블로그에 달린 댓글까지 꼬박꼬박 챙겨 읽고 질문을 준비한다. “요즘은 바빠서 예전만 못하죠.” 유명세 덕분일까? 그는 자신의 불성실(?)을 너무 쉽게 인정해 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섭외하는 게 참 힘들어요. 「감독, 열정을 말하다」2편을 준비하는데 아직도 저를 잘 모르시는지……”처음에 나열한 이름들에서 옅은 공통성을 짚어내자면 우리사회에서 비교적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인물들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늘 맘에 드는 사람만 인터뷰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제가 인터뷰를 좀 부드럽고 호의적으로 한다고 말씀하는 분들 있는데 만나보면 신뢰감도 쌓이고, 그래서 제 인터뷰가 포지티브한 거죠.” 보수적인 분들을 만나도 계속 그럴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으니 “글쎄요, 우선 그분들이 저를 만나줄 것 같지 않고, 최근에 안경환 인권위원장을 만났는데 제가 좀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각종 인권단체에서 그분에게 공격을 많이 했거든요. 나름대로 하실 말씀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론 의혹만 증폭되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 때 재판정에서 감정인으로 나서서 마광수의 유죄를 주장한 사람에게 인권위를 맡기면 안 된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이 영 시원치 않은 듯 하다.“사람들 만나는 게 정말 큰 공부예요. 책은 문자 속에 갇혀 있는 부분이 있어요. 반면에 인터뷰는 텍스트를 보고 가서 직접 만나 더 깊은 얘기를 하니까 생생한 공부를 하는 거죠.”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남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 게다가 그는 누군가와의 만남 자체가 매우 즐겁다고 한다. 때론 “넌 좋겠다. 맨 날 훌륭한 사람 만나면서 과외받고 다녀서”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주변에서 보기에도 그의 작업이 꽤나 즐거워 보이나 보다.“막연한 얘기지만 조금씩 세상이 나아지고 있는 거 같아요. 과거엔 자기 조직이 있거나 그런 걸 잘 만드는 사람이 성공했지만 요즘은 독립군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잖아요. 강준만 교수 같은.” 그가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우리 사회의 단면은 그랬다. “하지만 소통이 잘 안되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우려스럽죠. ‘적이지만 멋지다’ 이런 거 없잖아요. 일단 우리 편이 아니면 상대방의 인격 자체를 무시해버리고. 그게 극단적으로 드러난 경우가 황우석 사태죠. 그래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진실을 밝혀내고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 희망적이기도 해요.” 인터뷰 전문가답게 소통을 이야기하는 그는 “소통의 많은 부분을 언론이 쥐고 있지만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진 않아요. 언론사의 이익과 관련된 부분이 기자의 이익과도 관련되어 있으니까. 일단 주류로 인정받은 것에 대해 반대하면 삐딱이로 몰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고요”라며 안타까워했다.“이게 편하고 행복해요. 괜히 이상한 사람 만나서 스트레스 받는 것 보다는”그는 스스로를 이제 막 유년기를 벗어난 소년으로 생각한다. “열 번째 책이 나와서 기뻐해야 할 때인데 우울해요. 다음번에 뭘 보여줘야 할지도 막막하고 겁도 나요. 그래도 5년 넘게 이 분야에서만 일해 온 숙련 노동자인데 경제적 사정도 암울하고.” 월급을 마지막으로 받은 게 언제냐고 물어보니 잘 기억을 못한다. “「우먼타임즈」에서 일할 때죠. 그 때 연봉이 1600이었나 1800이었나. 지금하고 비교해보면 상당한 고수익이었죠.” 아, 지금도 역시 강하게 자라고 있구나. “그런 거 때문에 맨 날 불평하고 투덜대도 여전히 돈 안 되는 일만 하고 있어요. 그냥 계속 걸어가는 거죠. 맘먹으면 돈 되는 거 만들 수도 있지만, 이게 편하고 행복해요. 괜히 이상한 사람 만나서 스트레스 받는 것 보다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게 있냐고 묻자 그는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각 분야에서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좀더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하고 생각해요. 사람이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고, 교육도 공평하게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하죠”라고 말한다.워낙 자유로운 복장과 머리스타일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생각보다 동안(童顔)이다. 벌써 중학교 다니는 딸이 있단다. 아버지로서의 자신에게 점수를 매겨 달라고 하니 “좋은 점수를 주지는 못할 것 같아요. 딸은 저하고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고 막 욕도 하고 그러는데, 제 자신은 딸의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아이와 애 엄마는 안 그런 거 같네요”라며 웃는다. “맛있는 거 사주고 힘들어하는 거 챙겨주고 이런 면에서 그다지 건실한 가장은 아니죠”라며 이어지는 말엔 아버지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경쾌한 그의 어조가 살짝 누그러드는 순간이었다.“지금 좀 의기소침해졌는데, 내년엔 가수들과 인터뷰를 해서 책을 내려고 해요.” 그는 가수들이 지금까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나중에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것도 중요한지만 당대에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수들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죠.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작업을 하고 세상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는 거 같아요. ‘딴따라’라고 폄하하기만 하고.” 여전히 그는 조금씩 투덜대지만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다시금 경쾌하고 탄력 있는 말투를 살려낸다. 비록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그는 계속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를 알아주는 사람 역시 그의 걸음걸이에 맞춰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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