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약 30쪽에 불과한 작은 책 하나가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 저자 스테판 에셀은 청년시절 나치에 대항하던 레지스탕스 당원의 경험을 가진 사회운동가로, “분노는 고귀하며 젊은이들의 냉정한 무관심은 가장 나쁜 태도”라고 말합니다. 어지러운 정치현실, 높은 청년실업률과 혼란스러운 사회에 지쳐있던 프랑스 사람들은 가슴 속의 울분을 고귀한 분노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현실은 비단 프랑스의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방구석에 있던 신문을 펼쳐보니 홍익대에서 정리 해고된 노동자들의 농성 이야기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피자배달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청년의 이야기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한숨만 늘었습니다. 신문을 집어던지고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법인화 반대 시위 농성중인 천막을 찾아갔습니다. 너무나도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두꺼운 코트에 목도리까지 둘러맸지만 천막 입구의 작은 틈에서 들어오는 바람은 살을 에는 듯 했습니다. 천막 안에 구비돼있던 전기장판과 난로에 의지하여 천막강연회에 집중했습니다. 강의실과는 또 다른 아늑한 분위기에 젖어있을 때쯤, 천막 밖으로부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천막의 얇은 비닐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여과 없이 전달해주었고, 그때마다 천막 안에는 겨울바람보다 차가운 기운이 흘렀습니다. 서울대 법인화 반대 문화제가 있던 날, 아크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교수들과 공무원 노조, 동문 선배들까지. 하지만 총학생회와 몇몇 관계자를 제외하고는 학생들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교수, 직원, 학생들이 힘을 합쳐 천막 농성을 벌인 것은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법인화 반대 농성의 선두에 있는 공무원 노조위원장은 “외부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법인화 날치기 통과에 분노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데 반해 실질적인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은 침묵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스테판 에셀은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법인화의 당위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의 일이 남들에 의해, 그것도 정당한 방법도 아닌 날치기로 처리된 일은 분명 가슴 속에 커다란 울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를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주인 의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인만큼 이제는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고귀한 분노’를 드러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