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농성이 시작한지 49일이 지나서야 끝났다. 농성 40여 일째, 기자가 찾은 홍익대 캠퍼스 안에는 수많은 플래카드와 자보가 게시돼 있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공공노조)는 물론 대학생과 정치인, 그리고 온라인상의 연대가 이어졌다. 농성 초기 홍익대 총학생회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단체들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했다. 총학생회는 자보를 통해 “청소, 경비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다. 그러나 외부세력의 점거농성이나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부사람들이 주도한 집회로 인해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등 많은 학생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홍익대 총학생회장 김용하 씨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집회 도중 이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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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 총학생회(위)와 노동자들(아래)의 플래카드. 소통을 원한다는 양측의 플래카드는 소통의 부재를 반증한다. |
비운동권 홍대 총학, “외부세력 아닌 학생과 함께 하자”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따라서 저희 선본은 정치적인 색을 띄지 않겠습니다.” 현 45대 홍익대 총학생회는 후보시절부터 ‘비운동권’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후보시절 공약을 통해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차이는 학교 외부 정치세력과 결탁 여부라고 생각한다”며 외부 정치집단과 연대시 총학생회가 자주성을 잃게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와의 인터뷰에서 총학생회장 김용하 씨는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이전의 총학생회가 외부 운동권 사람들과 교내에서 집회 같은걸 하다 보니 그런 모습에 학생들이 이골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은 “비운동권 타이틀을 달고 나와 당선됐고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외부 사람들이 아닌 총학생회를 비롯한 홍익대 학생들이 구심점이 되어 사안을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홍익대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들이 존재하고, 농성에 반대하는 총학생회의 입장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인 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농성중인 홍익대 노동자들은 총학생회의 대응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공노조 홍익대학교 부분회장 서복덕 씨는 “총학생회가 중립적 입장을 취하겠다는 미명 아래 학교 편을 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 씨는 “농성이 지속된 40여 일 동안 교직원, 총장 어느 누구도 학교 측에서 사태에 대한 설명을 해준 적이 없다”며 소통의지의 부재를 지적했다. 학교 측은 공공노조 차원에서 보낸 공문에 대해서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무시한 채 학교와 노동자간의 대화를 통한 해결만을 주장하는 총학생회가 실질적 중재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농성자들의 입장이다.홍대 청소, 경비 노동자 농성은 ‘학내’ 사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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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 문헌관 1층의 농성자들. 공공노조 권태훈 조직부장은 “노조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은 법적으로 정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
홍익대 총학생회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총학생회는 현재의 농성을 외부세력이 개입된 “소모적이며 감정적 싸움인 투쟁의 방법”이라 평가하고 “생산적 대화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학생들이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외부인들이 주도한 집회가 위화감을 조성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에 따르면 홍익대 농성을 돕고 있는 탤런트 김여진 씨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고성방가로 고발을 하겠다는 격이다. 조용히 살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존권이 먼저 아니냐”며 이를 비판했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사태발생 초기에 이를 학내 사안으로 국한했다. 이러한 까닭에 총학생회는 그들이 ‘외부세력’으로 규정하는 이들의 개입 없이 학생들만의 노력으로 사안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학생회 차원의 서명운동, 물품지원 등이 이뤄졌다. 총학생회는 온라인에서도 서명운동을 펼쳤고 이를 학교, 용역업체, 노동자들에게 전달했다. 이를 통해 학교 측에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포함한 요구안의 실행을 건의하고 노동자들에게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바람을 전달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또한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의 농성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공노조 서경지부 조직부장 권태훈 씨는 “홍익대 총학생회가 법적으로 노동자들이 합법적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잘못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질적 근무시간을 고려하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하루 식비로는 300원을 지급받았다. 총학생회의 ‘외부세력’ 개입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홍익대 구내는 공공노조 산하에 있는 사업장이고 따라서 노조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은 법적으로 정당한 것이다”라고 반론했다. 또한 권 씨는 “사회적으로 취업난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현 상황에서 홍익대 농성은 단순히 홍익대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총학생회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익대 재학생 박성현 씨 역시 홍익대 농성에 대해 “학내에서 사회로 연결선 상에 있는 것이다”라며 사안을 홍익대에 국한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민주노총과의 연대에 반대, 총학생회는 서명운동 추진 홍익대 총학생회는 자보를 통해 노동자들의 시위 방식에 대해 “단지 가입된 민주노총의 지도부에서 내려온 시위 방식과 투쟁 방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는 해석을 보여줬다. 총학생회는 홍익대 노동자들이 민주노총과 분리된 형태로 자발적인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홍익대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총학생회는 민주노총이 홍익대 사건을 이슈화해 사회 전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근거는 사안의 해결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외부 정치 세력과 결탁하거나 언론을 선동하는 것은 학교 이미지를 실추 시킬 수 있으며,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근식 교수(사회학과)는 “민주노총이 개입하면 홍익대 사안을 넘어서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 환경과 노동자들의 요구사항들은 외부 개인, 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공론화됐다. 온라인상의 개인들이 연대해 조선일보에 홍익대 본부 측의 소통을 요구하는 신문광고를 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실제 홍익대 측과 노동자 측이 극적인 타결에 성공하자, 많은 이들은 그 동력을 외부의 적극적 관심과 연대에서 찾기도 했다. 이는 사안의 해결을 위해 외부세력의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총학생회의 입장과 상반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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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은 외부 연대의 힘에서 홍익대 사안 해결의 원동력을 찾았다. ⓒ쿠키뉴스 |
서복덕 공공노조 홍익대학교 부분회장은 “해고된 것을 처음 알게 된 1월 3일에 청소, 경비 노동자들이 홍익대 총장과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학교 측이 대화를 거부했다”며 “민주노총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 미화원들과 경비원들만 대화를 요구하며 기다리는 것인데, 이는 예전의 열악한 상황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권태훈 조직부장도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을 스스로 선택하여 민주노총에 가입한 것”이라며 홍익대 노동자들의 자발성을 강조했다. 한편 서울대 총학생회 역시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홍익대 총학생회의 주장을 비판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홍익대학교에 묻습니다’는 제목의 자보를 통해 “홍익대 미화노동자분들이 곧 민주노총이며 민주노총이 곧 홍익대 미화노동자들이다”라고 표현했다. 미화노동자들은 ‘꼭두각시’가 아니며 이들의 투쟁은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주체적 의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외부세력’과의 연대가 아닌 학생들의 서명운동을 벌였다. 온라인에서 이뤄진 서명운동에 800여명의 재학생들과 120여명의 외부인들이 참여했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이를 통해 “노동자분들과 학생여러분의 요구안이 반영될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서명을 노동자들에게 전달해 홍익대생들의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홍익대 재학생 황재연 씨는 “농성이라는 방식 자체가 80년대 운동과 같은 구시대적 방식이다”며 일부 학생들이 갖는 거부감에 대해 설명했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표현방법이 위화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홍익대 총학생회와 그 궤를 같이한다. 반면 노동자들의 농성을 지지하는 학생들은 조형물, 그림 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다. 황 씨도 총학생회의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학생회가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고, 학내 노동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길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홍익대 사태 타결, 이제 와서 “서로 시각 차이 존중하자”는 홍익대 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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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세력 배제를 주장하는 자보와 이를 비판하는 자보. 그 사이에 “같은 시대, 하지만 서로 다른 학생들의 모습. 누구의 생각이 더 올바른 걸까요?”라는 질문이 적혀있다. |
공공노조 홍익대 분회장 이숙희 씨는 과의 인터뷰에서 “학교와 싸우는 건지, 학생회와 싸우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외부 연대를 배제하고 총학생회가 협상테이블을 꾸리겠다는 주장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총학생회는 자신이 비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에 당선됐기 때문에 뽑아준 학생들의 의사를 반영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농성의 방법을 택하지 않는 것과 다른 단체의 농성에 반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홍익대 재학생 박성현 씨는 “총학생회가 ‘어머님’, ‘아버님’들을 지지한다며 먹을 것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이 농성이나 집회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학교 측에 명확히 내세우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 씨는 “홍익대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홍익인’에는 총학생회의 대응에 관한 다양한 평가가 있다”며 홍익대 총학생회의 대응을 미온적이라 평가하는 학생들도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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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 미대 재학생들은 미술 조형물을 통해 농성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
홍익대 농성은 해고된 노동자들이 복귀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서복덕 공공노조 홍익대 부분회장은 “노조의 도움이 컸다”며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트위터 등에서도 많은 후원을 받았다.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냈다”라고 말했다. 사안이 타결된 후 홍익대 총학생회 측의 입장 역시 달라졌다.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을 위해 있는 곳이긴 하지만, 학생들 또한 이런 전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인식을 밝혔다. 외부세력 개입에 반대하고 사회적 사안으로 이슈화하는 것을 비판한 이전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홍익대 노동자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임을 인정함으로써 학내와 학외를 배타적으로 구분지으려 했던 과거 입장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총학생회는 대학생들이 학업에 정진하고 소신을 쌓아, 이를 통해 사회에 나아갔을 때 불합리한 세상을 바꿔보라고 말하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운동권 학생들에 대해서 “학내 커뮤니티에 사회적 운동을 하는 학생들에 대한 비난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들에 대해서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 평가했다. 서로간의 시각 차이로 인한 내분을 지양하고 서로의 다른 생각들을 존중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농성기간 중 ‘외부세력 배제’의 입장을 고수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제 해고된 노동자들은 49일 간의 점거농성 끝에 일터로 복귀한다. 많은 이들은 외부 연대가 큰 힘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모든 홍익대 재학생들이 전통적 농성, 시위 방법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홍익대 총학생회가 보인 모습은 학생들이 노동자들의 농성, 연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반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홍익대 학생들은 미술 조형물 전시 등 나름대로의 방법을 통해 지지를 표명했다. 트위터를 통해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공감한 이들이 연대하기도 했다. “도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비권/운동권의 구분과 관계없이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공공노조 홍익대 부분회장이자 홍익대 청소 노동자인 서복덕 씨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