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clear Deceit’ 위의 어구는 미 워싱턴포스트지(WP) Jim Hoagland 칼럼의 11월 14일자 제목이다. Nuclear은 핵무기, Deceit는 사기, 기만, 책략을 뜻하니 곧 칼럼의 제목은 ‘핵무기를 이용한 사기’가 된다. 일간지나 방송매체에서 각종 게이트, 불법금융대출, 주가조작 등 각종 사기를 보도하고 있지만, ‘핵무기 사기’는 처음으로 들어본, 전대미문의 사건인 듯 싶다. 사건 자체를 넘어, 더욱 놀라운 것은 ‘사기꾼’으로 북한이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WP는 10월 켈리의 방북 이후 터져 나온 일련의 핵 문제를 북한의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채찍이 먼저 10월부터 두 달에 걸쳐 WP 상에서는 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국 전문가들의 논박이 오고 갔다. 그 중 북핵 문제를 비롯하여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의견차이를 잘 드러낸 것이 James A. Baker III와 Robert Gallucci 사이의 논쟁이다. Baker는 1989년과 1992년 사이 정부에서 secretary로 근무한 공화당 계의 인물이다. Baker는 10월 23일 ‘OP-ED’을 통해 1994년 제네바 합의와 이를 체결한 클린턴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은 신뢰할 수 없는 정부라 말한다. 1985년 NPT협약에 참여했으나, 핵 시설 전반에 대한 대규모 사찰을 받아야한다는 규정을 묵살했고, 또한 18개월 내에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 안전 협정(safeguard agreement)에 서명해야 했으나 이 역시도 거부해왔다는 것이다. 결국 제네바 합의도 1994년 당시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위협에 클린턴 정부가 굴복한 결과라 평가절하하고 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은 위험 핵시설을 동결 ▲향후 이를 해체 ▲NPT에 잔류 ▲핵사찰을 수용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경수로 2기 북한에 제공 ▲미국 측의 중유 50만톤 북에 공급 ▲향후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해소 등 관계 정상화 힘쓴다는 내용으로 1994년 8월 발표되었다. 즉 북한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고 있다는 흑연감속원자로는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발전용 경수로로 대체하며,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 북한에는 각종 지원책을 통해 보상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94년 이후, 미국은 북한에 당근만 제공하였다고 말한다. 즉 중유 공급과 두 개의 원자로 건설은 파산 직전의 북한 경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북한의 의무인 핵사찰은 원래 NPT 규정에 1985년부터 시행되었어야 했다. 결국 믿을 수 없는 북한 정부에 적절한 ‘채찍’을 가하지 못하고 핵 동결이라는 유예시간만 주는 등 제네바 합의라는 ‘말잔치’가 현재의 비밀 핵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핵 개발은 파키스탄과 여타 위험 국가에 살상무기 확산을 가져올 수 있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때때로 범죄가 힘을 발휘한다(sometimes crime pays)’는 식으로 이들 위협 국가가 외교적 게임을 벌이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유엔을 통해 북한에 각 종 제재 조치를 취하거나, 군사 행동도 전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등의 강경책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근과 채찍은 함께 제시되어야 Baker의 칼럼에 대한 반박문 형태로 Robert Gallucci는 ‘Negotiating With Nuclear North Korea’제목의 칼럼을 WP에 게재했다(11월 6일자). Gallucci는 현재 조지타운 대학교의 외교 대학 학장을 지내고 있으며, 북한의 핵 의혹과 관련, 전쟁 직전까지 갔던 1994년 위기 당시, 북미 제네바 협정을 이끌어 낸 미국 측 협상 총책임자이다. 갈루치는 제네바 합의에 대해 미국 내에는 공화당 계의 ‘신화’가 조성되어 있다고 포문을 연다. 합의는 북한에 위협에 때문에 클린턴 행정부가 어쩔 수 없이 맺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그는 ‘서울 불바다’ 사건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 말한다. 한국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고, 국방성에서는 핵사용을 포함한 북한에 대단위 전쟁 계획을 발표하는 등 압력이 강화되는 국면에서 발언이 붉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갈루치는 제네바 합의는 당근만 제공한 것이 아닌, 핵 문제에 대한 성과를 거두어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1994년 당시 북한이 저장하고 있던 핵무기 5개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폐기했고, 1998년 ‘금창리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94년 이후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북미간 협의의 기준으로 작용해왔다는 것이다. 금창리 사건은 1998년 8월 평안북도 대관군 금창리 일대에서 북한이 대규모 지하 핵시설을 건설중이라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보도함으로서 시작되었다. 결국 북미회담을 통해 제네바 합의와 같은 형태인, 미국의 핵의혹 시설 현장 접근 허용과 대북 식량 지원을 교환하는 선에서 사건은 종결되었다. 물론 갈루치 역시도 현재 제네바 합의가 현재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도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구속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대화를 중지하면 한, 중, 일 등 우방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 또한 이라크와 같이 북한에 무력 사용을 할 경우, 한국은 진짜 ‘불바다’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갈루치는 북한과 협상에 미국이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협상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북한이 좀 더 적극적으로 미국에 응하게 하기 위해서 제재 조치를 비롯한 제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미국은 주변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 종 지원과 투자 중지를 부탁하며, 또 제네바 합의의 미국 측 이행사항인 중유 공급과 경수로 건설 등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stop’이 아닌 ‘suspend’라는 점이다. 즉 각 종 조치는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과의 협력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데서 그쳐야하며, 만약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성실한 자세를 보일 경우, 풀어져야 하는 ‘중단’의 의미를 띠어야 한다는 갈루치는 말한다. 북한과 한국,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나 ‘두개의 한국’ 저자인 Oberdofer가 방북 중 쓴 My Private Seat At Pyongyang’s Table'(WP 11월)는 현재의 북한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는 많은 북한관료들은 우라늄 농축을 시인했으며 이는 체제전복(regime change) 기도와 같은 미국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전한다. 한편으로는 북한은 현재의 갈등을 끝내고 싶어하며,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다면 모든 핵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인상을 풍겼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11월 16일 대북 성명에서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평화적 사태해결의 기본방침아래 한편으로 북한이 먼저 핵 개발을 포기해야만 대화나 보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표명했다. 성명의 내용을 미루어볼 때, 미국은 아직 ‘Baker와 Gallucci 사이’에 있는 듯 하다. 이런 모호함 속에서 윤영관(서울대 외교학과)교수는 동아일보 칼럼에서 한국 정부에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간의 대화단절로 생긴 외교적 공백을 우리 정부가 메워 나가면서 시간을 벌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주도해야만 한다.’ 과연 미국은 어떤 압박 수단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지에 따라 94년 한반도 전쟁위기가 재현되느냐 아니냐가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