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기자로 살아간다는 것

지난호를 내기 무섭게 또 한번의 마감이 왔습니다.과제제출일보다 기말시험보다 더 무섭다는 마감이 오면 기자들은 노트북 하나씩을 어깨에 메고 6층 편집실에 모입니다.하루이틀 겪은 것이 아니건만, 마감이란 것은 참으로 익숙해지지 않습니다.노트북을 켜고 하얀 한글 바탕을 띄워놓으면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지난호를 내기 무섭게 또 한번의 마감이 왔습니다. 과제제출일보다 기말시험보다 더 무섭다는 마감이 오면 기자들은 노트북 하나씩을 어깨에 메고 6층 편집실에 모입니다. 하루이틀 겪은 것이 아니건만, 마감이란 것은 참으로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하얀 한글 바탕을 띄워놓으면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왜 이 기사를 쓴다고 했을까’하는 무책임한 투정에서부터 ‘나는 기사를 쓸 능력이 처음부터 부족한 것은 아닐까’하는 근본적인 회의까지, 기사로 썼다면 이미 책 한권은 나왔을 지도 모릅니다. 편집실의 시간은 바깥 세상보다 두배는 더 빨리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 쓴 것은 없는데 시간은 야속하게도 훌쩍 가버려 어느새 첫차를 기다리는 새벽이 옵니다. 주말은 이렇게 지나갔고 내일, 아니 오늘은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 평일입니다.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우리는 ~서울대저널~의 ‘기자’일 뿐만 아니라 ‘학생’이라는 사실을.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퇴근’하면서 수도 없이 나눴던 대화를 기억합니다. ‘이렇게 힘든데 우린 왜 저널을 하고 있을까?’ 항상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고 농담으로 끝났던 것 같지만 어느 누구도 중간에 ‘그만둔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널 4학기에 접어든 지금, 내가 왜 그만둘 수 없었고 아직까지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저널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있다보면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모두가 바쁜 이 세상에 기자를 만나주고, 독자들을 위한 의미있는 한마디씩을 건네는 취재원들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절박하게 알려지기를 원했던 그들의 한마디가 가진 무거움을 알기에 기사를 쉽게 접을 수 없습니다. 마감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퇴임기자들 또한 반갑습니다. 기사를 쓸 때 부딪히는 어려움에서부터 인생에 대한 고민까지, 항상 철없게 기대지만 당연한 듯 받아주는 그 따뜻함이 고맙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고마운 사람들은 지금 바로 옆에서 나와 함께 다음호를 준비하고 있는 기자들입니다. 기사만 생각하면 막막하다가도 기자들과 함께 웃고 떠들다보면 어느새 고민을 잊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가끔 피곤함에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대하는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던 그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와 ‘내가 저널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를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분명 노력은 했지만 아직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아 많은 빚을 진 느낌이 듭니다. 현재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기사를 쓰는 것이기에 새벽 3시를 넘긴 지금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독자’만을 위해서 기사를 쓰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널을 위해, 저널을 사랑하고 지켜나가려는 사람들을 위해 기사를 쓰는 저는 아직 한참 모자란 학생기자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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