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시아 인권’인가?“인권센터는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10여 년 동안 지속해 오다 보니 한계에 봉착했다. 북한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한 인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힘들다는 측면도 있었고, 좀 억울하긴 하지만 북한 인권을 거론한다는 점 자체로 이른바 친미 보수세력으로 낙인이 찍혀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권센터의 탄생 배경에 대한 서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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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인권센터의 로고가 새겨진 현판. 인권센터는 ‘아시아에 인권의 빛을!’이라는 모토 하에 다양한 차원의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
그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아시아라는 지역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시아 차원의 인권보호체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됐고, 이를 수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인권센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유럽 연합은 물론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 대륙에도 지역 차원의 인권보호체계가 존재하는 반면 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인권 협약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서 교수는 인권센터가 지향하는 ‘인권’의 개념을 정치적 시민권과 사회경제적 기본권을 포괄하는 보편적 권리로 규정했다. 그는 “양쪽 가운데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를 놓고 이념적 대립이 있지만, 우리는 어느 한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권의 포괄적 보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하지만 상당히 이질적인 종교와 문화가 혼재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 단일한 인권보호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지역적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좁게 보면 동북아시아로 한정시킬 수도 있지만,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아시아 전체로 관심 범위를 확장했다. 현실적 문제로 인해 중동 지역은 제외됐지만,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를 포괄하는 지역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고 답했다.“경제 발전 논리로 인권 탄압을 합리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아시아 지역의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에는 ‘선(先) 경제발전 후(後) 인권신장’의 논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즉,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야 중산층이 형성되는 것이고, 중산층들의 시민의식이 고조된 연후에야 사회의 인권 보장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 교수는 이러한 견해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는 “그러한 논리는 인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제발전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되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독재 체제에서 경제발전에 성공한 이후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의 예를 많이 드는데, 그렇다면 경제발전에 성공하지 못한 아시아의 대다수 나라에서는 인권이 계속 탄압되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오히려 인권상황을 개선함으로써 경제발전이 더 잘 될 수도 있는 것이다”라며 인권 문제를 경제발전 수준과 연계하는 입장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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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창록(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그는 인권센터의 부소장을 맡고 있으며, ‘Human Rights and Asia’라는 제목의 수업을 인권센터와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
그는 인권 문제를 체제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미국이 민주주의 확산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교적 이익을 위해 인권을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했다. 인권을 빌미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 미국식 민주주의가 최고이고 다른 나라는 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편협한 미국우월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진정으로 다른 나라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다면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말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시민사회단체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인권센터가 지향하는 미래상한편, 서 교수는 인권센터의 지향 모델로 국제인권기구(IIHR)를 꼽았다. IIHR은 프랑스 스트라부르에 위치한 국제 비정부기구로, 인권문제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는 “IIHR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유엔 관련 기구에 취직할 때에도 인센티브를 주는 등 IIHR은 인권문제를 다루는 비정부기구 중에서 상당히 권위가 있는 기관이다. 인권센터도 활발한 대내외적 활동을 통해 나름대로의 지향가치를 실천하면서 IIHR처럼 인정받는 기관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인권센터가 수립을 목표하고 있는 아시아인권보호체계는 아직 이행 방안이 담긴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유럽의 ‘헬싱키 프로세스’를 모델로 장기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1975년 미국과 구소련, 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35개국이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열고 헬싱키협약을 체결한 데서 출발했다. 헬싱키협약은 인권문제를 다른 경제적·군사적 문제들과 동등하게 또는 보다 우선적으로 취급했으며, 국제 사회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권센터는 아시아인권보호체계의 수립을 위해 시민단체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으며,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반노예기구(Anti-slavery International)와 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동성매매근절기구(ECPAT International) 등과 연대하고 있다.인권포럼, 인권아카데미 등의 다채로운 행사도 열어인권센터는 매년 특정 주제에 중점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아시아인권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아동노동과 인신매매’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으며 영국과 일본을 비롯해 인도,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정부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내년 포럼의 주제는 ‘상업적 아동 성착취’로, 아시아 지역에서 만연하고 있는 아동을 상대로 한 성착취에 대한 현황을 가늠하고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포럼과 더불어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관련 주제 워크숍이 내년 2월 초에 2박 3일 동안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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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아시아인권포럼의 장면. 제1회 포럼은 지난 2월에 열렸다. 내년 초에는 ‘상업적 아동 성착취’를 주제로 한 제2회 포럼이 열린다. |
인권센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인권아카데미’는 국제적 인권보호체계의 기초 배경에 대한 강연 및 토론의 자리로 1년에 두 차례, 각각 4월과 10월에 8주간의 일정으로 열린다. 비회원들에게는 4만원의 참가비가 있으며 운영 기간 중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임을 갖는다.‘아침논단’이라는 이름의 강연회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아침논단’은 아시아 국가들이 인권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으로 각국의 활동가를 초청해 역시 강연 및 토론을 갖는다. 매주 마지막 주 금요일 이른 아침에 열리며 아침식사도 제공한다.인권센터에서는 인권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고려대학교와 협력해 ‘Human Rights and Asia’라는 제목의 강좌도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에 수업이 개설되어 있으며 서창록 교수가 강의를 맡아 국제 인권기구에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은 영어로 이뤄지며, 고려대 학생뿐만이 아니라 인권센터의 회원도 청강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다.“활동에 어려움 있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극복해 나갈 것”하지만 인권센터는 설립된 지 1년 밖에 되지 않아 인력 풀과 예산 구조가 상당히 취약한 현실이다. 황선영 간사는 “개인회원의 경우 학생에게는 1만원, 일반에게는 2만원 내지 5만원의 연회비를 받고 있다. 기업회원은 1년에 50만원 이상을 내도록 되어 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가입한 기업회원은 없는 실정이다”며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래서 현재는 발기인들이 출연한 설립기금과 노동부, 국가청소년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국가기관들에서 제공하는 후원금 위주로 각종 행사 개최에 필요한 비용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황 간사는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1년 정도 자원봉사활동을 했고 하나원에서 탈북청소년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한 적도 있었다.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됐을 때, 반노예기구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지금 활동가로 일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녀는 “인권센터의 활동이 기구의 성격상 월드비전과 같은 개발단체처럼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에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인권센터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네팔 출신의 수베디(아주대 국제대학원 석사과정) 씨는 인터뷰 전날인 11월 8일 고국 네팔에서 장기간의 내전이 종식되고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정의 체결에 합의했다며 기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센터에서 서류 정리, 리서치 등의 일을 돕고 있다”며 자신이 하는 일들이 고국 네팔은 물론 아시아 전체의 인권 신장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뒤 다른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한 달 전부터 인권센터에서 일하게 됐다는 이성현 간사는 “우리 주위에도 인권과 관련된 이슈가 산재해 있다. 우리 주변의 일들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더욱 좋겠다. 인권센터에서 개최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대학생도 적극 참여해 볼 만하다”며 『서울대저널』 독자들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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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센터 사무실의 광경. 왼쪽부터 황선영 간사, 이성현 간사, 인턴 수베디 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