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푼 남자, 이윤기를 만나다

서울대저널(이하 저널) / 요즘 어떤 작업 하고 있으신가요.이윤기(이하 이) / 요새는 셰익스피어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어요.photo1서울대저널(이하 저널) / 어떤 계기로 셰익스피어 연구를 하게 되셨나요.이 / 신화연구를 하면서 꼭 한 번 셰익스피어를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대저널(이하 저널) / 요즘 어떤 작업 하고 있으신가요.

이윤기(이하 이) / 요새는 셰익스피어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어요.photo1서울대저널(이하 저널) / 어떤 계기로 셰익스피어 연구를 하게 되셨나요? 이 / 신화연구를 하면서 꼭 한 번 셰익스피어를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문학의 전통은 호메로스부터 죽 내려왔는데 그 전통이 중세에 좀 끊겼다가 16세기에 셰익스피어가 탄생하고 나서부터 셰익스피어가 그리스와 로마의 원전을 엄청 뒤지고 다녔어요. ‘그 사람은 생가에서 안 나고 박물관에서 났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지요. 그래서 보면 「겨울이야기」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한 여름 밤의 꿈」이나 「비너스와 아도니스」전부 그리스 쪽이고 「클레오파트라&안토니우스」 이 쪽은 모두 로마 쪽이에요.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그리스로마 원전을 완전히 영문학에 흡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지요.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그는 번역에있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여 권의 역서 중 움베르트 에코의 열풍을 불고 온 「장미의이름」은 해방이후 최고의 번역서로 꼽히기도 했다. 또한 그는 신춘문예,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기도 하다저널 / 신화연구와 번역활동에 소설까지 쓰시는데 이 세 가지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나요?이 / 김포공항 가다 보면 양화대교 지나기 전에 인공폭포가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폭포가 아름다운 것은 폭포도 아름답지만 그 물의 수원(水源)인 산이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문학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학교에서 정식으로 문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학문으로 문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닌데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하면 그건 틀림없이 수원이 없는 인공폭포 같을 것 같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도대체 외국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썼는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는지 내가 그걸 연구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럼 가장 좋은 방법이 번역이죠. 거장들을 굉장히 많이 번역했어요. 것도 예사 거장들이 아니고 심지어는 순수영문학에서부터 융 프로이트까지 내려갔으니까. 그 번역하는 과정에서 눈에 띈 게 신화였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남의 신화만 하고 있을 건 아니잖아요. 우리도 우리 신화가 있고, 그게 뭐냐면 그건 바로 예술가로서의 소설쓰기. 예술가로서의 소설쓰기가 결국은 종착지점이에요. 말하자면, 지금 경기도 양평에는 황순원의 소나기마을이 들어선다고 하죠. 황순원 선생님이 소나기마을이라는 걸 실제로 본 일이 없어요. 그런 건 있지도 않아요. 그리고 그 애가 양평으로 이사 갔다는 것도 실제가 아니에요. 그건 허구의 세계잖아요. 그죠. 그러나 소나기 마을이 들어서면 어떻게 되요. 신화적, 소설적 실체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에 가면 파르테논 신전이 있죠. 그건 아테나 여신의 신전인데, 아테네 여신이 존재했나요? 아니잖아요. 하지만 파르테논 신전은 존재하잖아요. 그죠? 그래서 나는 진정성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문학은 신화에 포함된다는 생각이에요. 황순원 선생의 신화가 저렇게 실체화되는 것처럼 내 궁극의 목표는 거기에 있어요. 말하자면 외국문학 번역이나 신화연구는 한국문학에 내가 벽돌 한 장이라도 쌓아야 하지 않겠냐 하는 도상에 있는, 일종의 방편인 거구요. 글쓰는 일은 약장수가 약을 파는 것과 같다. 약장수가 차력사와 가수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후에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글쓰는 사람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끈 다음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이윤기는 말한다. 그가 풀어낸 신화는 쉽고 편하며, 그의 수필은 솔직하다. 솔직한 척이 아니라 솔직한 것이다. 그의 부끄러움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photo2 저널 / 특히 신화에 대한 글을 쓸 때 최대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풀어내시는데 어떤 마인드에서 하는 것인가요? 이 / 그건 뭐냐 하면 독자에 대한 서비스에요. 하지만 그건 내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에요. 그건 글쓰기의 방법론이에요. 신문기사를 읽어보면 많은 필자가 잔뜩 경직 되가지고 초반 문장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단 말이에요. 그럼 난 던져버린단 말이에요.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내가 학생들한테 이야기하는 게 뭐냐 하면 목에 힘을 주지 말아라. 남학생들은 목에 넥타이를 풀어라. 나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쓸 때 의도적으로 고유 명사를 안 쓰려고 합니다. 왜. 그리스고유명사 이만큼 긴 거 한 문장에 다섯 개씩 들어가면 그걸 무슨 수로 읽어냅니까 그걸. 그 때의 전략이 뭐냐면 되도록이면 대명사로 바꾸어서 고유명사를 줄여야 한다 이거에요. 내가 융이나 프로이트 이론을 동원해서 내가 막 신화에 대해 지껄이면 그건 지껄이지 않는 바나 똑같은 거예요. 못 알아들으니까. 그래서 내가 쉽게 쓰려는 거예요.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 반드시 하는 말이 이거에요. 뭐냐면, 끌어들여라 독자를. 꼬셔서 끌어들여서 글 중간까지 오며는 그 때까지 읽은 거 아까워서 못 그만둔다. 그러나 내 문학은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내가 해야 할 문학은 굳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건 매우 위험하고 음험한 생각이기도 하고. 그래서 소설을 쓸 때는 내가 그런 전략을 쓰지 않았어요.저널 / 산문집을 읽어보니 솔직하게 글을 써내시는 것 같아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드러내시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필자가 진실 되게 이야기하고 노력하고 있구나’ 라고 느끼게 하더라구요. 굳이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이 / 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내 아내와 자주 다퉈요. 왜 자주 다투냐면 왜 이렇게 망가 지냐 말이야. 굳이 고백하지 되지 않아도 될 나쁜 기억들을 왜 고백 하냐는 거지. 근데 나는 이런 거예요. 내가 넥타이 탁 메고 점잖게 쓴 그 글을 누가 읽어줘요. 그 전에 얼마 전에 중앙일보 기자라는 사람이 자기 블로그에서 나를 깠어요. 이 양반은 부끄럽고 아팠던 과거를 말할 필요가 없는데 말한다 이거야. 그런데 끝에 결론이 모냐 하면 그렇지만 아픈 과거와 부끄러운 과거가 사람을 키우는 것 같다는 거야. 어떤 사람이 가보래서 그 블로그에 가봤는데. 그 결론을 보면 깐 게 아니거든. 그래서 그 사람하고 나하고 친구가 되었어. 그래서 그 블로그에 있는 사람이 하도 글을 잘 써가지고 내가 출판사한테 이야기해서 책을 내게 했어. 그래서 어제 그 출판 기념회에 다녀왔어. 나를 깐 기자 출판 기념회에 말이지. 그게 진실이라는 거예요. 진실이라는 것은 항상 듣기 껄끄럽고 낯 뜨겁고 그런 것이 진실이거든. 근데 그것을 고백하지 않고 그걸 계속 감추고 나가는 것은 그것은 가짜라는 것이지 가짜. 그는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종교와 철학 문학의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며 그것을 대중에게 쉽게 풀어내기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의 여정도 지금까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저널 / 요즈음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 예.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제도 책을 낸 신문기자하고 나하고 논쟁을 했는데. 자꾸 인문학의 위기라고 그러더라구요. 그 다음에는 문자의 위기다 활자문화의 위기라고 자꾸 그러고. 하지만 나는 인문학은 오히려 앞으로 몇 세기 동안 빠른 속도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문화 역사가 호메로스부터 치면 2800년인데 지금 2800년의 자료가 다 어디에 있습니까? 도서관에 다 있어요. 그 도서관 뒤지지 않고는 뭐가 안나옵니다. 인류가 2800년 동안 해온 게 있는데 지금 생뚱맞게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없어요. 결국은 영상문화가 왔다가 도서관으로 빠꾸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야 거기서 뭘 건질 수가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거둘 게 없다 이거에요. 그래서 인류가 이미 그 경험을 몇 번 겪었습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경험이 르네상스의 경험이에요. 교회에 억눌려 있고 교회에 억압되어 있다가 가만히 보니 이게 인류가 갈 길이 아니다 이거에요. 아니 그렇다면 고대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보자. 이렇게 해서 돌아간 것이 르네상스입니다. 지금 인류가 딱 그러한 위치에 와있어요. 신화열풍도 일종의 그 바람일지도 몰라요. ‘어. 이게 아닌데.’하면서 환경문제나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돌아가고 있는 거에요. 웰빙이 뭐에요. 완전히 빠꾸하는 거에요. 신화가 뭐에요. 완전히 빠꾸하는 거죠. 자 우리 출판사상 완간 김정희에 대한 연구나 연암 박지원에 대한 연구가 지금처럼 활발한 적이 있었어요? 그거에 대해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어요. 왜. 국가가 그것을 반추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으니까. 이제 겨우 그렇게 되어가지고 요새 아침에 책 나오는 거 유심히 한 번 보세요. photo3저널 / 그렇다면 그 인문학이 선생님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이 / 나는 책을 많이 읽었어요. 많이 샀어요. 그리고 많이 썼어요. 그니까 하나의 사회 현상을 보면 저게 어디로 굴러갈지를 슬쩍슬쩍 예측한단 말이에요. 그게 내 삶의 재미에요. 그게 인문학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은혜에요. 이를 테면 이런 거에요. 국회가 노대통령을 탄핵할 당시에 열린 우리당 국회의원이 몇 명인지 아세요? 46명이었어요. 조금 있으면 총선을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노대통령들을 덜커덕 탄핵해버린거야. 탄핵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내가 우리 집사람한테 그런 말 했어요. ‘봐 입질온다 입질온다.’ 탄핵 딱 하자마자 ‘큰 거 물렸다. 대어다’이랬지요. 이게 인문학이 나한테 준 힘이에요. 내 시나리오는 이런 거였어요. 내가 영웅 신화를 잘 알거든. 영웅을 키우려면 한 번 잡아야 되요. 그러면 국민이 바로 영웅 뒤에 줄을 좍 서버려요. 내가 그렇다고 해서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에요. 지혜로운 사람은 아닌데 인문학의 모든 줄기를 잡아가면 대충 그런 눈이 나와요.저널 / 우리의 주 독자층은 대학생들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우리 나이 때, 그러니까 20대 초중반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이 / 내가 20대 초반에는 당돌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학교 공부는 잘 안하고 텍스트에 빠져 있었지요. 영어텍스트는 영어로, 일어텍스트는 일어로 모두 읽었어요. 그래서 내 나름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그러는데. 나는 내 또래들이 기타치고 당구도 치는 나는 그 청춘이 없어요. 나는 아직 화투도 칠 줄 모르고 트럼프도 칠 줄 모르고 당구도 쳐본 일이 없고 바둑이나 장기도 모르고 오로지 책만 읽고 외국어책 바꿔가며 읽었지. 오늘은 독일어판 내일은 불어판 이러면서. 그런 짓을 하고 다녔지. 정상적인 애는 아니었지. 저널 / 그 당시 특별히 사회나 자아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았는지. photo4 이 / 그것이 나의 치명적인 면이에요. 나는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기 보다는 종교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그러니까 내 친구들 하고 자주 모이는 그룹이 있어요. 스무 명쯤 만나면 서울대학 안 나온 사람은 둘 쯤 밖에 없어요. 나머진 다 서울대고. 감옥 안 간 사람은 또 둘 밖에 없어요. 그 둘 다 포함되는 게 나에요. 그래서 내가 그 쪽에서는 굉장히 부끄러워하죠. 그 당시 사회에 대해서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고 선이란 무엇이냐 악이란 무엇이냐 구원이란 무엇이냐 윤회란 무엇이냐 맨날 이 생각만 하고 있고. 그 다음에 내가 20대 초반에는 내가 고등학교도 잠깐 다니다 말고 대학도 잠깐 다니다 말았었죠. 그래서 자연히 사회에 대한 의식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를 잃었죠. 그래서 내가 요새도 내 친한 친구들, 아는 사람들한테 내가 늘 마음 빚이 있지요. 저널 / 선생님 직업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 거 같은데, 다시 태어나도 공부하는 사람 되고 싶으신가요.이 / 다시 태어나서 내가 철이 없어서 딴 길로 빠질 수도 있는데. 난 근데 술 마시고 책볼 때 이상으로 행복할 때가 없다. 아마 다시 태어나서 직업을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아마 이 길로 갈 거다. 난 내가 젊을 때에는 나만큼 불행한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끔찍한 고생이 앞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지금도 세계2,30국을 더 여행해야 되요. 저 무거운 카메라 두 대를 들고. 앞으로 수 만장의 원고를 더 써야 해요. 끔찍해요. 그런데도 요즘 들어서는 내가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딸 나이보다 아래인 학생기자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존댓말로 대답한 그였지만, 강한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서 그런지 솔직담백하단 인상을 받았다. 솔직하고 재미있는 그의 글처럼 인터뷰 역시 그러했다. 그가 미국에 갔을 적에 새로 만들었다는 영어 미들네임(middle name)은 Kwine이다. 과인(過人)을 영어로 옮긴 것인데, 그는 그냥 이 세상에 지나가는 사람(passer-by)이 되고 싶다한다. 넥타이를 푼 채로 임했던 그의 종전의 작업들처럼 앞으로의 그의 여정 역시 소박하고 진솔한 것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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