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typography)라고 하면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문자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일상을 살펴보면 타이포그래피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쉽게 접하는 책, 포스터, 간판 등을 살펴 보면, 어떤 것은 눈에 쉽게 들어오고, 분위기가 잘 어우러지지만, 어떤 것은 무언가 어색하고 답답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쓰여진 글꼴이 의도했던 시각 효과와 얼마나 맞느냐를 느낄 수 있다면 타이포그래피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중, 고등학교 미술 시간 때의 문자 디자인, 컴퓨터의 다양한 글꼴 등을 떠올리면 타이포그래피가 좀 더 만만하게 다가올 것이다. 타이포그래피에 가장 적절한 문자, 한글타이포그래피는 문자, 특히 활자를 다룰 때 활자의 모양, 배열 등에 대하여 다루던 것을 지칭하였으나, 요즘에는 문자로 이루어지는 모든 시각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칭하는 말로서 그 의미가 넓어졌다. 즉, 글꼴, 서체가 타이포그래피의 기본 분야라면, 출판 레이아웃, 영화 타이틀, 웹 페이지, 글자를 사용한 시각 예술 전부가 넓은 의미의 타이포그래피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글은 타이포그래피에 적합한 문자라 할 수 있다. 한글은 제자 원리에서부터 디자인적 요소를 담고 있다. 조음 기관의 형태를 기본으로 한 닿소리에 천지인의 개념을 부여한 홀소리는 그 의미에 걸맞는 모양을 하고 있다.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특유의 글자 구성 역시 다른 글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한글은 바로 창조적 디자인의 산물이다. 그 만큼 새로운 디자인으로의 변용이 용이하다. 한글의 창제와 한글의 디자인적 가능성.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타이포그래피의 축제가 열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바로 ‘제1회 서울 타이포잔치’. 잔치라는 말이 공식 대회 명칭일 정도로 우리의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타이포잔치 전시 속으로이번 타이포잔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5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창립 기념 특별전과 일반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전은 회고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20세기의 디자인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다. 이미 10월 15일 예술의전당 서예관 문화사랑방에서는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와 함께 타이포잔치 국제 디자인포럼을 개최한 바 있다. ‘대머리 여가수’의 연극 대본에서 연극을 보는 듯한 시각적 느낌을 보여 준 프랑스의 로베르 마생, 독특한 잡지 디자인을 보여준 영국의 아트디렉터 네빌 브로디, ‘만달라와 우주’라는 주제를 가지고 동양적인 작품을 내 놓는 일본의 스기우라 코헤이 등이 포럼에 참가하여 주제 발표를 통해 특별전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이 외에 국내 글꼴 연구의 선구자 김진평과 움직이는 서체 디자인의 개척자 솔 바스의 작품이 특별전에서 전시되고 있다. 한 번쯤 생각해 봤을만한 ‘글자체의 변화, 글자 크기의 변화를 통해서 의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마쌩은 이미 60년대에 타이포그래피로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연극에서배우의 감정 상태를 글자체로, 글크기로 표현하고, 배우의 위치 정보는 문단 위치를 통해, 등장인물의 2분간의 침묵은 48페이지의 길이로 표현하여, 대본만으로도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김진평은 한글 로고타입 및 글꼴 디자인의 선구자로서 서울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98년에 타계하였다. 그는 다양한 상표와 제목 디자인을 남겼는데, 그가 디자인한 로고 중에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 많지만 그럼에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 없이 훌륭히 적절한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다. 또한 굴림명조 등의 컴퓨터 서체를 만들었으며, 한글 글꼴 제작 원리를 담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 책은 오랫동안 글꼴 디자인의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스기우라 코헤이의 작품은 글자를 통해 삼라만상을 표현하려는 신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글자 특히 한자 모양에 내재한 의미를 한자 모양을 바탕으로 변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문자와 우주’로 통칭되는 그의 작품에서는 글자의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전에서는 각국 디자이너들의 포스터, 책 디자인, 로고 디자인을 볼 수 있다. 포스터 디자인의 경우 그 목적에 맞게끔 도안을 하게 되는데, 종이를 접은 모양으로 글자를 나타내는 포스터, 색깔의 변화와 글자의 변화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포스터는 그 상상력과 기묘함에 놀랄 정도이다. 거의 모든 작품이 시각적 아름다움과 디자인의 기능성을 잘 살리고 있으며, 영상이나 소리의 크기를 이용한 디자인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새로운 상상, 타이포잔치문자를 읽고 쓰지 못하면 문맹이라고 하였지만, 이제는 문자로 적절한 시각 효과를 주지 못하는 것 역시 문맹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만큼, 타이포그래피는 문자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갖게 되었다. 한글 창제, 금속활자 발명에서 보여주었던 상상력을 21세기의 상상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타이포잔치. 10월 16일부터 12월4일까지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서울 타이포잔치 – 서울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서 문자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직접 느껴보자. (10:00~18:00, 매월 첫째 월요일 휴관, 관람료 일반,대학생 2000원,학생 1000원, 홈페이지 http://www.typojanch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