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 특별인터뷰, 2. Leon V. Sigal “미국과 한반도”

10월 12일 아침 버클리 ‘듀란트’호텔 에서 이번 심포지엄의 미국측 스피커인 리온 시갈을 만나 한반도 정세 전반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시갈 과의 인터뷰 통역은 버클리대 2학년에 재학중인 오진호 군이 맡아주었다.

10월 12일 아침 버클리 ‘듀란트’호텔 에서 이번 심포지엄의 미국측 스피커인 리온 시갈을 만나 한반도 정세 전반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 시갈 과의 인터뷰 통역은 버클리대 2학년에 재학중인 오진호 군이 맡아주었다. 리온 시갈 프로필 뉴욕 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director 뉴욕타임즈 사설의원(1989-1995) Brookings 연구소 초빙교수(1981-1984) 콜럼비아대 국제정치학 교수 저서 Disarming strangers : Nuclear Diplomacy with North Korea(Princeton Univ. Press) 신동민, 이유나 기자(이하 기) : 현재 계신 Social Science Research에서 하시는 일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Leon Sigal(이하 리) : 남한과 북한 일본 등 동북아시아 정세 전반에 대해 연구하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희 기관은 재정적으로 독립된 비정부기관입니다. 기 : 선생님께서 종종 ‘tit-for-tat’이라고 표현하신 북한 대미외교 정책의 성격을 간단히 말씀해주십시오. 리 : ‘tit-for-tat’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적대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한 쪽이 화해 정책을 피면 다른 쪽도 이를 따르고, 강경책을 쓴다면 반대쪽도 이에 상응하는 대응책을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북한의 대남, 대미정책은 여실히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예를 들어봅시다. 부정적 tit-for-tat의 경우, 지난 1993년 이스라엘에 북한이 미사일을 판매하려는 것을 남한과 미국이 막자, 북한은 지체없이 남한과의 대화를 끊었죠. 또 미사일 실험도 재개했구요. 긍정적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이 90년대 초 한국에서 모든 핵무기를 철수시키자, 북한은 곧 영변 핵시설 가동을 정지하고, 미국과 핵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렇듯 북한은 미국과 남한이 무엇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대응을 달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 : 최근 북한은 많은 개혁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신의주 특구 설정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텐데요. 이에 발맞추어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후 미국은 켈리 특사를 북한에 보냈습니다.이는 부시행정부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대북 강경노선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리 : 우선 ‘신의주 특구’와 ‘켈리 특사 파견’은 전혀 관련이 없는(no relation)사항입니다. 신의주는 19세기 후반 강대국 들의 중국 분할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중국 본토 일부인 홍콩을 영국의 취하고, 본토 일부지역을 몇몇 강대국이 실질적으로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킨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이러한 북한의 개혁조치는 사실 10여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나진 선봉지역이나, 휴전선 부근의 지역은 북한이 한국을 위해 경제적으로 내어준 곳이지요. 미국을 위한 지역은 KEDO가 활동하고 있는 곳이죠. 결국 이번 신의주 특구(special economic zone)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에게 기회 를 주기 위해 설정한 곳입니다. 기 : 그렇다면 켈리 특사의 파견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리 :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미국, 일본 3개국 대북정책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해야합니다. 90년대 초 북한이 확실하게 보여준 태도는, 미국이 관여되어 있지 않으면 한국, 일본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00년 남북 정상회담도 사전에 북한과 미국의 조율이 있었던 것이죠. 기 : 그러면 남북정상회담은 남북한이 상하이 등에서 비밀회동을 가지면서 자주적으로 결정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말씀인가요? 리 : 증거가 있습니다. 2000년 3월 클린턴 행정부의 페리 조정관에 의해 개최된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이미 양국이 적대관계를 종식하려는 코뮤니퀘를 만들자는 협의를 했었습니다. 미국의 보조 하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이죠.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후 미국을 설득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기 : 그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리 : 김대중은 통일이 아닌 화해(not reunification but reconciliation)을 주장했습니다. 통일은 결국 북한정권 붕괴에 의한 남한의 흡수 통일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화해는 상호체제의 인정을 기반으로 하죠.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대북관을 바탕으로 미국 정부를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1999년 5월 페리가 북한에 가고, 이후 2000년 울브라이트가 방북, 미사일 협정을 이끌어 내게 된 것이죠. 기 : 다시 돌아가서, 켈리는 왜 북한에 간 것입니까? 리 : 부시행정부는 2년동안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게도, 9. 11이전에 북한은 이미 부시가 자신들과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1년 9월 북한은 남한과 장관급 회담을 서울에서 가졌습니다. 또한 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2001년 9월 북한은 이미 일본과도 비밀리에 북경에서 회담을 갖고 있었죠. 이는 무슨 이유 때문일 까요? 미국과는 달리 남한과 일본은 북한과의 유화 국면을 원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악의 축’을 지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 3일전에 미국에 “북한과 정상화를 하겠다.”라고 선포하듯이 말해버린 것은 여기서 나온 것이죠. 기 : 결국 미국은 이른바 ‘왕따’가 된 것이군요. 리 : 그렇죠. 동북아의 우방들과 다른 정책을 펴게 된 것도 문제고, 공화당 내부에도 ‘Axis of Evil’의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게 되었구요. 켈리가 북에 간 것은 결국 대화 맥락의 시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합니다. 기 :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은 무엇입니까? 일부에서는 주한, 주일미군의 주둔은 ‘잠재적 적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있는데요. 리 : 전략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북한의 남침을 막자. 둘째는 역설적이게도 남한의 북침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1980년대 이후, 남한이 북한보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서게됨으로써, 이런 가능성이 생겼죠. 세 번째는 일본 자위대의 강화를 막는 것이죠. 넷째는 중국의 견제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이 이러한 중국과 미국과의 힘의 균형 속에서, 자신의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 : 그것은 북한 역시도 미군 주둔을 원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리 :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지난 50년동안 미군 철수를 주장했죠.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이 우리의 동맹국이면 미군은 위험한 요소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남한의 일부사람들은 미군이 철수하면 남북이 금방이라도 화해될 것이라 말합니다만,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북한은 현 동북아 세력판 힘의 균형 속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적대과 되지 않는다면 미군의 주둔을 바라고 있는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미국은 남한, 일본에 군대가 주둔되어 있지 않아도 이라크처럼 북한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습니다. 미군은 오히려 남북의 중재자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서 화홰와 평화를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기 : F-15 구매등, 한국은 미국 군산복합체의 좋은 무기판매처입니다. 게다가 많은 미국 행정부 인사는 군산복합체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반도의 냉전상태를 유지하려한다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리 : Bullshit!(상당히 격양된 어조로 화를 냈다.)미국에게 한국은 작은 무기 판매처에 불과합니다. 미국 경제의 규모를 생각해보세요. 한국과 같은 작은 시장을 위해 미국이 더 큰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예를 들어주겠습니다. 독일 분단당시, 서독에는 주한미군 7배 규모의 미군이 배치되어있었습니다. 또한 훨씬 더 큰 무기 시장이었구요. 89년 부시1세는 만약 미국이 독일 통일을 방해한다면, 미국은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영향력도 떨어지게 되구요. 결국 독일 통일 후, NATO를 통해 독일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독일 통일을 반대한 것은 영국과 프랑스는 점이죠. 이는 자국의 군사방어 문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부시2세가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죠. 동북아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남북한의 통일을 반대해서는 안됩니다. 주둔의 정당화는 곧 지역 영향력 유지 문제와 관련되거든요. 독일에서처럼 말이죠. 기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오후 심포지엄에서 좋은 발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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