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도시에 물을 주는 사람들

‘닭장, 성냥갑…’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묘사하는 말들이다.아파트 뿐 아니라 도시의 모든 공간들에는 흔히 자조적인, 갑갑한 단어들이 붙곤 한다.언제쯤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공간을 생기발랄한 단어들로 부를 수 있을까.

‘닭장, 성냥갑…’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묘사하는 말들이다. 아파트 뿐 아니라 도시의 모든 공간들에는 흔히 자조적인, 갑갑한 단어들이 붙곤 한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공간을 생기발랄한 단어들로 부를 수 있을까? 도시연대의 사람들은 도시의 모든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뛰는 사람들이다.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는?photo1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는 1994년 설립된 ‘시민교통환경연구소’에서 시작되었다. 이 단체는 인간 환경의 회복을 통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만들어가는 삶의 문화를 보전하여,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도시연대는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아래에 도시환경센터, 도시문화센터, 시민교통환경센터, 도시정책센터, 커뮤니티 디자인센터(community design center)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도시 환경 센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센터에서 주도하는 한평공원 만들기 사업, 도시문화센터 주도의 북촌문화학교와 인사동학교 운영, 시민교통환경 센터에서 주도하는 청소년 교통학교 운영과 안전한 통학로 만들기 운동, 그 밖에 마을 만들기 대회 개최 등이 있다. 북촌문화학교는 학생,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가회동 주민자치센터와 공동 진행하는 사업으로 수강생들에게 북촌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후원으로 진행되는 인사동학교는 매주 목요일마다 전문가들의 강의와 인사동, 정동, 명동 등의 답사를 통해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인사동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광화문 네거리의 보행문화 개선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광화문 앞 네거리에 횡단보도 만들기, 보도 폭 넓히기 등의 사업에도 도시연대가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photo2도시연대 간사인 강순천 씨는 “1967년 광화문에 지하보도를 만들면서 광화문 앞 사거리는 차량 중심의 거리가 되어버렸어요. 기존에는 광화문 앞에 횡단보도가 남북방향으로만 있었는데 이번에 동서방향으로도 만들게 되었지요” 라고 말했다. 이어서 “저희는 이 횡단보도들의 복원을 통해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보행자들의 흐름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도심을 만들려 합니다. 서울시에서도 보행자들의 연결이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의지가 있기에 저희 시민단체들과 서울시의 협의 하에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어요”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지금 공사가 진행 중인 2500평 규모의 숭례문 광장 조성도 보행자들에게 도심을 돌려주겠다는 맥락에서 참여하고 있다.한평공원, 짜투리 공간의 부활이러한 많은 활동 중에서도 올해 도시연대가 가장 역점사업으로 꼽고 있는 것은 한평공원 만들기 사업이다. 도시연대의 ‘주민 참여형 한평공원 만들기 사업’은 도시연대가 서울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동네에 방치되어 있는 땅을 공원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2002년 종로구 원서동에서부터 시작된 사업으로 현재까지 7곳에 한평공원이 만들어졌다. 여러 동네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진행하는 사업인 만큼, 7곳의 한평공원들은 저마다 동네의 특색에 맞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종로구 가회동의 어린이집에는 어린이들이 자기 마을의 모습을 그린 타일을 어린이 집 벽에 붙여 공원을 만들었다. 또 성동구 금호동에서는 기존의 주차장을 다른 곳으로 옮긴 후 그 자리에 놀이시설을 설치하여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한편 예전의 은평구 수색동 수색초교 앞에서는 골목길이 급격하게 꺾이면서 생기는 ‘사각지대’로 인해 통학하는 학생들과 운전자들 간의 교통사고 위험이 높았다. 이에 도시연대는 ‘한평공원’ 사업을 통해 골목길이 보다 완만하게 돌아가도록 공간을 만들고 화단을 꾸몄다. 이제 수색초등학교 학생들은 보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골목길로 학교에 간다. photo3 ‘한평공원은 단순한 도시 미화사업이 아니라 버려진 공간을 가꾸는 과정에서 이웃에 시선을 돌리고 이웃과 교감하는, 이를 통해 이웃과 함께하는 동네를 만들어 메마른 도시를 살리는 생명의 텃밭을 가꾸는 일’이라고 도시연대는 역설한다. “이웃과 함께하는 동네를 만드는 것이 한평공원 만들기 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평공원을 만들 때 해당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 최대한 노력합니다. 해당 지역 사업 시작을 공사 미리 게시하여 주민들의 관심을 이끌고, 구상안을 주민들 앞에서 설명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물론 공사 과정에서도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이끌어내려 하지요.” 강순천 간사의 설명이다.시민들과 함께 숨쉬는 도시연대photo4강순천 간사는 처음부터 모든 활동은 주민 참여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우리 활동의 기본 모토는 주민 참여입니다. 기존의 행정과 같은 일방적인 통보와 진행이 아니라 그 지역의 주체인 주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정신입니다.” 예를 들어 한평공원 사업을 진행할 때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서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또 주민들이 참여한다. 올해에 한평공원 사업을 진행할 장소인 창동노인복지센터에서도 여러 가지 예시를 만들어 주민들이 선택하게 했다. 또 이번 사업을 진행하는데 부족한 자금도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일일 찻집으로 충당할 것이라 했다.이렇게 주민과 밀착해서 활동하다 보니 자기 지역의 문제를 스스럼없이 상의해 보는 사람도 많다. “그 분들이 전화로 연락을 주세요. ‘지금 우리 동네 횡단보도를 없앤다고 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할까?’ 라든지 ‘쓰레기가 계속 쌓여 있는 공간이 있네. 같이 해결하자’ 이런 종류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답니다.” 또 지역에 주민들과 함께 일을 하고 오면 단체의 취지에 동감하여 주민들이 다른 지역의 일에도 스스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도시연대가 가장 보람 있던 일로 꼽은 것도 주민들이 함께 한 것이었다. “작년에 수색에 한평공원을 만들었어요. 공원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지속적인 관리는 우리 단체에서 계속 하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 공원을 바로 옆에 계시던 문방구 아저씨가 돌봐 주시더라고요. 주민들이 우리의 취지를 알아주시는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았고 보람을 느꼈지요.” 서울 광장을 시민들의 광장으로photo5계속된 서울특별시의 도시 행정에 대한 이야기에서 강순천 간사는 서울시가 보여주고 있는 ‘발상의 전환’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보행 환경이 개선되고 있고 녹지 공간의 확보를 위한 노력도 눈에 띄어요. 노들섬의 오페라 하우스 건설 계획 등 서울시가 가지고 있는 마인드 자체는 환영할만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발상의 실천 과정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특히 그는 구체적으로 시청 앞에 조성된 ‘서울 광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울시나 시민들이 광장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광장은 공원과는 다릅니다. 광장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흩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광장은 ‘광장’ 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햇빛가리개 하나 없는 잔디밭일 뿐입니다. 잔디 보호를 명분으로 시민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이지요.” 원래 서울광장에 대한 구상안을 공모할 때 당선작은 ‘빛의 광장’ 이었다. 광장 바닥에 LCD 모니터를 설치하고 그 위에 특수 강화 유리판을 덮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약속을 깨고 시간상, 기술상의 이유를 들어 평범한 잔디 광장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각계의 반발이 있었지만 서울시는 변경안을 고집했고 지금의 반쪽짜리 서울광장이 탄생했다는 것이 도시연대의 주장이다.더욱이 서울시는 광장의 의미를 더욱 훼손시킬 수 있는 계획을 추진하려 했다. 서울광장은 현재 도시 계획 용도상 교통광장으로 분류되어 있다. 도시연대가 지적한 문제는 서울시가 이를 ‘공용의 청사’로 변경하려 했다는 것이다. 만약 서울 광장이 ‘공용의 청사’로 변경된다면 광장은 시민들의 것이 아닌, 시청 소유의 땅이 된다. 따라서 서울시의 소유인 광장에 시민들의 출입을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시민 단체들의 항의로 계획은 잠정적인 보류상태이다. “이제 앞으로는 관료의 입장에서 도시가 계획되고 건설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도시 계획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국 도시의 주체는 시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라고 강순천 씨는 강조했다.시민들이 주인인 도심이 될 때 까지도시 연대의 모든 사업은 하나의 목적을 공유한다. 차량 위주의 도시를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것, 도시연대 사람들은 오늘도 도시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뛰고 있다. 보통의 시민단체와 다르지 않게, 이들의 사무실은 협소하고 자금도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시민들이 함께하기에 도시연대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들의 도시’를 만들어 나간다는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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