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관(이하 학관)에 가면 여러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 기타 소리 등등. 여러 소리들 중에 유독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는 소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여민락 동아리방에서 은은히 퍼져나가는 해금소리이다. 그 소리에 끌려 가본 여민락의 동아리방은 가족적인 분위기와 전통 그리고 열정이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었다.“저희가 24기입니다”photo11980년도에 단소 풍류회로 시작했다는 여민락은 처음엔 열정있는 몇몇 선배들이 ‘국악을 다함께 체험해보자’ 는 취지로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24년의 전통을 증명하듯 동아리방은 선배들이 기증하거나 직접 만든 장롱, 이불, 책상, 오디오와 여러 악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잖아도 좁은 그 공간이 평소에는 악기소리로 가득 메워진다고 한다. 현재 활동 주축은 03학번 집행부가 7명 04학번이 20명 이쪽저쪽이고 선배들까지 합쳐 30여 명이 꾸준히 활동을 한다. 신입생 모집은 언제나 하고 있으며 매년 100여명이 가입원서를 낸다. 학내 대부분의 동아리들이 쇠퇴기를 맞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분위기다. 한 주에 두 번 레슨이 있는데 한번은 선배가 또 한번은 ‘싸부’라고 불리는 국악과 1학년이 직접 가르쳐준다.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피리 이렇게 5개의 악부로 나뉘어서 악부 별로 모여 연습을 한다. 현재 집행부의 장을 맡고 있는 박선규(경제,03)씨는 “대부분의 동아리가 그렇듯이 우리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중요해요.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정해진 연습시간 외에도 점심시간이나 공강시간에 동아리방에 와서 연습하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여름/겨울방학 중에는 산골오지로 수련회를 간다. 못 도망가게 꽉 붙잡아놓고 연습을 시킨다나? 또 오는 11월 19일 금요일 두레문예관에서 1년동안 바친 국악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고 한다. “경복궁 등에서 매년 수 차례 공연 요청이 들어오지만 악기가 상할까봐 자주 나가지는 못해요. 이번 정기공연을 마치고 악기 살 돈도 벌겸 외부공연을 생각하고 있긴 해요.” 라고 박선규 씨는 말했다.“우리는 순수 국악동아리에요”photo2옆에서 대금을 연습을 하던 홍형철 씨(국사 01)에 따르면 8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하고 대학생의 사회참여가 당연시되던 시기엔 학술부가 따로 존재했었고 정치적 목소리가 분명했다. ‘마당패탈’처럼 공연에 어떻게 우리의 문제의식을 녹여낼지 고민하고 집회에도 활발히 참여했단다. 그러다가 95년을 전후로 정치적 색깔이 흐려졌고 지금은 아예 없어졌다고 한다. 사회가 바뀌어가면서 학생들의 관심분야가 많이 바뀌고 또 다양해졌다. 댄스 동아리 ‘몰핀’, ‘피에스타’, 마술동아리 ‘몽환’, ‘부자동아리’ 등 최근 들어 새로 생기는 동아리들을 보면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에 충실하려는 학생사회 변화의 추세를 알 수 있다. 박선규 씨는 “지금의 여민락은 전적으로 국악에 대한 관심과 열의로 똘똘 뭉쳐 활동하는 동아리입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국악은 일종의 ‘수양’이라고 할 수 있죠”“모든 음악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국악은 그것만의 매력이 있어요.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깊이가 있다고 할까요? 국악은 일종의 ‘수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공이 쌓인다고 하죠. 같은 곡을 연주해도 작년과 올해가 소리가 다르고 일주일만 쉬어도 그만큼 소리가 안나요. 대금을 잡은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제 악기에 자신이 없고, 국악에 대해 뭐라 말하라면 아무것도 모르니까 부끄러울 따름이죠”photo3대부분 개인악기를 가지고 어릴 때부터 접하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국악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게다가 악기 하나가 수 백 만원이고 줄 하나만 가는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동아리연합회에서 지원금을 받긴 하지만 부족한 재원을 동아리구성원의 회비로 충당하는 열악한 실정이다. “많은 관악인들이 국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국악이란 걸 경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상 그 기회를 보다 넓히기 위해서는 본부의 지원이 절실해요.” 라고 박선규 씨는 말했다. 인터뷰 내내 계속된 한 선배의 대금소리는 동아리방을 가득 채웠고 기자가 가방을 두고 가는 바람에 다시 들렀을 땐 다들 연습에 열중해 있었다. 바닥이 따뜻하기에 전기장판인가보다 했었는데 여민락 사람들의 국악에 대한 열정이 내 엉덩이를 따스하게 해줬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