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오랜 숙원’을 돌아보다

2010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법인화법)이 통과됐다.이날 법인화법은 ‘주연’이 아니었다.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은 41개.본회의는 오후 4시 44분에 열려 6시 3분에 산회됐다.총 41개 법안이 79분 동안 각각 평균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통과된 셈이다.

2010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법인화법)이 통과됐다. 이날 법인화법은 ‘주연’이 아니었다.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은 41개. 본회의는 오후 4시 44분에 열려 6시 3분에 산회됐다. 총 41개 법안이 79분 동안 각각 평균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통과된 셈이다. 법인화법이 투표에 부쳐져 통과되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정부가 법인화법을 18대 국회에 제출한 것은 2009년 12월이었다. 법안은 공청회 한 번 없이 교과위에 1년 동안 계류된 채 상정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8일, 박희태 국회의장은 법인화법의 법률심사기일을 같은 날 오전 11시까지로 둔다고 기습 통보하고 법안을 직권상정했다. 하지만 여야는 예산안 통과를 둘러싸고 대치 중이었다. 심의위원회 자체가 열릴 수 없었다. 앞선 7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역시 교섭단체 원내대표와 교과위원장에게만 법안 상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야당 의원들이 법안 상정을 알았을 때 국회 내에는 이미 집기류로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권영길 의원(민주노동당)은 “국회 중앙 로비에서 보좌진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혼란 속에서 보고를 받았다. 대부분의 여당 의원들도 법인화법 상정을 날치기 통과되던 날 오전에 알았다고 한다”면서 “여당 핵심과 청와대가 의원들을 무시하고 밀실에서 합의해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이런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출입이 가로막히거나 국회 경위에게 끌려나와야만 했다. 야당의 반대 발언이나 투표가 봉쇄된 채,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제안 설명을 생략하고 법인화법을 다른 법안들과 일괄 상정해 투표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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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8일, 국회에서는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서울대 법인화법을 통과시켰다. ⓒ한겨레

법인화법 강행 처리… 내용은 여당도 모른다?한나라당의 단독 처리로 진행된 투표였지만 법인화법의 찬성률은 다른 법안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법인화법은 재석의원 170명 중 찬성 145, 반대 4, 기권 21로 가결됐다. 85%를 웃도는 찬성률이다. 이날 대부분의 법안은 재석의원 95%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통과됐다. 그런 가운데 여당 내에서도 논란이 있는 법안은 반대표와 기권표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재석의원 166명 중 26명이,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재석의원 168명 중 32명이 ‘이탈표’를 던졌다.이처럼 낮은 찬성률은 여당 내에서도 법인화법에 대한 입장이 일치될 정도의 충분한 논의가 없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권영길 의원은 “중요한 법안이 내용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기계적인 투표로 통과됐다”면서 “여당 의원 중에 법인화법의 1장 1절이라도 읽어본 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라고 비판했다.법안이 날치기 통과된 직후인 다음날 9일, 서울대법인화반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민주당 등 야3당과 함께 국회 본청 앞에서 ‘서울대 법인화법 직권상정 및 날치기 규탄대회’를 열어 여당의 강행 처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공대위에서는 이달 13일, 총장과의 면담에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법인화법 폐기 및 재논의를 요구하는 건의서 작성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총장이 법인화법 통과에 반대하는 방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본부에서는 “논의를 해 봐야 한다”는 답변으로 에둘러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 달 27일 법인화법을 공포했다.60년 전부터 논의된 ‘법인 국립대’서울대 법인화는 해방 직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처음 제기됐다. 미군정은 1946년 서울대 설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법인 형태의 대학을 구상했다. 미군정이 발표한 ‘국립서울대학교안’(국대안)은 경성대학과 여러 전문학교를 통합하되 이를 이사회가 통괄하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문교부에서는 이를 반영해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을 공표했다. 이 법령에는 이사회가 서울대 방침을 전반적으로 결정하고 총장을 추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구상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우려를 불러왔다. 결국 ‘국대안 파동’으로 알려진 강한 반발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법인화 문제가 다시 제기된 건 1980년대였다. 1987년 전두환 정부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였던 교육개혁심의위원회는 ‘교육개혁종합구상’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장기적으로 모든 국립대를 법인화할 것을 제안했다. 국립대의 국제적 경쟁력을 제고하고 재정지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법인화가 필수적이라는 논리였다.문민정부의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기구였던 교육개혁위원회에서 1995년 제시한 ‘5·31 교육개혁방안’에서는 희망하는 국립대에 한해 법인화를 추진하는 방안이 소개됐다. 공무원 조직인 국립대에 자율성을 부여해 세계적인 대학을 육성하자는 목표에서였다. 교육부는 이를 바탕으로 1997년 ‘국립대학 특별회계법’을 입법 예고했으나 등록금 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로 실현되지 못했다.법인화… 참여정부의 유산국립대 법인화는 참여정부에서도 계속 추진됐다. 민주당은 현재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인화법에 반대하고 있지만, 법인화법의 골격은 대체로 참여정부에서 갖춰졌다. 참여정부는 2003년 출범하며 제시한 ‘교육개혁 5개 년 로드맵’에서 국립대 특별회계제도와 대학이사회 설립을 언급하는 등 국립대 법인화 구상을 제시했다. 2004년에는 교육부에서 국립대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골자로 하는 ‘국립대 구조개혁안’을 발표했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국립대 운영을 자율화하고 회계재도를 개편해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도였지만, 일각에서는 ‘국가 책임인 재정구조를 민영화하려는 속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이어서 일본에서 국립대 법인화가 추진되자 참여정부의 법인화 안은 급물살을 탔다. 일본은 공무원 수 감축을 통한 국가 재정 위기 극복과 기업의 대학 투자를 장려한다는 이유로 ‘국립대학법인법’을 제정해 2004년 89개의 국립대를 일괄적으로 법인화했다. 참여정부는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 모든 국립대를 동시에 법인화하는 구상을 검토했으나, 반발을 의식해 선택적 법인화를 추진하게 됐다. 야당의 이주호 의원(한나라당)도 2005년부터 법인화 추진을 주장해 왔다.학내에서도 법인화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정운찬 총장은 2004년 법인화 TF팀을 발족해서 법인화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2006년에는 주요 공약의 하나로 서울대 법인화를 내건 이장무 후보가 총장으로 당선됐다. 이장무 총장은 취임 이후 장기발전계획위원회에 법인화 분과위원회를 둬 법인화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2007년에는 법인화위원회, 2008년에는 자율화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법인화 준비를 이어갔다.하지만 참여정부에서는 법인화의 기본 골격이 만들어졌을 뿐 법인화가 실현되지 못했다. 교육부는 2007년 ‘국립대법인화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통과되지 못한 채, 2008년 17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이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결국 국립대 법인화 계획은 참여정부의 ‘미결 과제’로 남아 고스란히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2009년이 되자 법인화위원회에서는 ‘서울대법인화방안 연구보고서’를 펴내 ▲국가의 서울대 지원을 두 배로 늘리고 ▲총장이 이사장을 겸직하며 ▲총장이 재경위원회와 학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법인화 방안을 정부에 요구했다. 교과부는 같은 해 법인화법을 입법 예고했다. 국무회의에서는 법인화법을 석 달만에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다음달인 2010년 1월에는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서울대 공무원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로 구성된 공대위가 출범했다. 공대위는 그 해 2월 성명서를 발표해 “대학 공교육체제에 최후의 타격을 가할 서울대 법인화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면서 “균형 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고등교육 정책을 입법할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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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단은 지난해 11월 15일 국회를 방문해 법인화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학장단과 언론의 법인화 ‘조급증’법인화법이 정부에서 국회로 제출돼 계류되던 1년 동안 법인화 찬성론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조급증’에 가까웠다. 이러한 ‘조급증’이 유례 없이 새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이장무 총장은 2009년 10월, 개교 63주년 축사에서 “법인화는 서울대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라면서 “서울대는 대학 발전의 새로운 틀을 구축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법인화의 빠른 추진에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2010년 9월에는 청와대와 여당이 ‘법인화법을 최우선 처리하자’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해 11월에는 전문대학원 원장과 단대 학장 등 서울대 학장단이 국회를 직접 방문해 법인화법 조속 통과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학장단의 방문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학장단 방문이 국회 날치기 통과에 빌미를 준 것 아니냐”며 학장단의 방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학장단의 국회 방문 직후 보수 언론에서는 일제히 서울대 법인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법안의 조속한 가결을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1월 17일 ‘서울대에 법인화의 날개를 달아주자’라는 사설에서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유수 대학들의 교육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서울대는 다급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다음날 〈문화일보〉에서도 ‘서울대 법인화, 더 이상 미룰 일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법인화법은 더 이상 여야간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며,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며 조속한 법안 처리를 강조했다. 같은 시기 〈한국경제신문〉은 ‘서울대 법인화 늦출 수 없다’라는 제하의 시론을 내보내 “국회에서 법인화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당은 청와대와 보수 언론의 지원에 힘입어 12월 법인화법을 강행 통과시켰다. 법안 처리 직후 교과부에서는 “숙원을 풀었다”는 논평을 내놨다. 오랜 숙원을 푸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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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간의 임시국회… 법인화 공방 재개되나법안 통과 직후에도 국회와 학내에서는 진통이 계속됐다. 민주당은 날치기 통과된 법안의 무효를 주장하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학내에서도 공대위는 본부 앞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한편 여야 간의 신경전 끝에 지난 2월 18일 열린 임시국회는 3월 11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야당 의원들 전원 공동으로 ‘서울대법인화법 폐지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권영길 국회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은 “야당, 시민단체, 진보적 교수모임이 서울대 구성원들과 함께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면서 “법이 시행되는 올해 12월 이전에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하지만 ‘서울대법인화법 폐지 법안’이 흘러갈 방향은 불투명하다. 아랍에미리트 파병동의안 등, 법인화법 외에도 지난 12월 한나라당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한 법안은 10개나 된다. 그 가운데 민주당 등 야당이 제출한 수정·폐기 법안만 해도 2월 20일 현재 6개나 된다. 이밖에도 여야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계류중이던 38개 민생법안을 다루기로 합의하는 등, 처리해야 할 법안이 적지 않다. 여당에서 법인화법 폐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권 의원은 “여당은 지나간 법안 처리의 폭력성에 대한 반성이 없다. 항상 자신만의 새 이슈를 제기한다”면서 “여당에게 법인화법은 이미 통과된 법일 뿐”이라며 앞으로 법인화법을 폐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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