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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버글스(The Buggles)’의 이 무시무시한 예언은 한때 라디오에 몸담고 있는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지만, 기실 라디오만큼 오래도록 사랑받은 매체도 없다. 컬러TV시대의 개막과 언론통폐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라디오방송은 작년 2월로 80주년을 맞았다. 이 소리나는 마법상자가 처음 청취자를 사로잡았던 것은 무엇보다 라디오드라마 방송때문이었다. 한국방송의 출발과 함께 시작한 라디오드라마는 1960~70년대에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당시 저녁 시간대에는 매시간 연속극이 편성되는 기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공중파 방송에 남은 라디오드라마는 손에 꼽힐 정도이다. 그 많던 라디오드라마는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순수하고 소박했던 라디오드라마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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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데뷔해 40년 넘게 성우생활을 한 박일 씨. 그는 라디오드라마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
초창기 외국의 희곡이나 명작을 번역해 내보내던 라디오드라마 방송은 1956년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연속극 ‘청실홍실’을 계기로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일일연속극, 멜로드라마, 사극,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포맷을 소화했던 라디오드라마의 인기는 가히 최고였다. 연기를 했던 성우들의 인기도 프로그램의 인기 못지않았다. 지금은 외화 ‘CSI 과학수사대’의 ‘길 그리섬 반장’으로 더 유명한 성우 박일 씨도 멜로드라마인 ‘사랑의 계절’로 인기반열에 올랐다. “매일 여고생들에게 팬레터와 선물을 받곤 했다. 하루는 혈서로 쓴 편지를 받아 놀라기도 했다.”이 정도로 인기가 높다보니 너나할 것 없이 성우시험에 응시했다. 박 씨가 시험을 볼 때만해도 10명의 성우를 뽑는데 2600명의 응시자가 모이던 시절이었다. 비단 성우뿐만이 아니었다. 라디오드라마는 방송작가와 가수들의 데뷔무대가 되기도 했다.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드라마작가 김수현 씨와 국민가수로 불리는 조용필 씨도 라디오드라마를 거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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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영 감독의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 역시 한운사 씨의 라디오드라마가 원작이다. 전쟁 중 학병으로 끌려간 한국 청년과 일본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뤘다. |
라디오드라마의 최고의 전성기는 홈드라마가 유행했던 1970년대였다. 방송국마다 10개 이상의 라디오드라마를 편성했으며, 인기몰이를 했던 대부분의 작품이 영화화됐다. 라디오드라마가 넘쳐났지만, 제작환경은 지금만큼 좋지 못해 어려움도 많았다. “좁은 스튜디오에 마이크도 하나밖에 없으니 20분 동안 마이크 앞에서 꼼짝 않고 녹음을 했다. 혹여 처음 온 후배가 실수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녹음을 해야했다.” 어떤 날은 하도 긴장을 해 녹음을 마치고 나면 대본이 땀에 축축하게 젖어있기도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씨는 1976년에 녹음한 홈드라마 ‘해바라기 가족’을 꼽았다. “한 가옥에 2~3세대가 함께 사는 이야기,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룬 홈드라마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가난하지만 무엇이든 나눠먹으려고 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순수하고 소박했던 마음이 그립다.” 밀려오는 영상매체에 설 곳을 잃은 라디오드라마하지만 80년대 TV가 대량으로 보급되자 라디오드라마는 점차 줄어들었다. 컬러TV는 한순간에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심지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TV를 통해 물밀듯이 밀려오는 정보와 이미지에 사람들은 더 이상 라디오드라마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나마 90년대까지 공중파 방송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던 라디오드라마는 이제 KBS의 순수문예단막극인 ‘KBS 무대’와 MBC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 50년’정도뿐이다.라디오드라마의 위축은 성우들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찾게 했다. 여전히 외화나 애니메이션의 더빙을 맡기도 하고, 사미자 씨나 전원주 씨처럼 아예 TV로 전향하는 사람도 많았다. 영상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좋은 목소리와 연기실력까지 두루 갖춘 성우들은 어딜 가나 환영받았다. 하지만 할 일이 많아졌다고 해서 현 상황이 마냥 기쁠 리 없다. 호흡 하나 놓치지 않고 연기했던 성우들이나 20분 드라마를 위해 며칠을 녹음하고 편집했던 PD들에게 라디오드라마의 위축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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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 50년’ 연출을 맡고 있는 오성수PD.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그의 섬세한 손놀림에서 현대사 한페이지가 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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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동 50년’ 성우들이 녹음작업을 하고 있다. 맡은 배역의 목소리, 말투, 억양까지 꼭 같다. |
1988년에 첫 전파를 타 올해로 20년 째가 되는 ‘격동 50년’의 오성수 PD 역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라디오드라마는 이제 사양산업이 돼 버렸다. 라디오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나로서는 착잡할 수밖에 없지만, 몇 명의 노력으로 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디오드라마가 한순간에 황금기에서 사양산업이 되기까지는 컬러TV의 보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안에는 냉정한 경제논리가 숨어있다. TV드라마에 비해 라디오드라마의 제작비는 적은 편이지만, 광고효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게다가 라디오드라마는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에 비해 작가, 성우, 스텝이 많이 필요하다. “20분 방송을 하는데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인력과 돈이 많이 드니 본사의 지원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오 PD는 설명했다. 또한 집중해서 들어야하는 라디오드라마는 바빠지는 현대인의 삶에 어울리지 못했다. 연속극 시간이면 삼삼오오 라디오 앞에 모여들어 귀를 기울였던 일은 불과 십여 년 사이에 먼 옛날 풍경이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더 이상 좋은 라디오드라마를 만드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오 PD도 오로지 돈과 인기만 쫓는 현 상황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제 라디오드라마를 흔쾌히 맡아줄 사람이 없다. 작가며 프로듀서 모두 TV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하려고 하지 인기도 없고 어려운 라디오드라마를 하려고 하진 않는다.” 세월이 흐른 만큼 변화도 필요해물론 HDTV가 보편화되고 DMB가 나오는 요즘 라디오드라마가 점차 퇴조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청률이 마치 최우선의 척도인양 경쟁에만 혈안이 돼 있는 방송제작환경도 라디오드라마의 위축에 큰 역할을 했다. TV뿐만 아니라 라디오의 모든 주파수에서도 젊은 인기연예인의 노래와 토크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박일 씨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와 이익에만 집착해 라디오드라마를 홀대하는 방송국을 비판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 제작환경과 기술이 좋아져 조금만 돈을 투자한다면 좋은 드라마가 나올 텐데, 왜 라디오드라마는 몇 십년 전에서 제자리걸음인지 모르겠다”며 라디오드라마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제야말로 라디오드라마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루 종일 운전해야하는 택시기사, 병원에서 무료함을 달래야하는 환자, 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그리고 TV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당장은 이익이 없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그 동안 애청했던 이들을 위해 라디오드라마를 편성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언제나 ON AIR라디오드라마의 인기가 많이 사그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애청자들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택시기사를 시작한지 2년이 돼 간다는 이 씨는 집에 TV가 없다. 매일 밖에 나와 일하다보니 집에서는 잠만 자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꼭 챙겨 듣는 것이 바로 라디오드라마 ‘격동 50년’이다. 이 씨는 “역사나 정치드라마들이 그렇듯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양(陽)뿐이라면 ‘격동 50년’에서는 양(陽)과 음(陰)을 골고루 보여주니 매 회 내용이 궁금하고 흥미롭다. 비록 꾸며진 부분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만드시는 분들이 얼마나 조사를 많이 하시겠냐”며 ‘격동 50년’을 만드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성수 PD는 “정식기록이 없는 현대사를 다루다보니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에 항의전화가 오는 날도 있고 때론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며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제작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청취자들에게 더 많은 정치 사건들의 비화를 파헤쳐 방송에 내보내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다. “94~95년에 다른 어떤 방송보다 먼저 광주사태를 다뤘었는데, 그 뿌듯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더라”는 그의 표정에 미소가 돈다. 하루에도 몇 십 개씩 무수히 쏟아지는 천편일률적인 TV드라마와 달리 라디오드라마의 매력은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순수문예 라디오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안 좋은 소식을 내보내는데, 라디오드라마 정도는 훈훈하고 잔잔한 감동을 줘야하지 않을까.” 오 PD의 작은 바람이다.
| 듣기만 할소냐, 우리는 직접 만든다. – 서울대학교 라디오드라마소모임 ‘라디오천국’ 클럽장 서아람(법학 05) 씨 인터뷰 Q: 라디오천국은 어떤 모임인가? A: 라디오천국(club.cyworld.com/snuradio)은 서울대학생들이 모여 라디오드라마를 제작하는 소모임이다. 정식 동아리보다 훨씬 작은 규모지만,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로 운영되고 있다. 보통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50분 분량의 라디오드라마를 각본 단계부터 편집 단계까지 직접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Q: 라디오드라마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는 녹음기 하나만 갖고도 라디오드라마를 만들었다. 프로 수준의 작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배우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자신 없어하다가 이젠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재미를 붙이신 분들도 있다. Q: 라디오천국에서 하는 활동은 무엇인가? A: 모임이 생긴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아직 정식으로 내놓을 작품은 없지만, 편집까지 마친 라디오드라마는 세 편 정도 있다. 정기 모임을 갖고 대본에 대해 논의하고 발성, 연기 연습 등을 한다. 현재 첫 표제작으로 ‘suicide club’을 연습 중이고, 완성되면 스누라이프 등에 올려 서울대생 모두와 함께 듣고 싶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활동할 예정이고, 작품이 여러 개 완성되면 CD를 제작할 계획이다. Q: 라디오천국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A: 언제나 웃고 즐기면서 가족같은 분위기로 운영되는 소모임인만큼 관심 있으신 분은 아무런 부담없이 오셔도 된다. 대신 각오는 조금 하고 오셨음 한다. 저번에 어떤 분은 라디오 드라마가 궁금해서 오셨다가, 목소리가 좋아 주인공으로 발탁되셨다.(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