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 3월 20일 오전 11시 40분 경,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대한 미(美) 폭격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2002년 1월 29일,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선언을 기점으로 표출된, 약 1년간의 이라크와 미국의 대립이 결국 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첫 공격 후 부시대통령은 대 국민 담화를 통해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세계를 위험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전쟁 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는 반전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각 국의 다른 언어 그리고 다른 미국관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위 현장에서는 공통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석유를 위한 전쟁을 중단하라.’라는 것이다. 즉 반전론자들은 미국이 중동지역에 민주주의 전파와 테러리즘 근절을 위해 전쟁을 수행한다는 ‘부시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허울에 불과하며, 전쟁의 진정한 목표는 중동지역 석유 통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와 석유 AP의 ‘Oil Market Braces for Possible Iraq War(1월 6일자)’에 따르면, 이라크의 원유 매장량은 1천1백25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2천5백92억 배럴)에 이어 세계 2위이자, 미국 매장량(2백18억 배럴)의 약 5배에 이른다. 현재 세계의 일일 석유소비량 7천5백만 배럴 중, 이라크는 2백만 배럴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유가는 주로 일일 석유 생산량 최대국가인 사우디(8백만 배럴)를 중심으로 한, OPEC(석유수출국기구)에 의해 조정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3월 20일 전쟁 발발 전, 급격한 유가하락은 OPEC의 석유 증산계획 발표에 영향을 받은바가 크다. 그렇다면 이라크의 유가 결정력은 얼마나 될까? 이라크는 70년대 하루 4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기도 했으나, 80년 이란과의 전쟁, 그리고 걸프전 이후 계속된 유엔의 제재 조치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2002년 9월 래리 린지(larry lindsey) 전 백악관 경제 수석은 “이라크에 석유생산이 정상화될 수 있다면, 3백만에서 5백만 배럴의 석유공급이 추가될 수 있을 것, 이는 곧 유가가 25$선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즉 이라크의 일일 6백만 배럴 이상의 석유는 충분한 가격 조정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 석유, 미국에 도움? 영국의 Economist 지는 ‘All about oil?’(2월 23일자), “The Economic Risks” (2월 20일자) 등을 통해 전(戰)후 미국이 얻게될 이라크 석유에 대한 논란을 소개했다. 석유가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측에 따르면, 전후 이라크에 세워질 ‘애완 동물(puppet)’과도 같은 친미정부는 석유를 급격히 증산, OPEC의 유가 결정력을 약화시켜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미국에 안정적인 원유 공급을 보장할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상당하다. 미국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Council on Foreign Relations(미외교협회)의 James baker는 “석유증산이 정상화되려면 수십 년 걸릴 것”이라 밝혔다. 즉 수년간의 유엔 제재 조치와 이에 따른 투자 부족은 이라크 석유 생산 시설을 눈뜨고는 볼 수 없는(lamentable)한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회 예산위원회는 전쟁비용이 순 군사비용만 걸프전(6주간 800억$달러)를 상회하는 1000억$에서 1500억$이상 들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이번 전쟁은 동맹국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 걸프전과 같이 일본, 중동국가의 전쟁분담금 지원도 약속할 수 없는 상태다. 또한 Yale 대학교의 William Nordhaus는, 이후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평화 유지를 하는데 약 10년 동안 1조$에서 6조$라는 천문학적 액수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즉 이른바 이라크 후세인 독재정권 regime change이후, 민주주의 건설과 평화유지에 쓰일 돈이 많아, 석유 생산 정상화에만 돈이 집중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코노미스트지는 후세인은 전쟁 발발 전, 게다가 후세인이 상당량의 이라크 오일필드 개발권을 미국과 영국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채,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에 넘긴 것으로 보도했다. 이는 곧 미국이 전후 이라크 석유를 차지하는 데 많은 절차적 어려움이 따를 것을 암시한다. 이들 안보리 상임위원회 국가들과 후세인간의 거래를, 미국이 부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석유에 대한 강대국들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면 미국 기업들의 투자는 미루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승리=세계경제회복? IMF(국제통화기금) 통계에 따르면, 유가 10$상승 시 0.6에서 1퍼센트의 세게 경제 인플레이션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석유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총 네 번 발생했다. 1973년 OPEC의 증산거부에 따른 제 1차 석유파동, 1979년 이란 혁명 이후의 제 2차 석유파동,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마지막으로 2000년 OPEC의 감산에 유가 상승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3월 19일 전쟁 직전 사우디의 증산 계획 발표와 불확실성 감소로 유가가 다시 30$선 이하로 하락하기는 했지만, 이번 이라크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칠 파급과 악영향은 현재진행형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의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면, 곧 석유 값이 정상화되어 걸프전 경우처럼 세계 경기가 부양될 것이라 말하지만, 세계 유수의 은행 골드만 삭스(Goldman Sa- chs)는 지금은 그 때와 여러 환경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우선 순 석유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일 266만 배럴을 담당하던 베네주엘라는, 파업 이후 원 생산량의 3분의 2수준인 155만 배럴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라크 여러 원전을 불태우고, 이른 시기에 베네주엘라 석유 생산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OPEC이 부족량을 장기간 메우기는 어려워진다. 둘째로, 현재 세계 주요 산업은 생산 설비 과다상태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생산설비가 포화상태라는 것은 곧 기업들의 이윤율이 낮아 제품의 가격 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 상태에서 전쟁 ‘부작용’으로 유가상승이 일어난다면, 이는 인플레이션과 곧 투자감소를 야기, 현재 불황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현재 미국 연방준비은행 (federal Reserve Banks) 정책 사용 폭이 크지 않다는데 있다. 즉 경기 부양을 위해선 이자율을 낮추어야 되는데, 현재 1.25% 수준인 이자율을 더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운신의 폭이 좁은 것이다. 셋째로, 이른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90년대 이른바 거품경제의 문제점을 거두어내지 못하고 있다. 큰 가계부채, 낮은 저축률, 그리고 매년 갱신하는 경상수지 적자폭은 미국 경제가 급변하는 해외 정세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전후 발생할 수 있는 테러,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은 북핵 문제와 같은 정치경제적 문제가 남아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난 1,2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약 100p가량 주가가 하락한 사실은, 이라크 전쟁이 곧 경기회복과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명분도 없는데 실리마저 없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월 22일 “이라크의 석유는 이라크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쓰여질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11월부터 활동한 UN사찰단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명시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세계 여러 국가들은 전쟁 발발 전까지 미국의 개전 명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미국은 UN안보리의 표결을 거치지 않고, 영국과 몇몇 국가와 함께 거의 ‘단독적’으로 전쟁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만약 위와 같은, 여러 경제 분석이 맞아 들어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전후 경기 침체가 야기된다면, 부시대통령의 재선 및 정치적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발언과 달리, 미국이 석유를 위해 무리한 전쟁을 감행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가뜩이나 극심한 재정적자를 겪고 있는 미국에 부메랑으로 작용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