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한국의 국사학계에 새로운 파문들이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 탈민족주의 담론을 기초로 하는 시도들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인 윤해동씨는 파문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저항, 억압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도식화되는 역사관에 한계를 느끼며, 역사 해석의 새로운 시도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2003년 ‘식민지의 회색지대’라는 책을 통해 이 문제의식을 선보인 적 있다. 니체는 영원한 자기 창조는 “영원한 자기 파괴의 세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해동씨는 자신이 공부해 온 국사학의 발판들을 무너뜨려 ‘타자화’ 시킴으로써, 새로운 역사학의 단면들을 제시하고 있다. 5월 24일, 어느 나른한 봄날 가정집을 개조하여 만든 아담한 역사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그를 만나, 한국 국사 교과서를 ‘타자화’시키는 과정을 들어보았다. photo3서울대저널 (이하 저널) |이미 국정교과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동의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도 국정교과서를 고집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요. 글쎄요, 아직까지 사회적 합의를 못 이끌어낸 거겠죠. 역사학자들이 보수적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아직도 학계에서 역사교과서를 만드는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학계원로들이거든요. 학계원로들이 국사 교과서를 폐기하기가 싫은 거겠죠. 그런데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힘은 그만큼 아직까지 강하지가 않은 것이고, 또 시민사회에서의 요구도, 학교에서의 요구도 아직 그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다고 볼 수 있겠죠.저널 |지금의 경우에는 검정제도라 하더라도 국가에서 지침이 내려오기 때문에 검정제도도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검정제도에는 검정기준이라는 것이 있죠. 이 기준에서 많이 벗어나면 그 내용은 교과서에서 삭제돼버리죠. 물론 검정기준에서 벗어난 것이냐 아니냐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겠고, 조금의 이유야 있겠지만 일단 기준 자체가 있는 것이니까요. 교과서서술의 기준이 있다는 것은, 그것도 특히 국가가 내세운 기준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라고 볼 수 있겠죠.저널 |하지만 자유발행제가 된다면 새역모와 같은 교과서가 나왔을 때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지 않을까요? 당연합니다. 교과서를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국가가 한 종류를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다양한 해석을 담은 다양한 교과서들이 나오면 그만큼 혼란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우파적 교과서도 나올 수 있고, 좌파적 교과서도 나올 수 있고 그런 것인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요. 민주주의사회, 다원사회에서 그런 것 때문에 못하겠다, 우파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교과서가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서 검정제도폐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죠. 근현대사교과서도 국정을 폐지하고 나니까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거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두고 시민 사회 내에서 비판 세력이 나타나는 것인데, 저는 그건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저널|새역모교과서가 채택률은 낮지만 다른 언어로 번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이것이 다른 교과서에 영향을 줘서 위안부문제가 같이 빠지게 됐었다는 견해가 있는데요. 그렇다면 일본의 교과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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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가 되었던 후소샤 교과서를 보고 있는 일본의 학생들 |
그런 일본사회적 특수성도 있지만 저는 최근에 일본에서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 또 일본의 지식인들을 만날 때 그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일본은 4년마다 한 번씩 검정을 하는 제도로 돼 있거든요. 결국 4년마다 돌아오는 돌림병, 4년을 주기로 되풀이 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01년에 새역모 교과서가 처음 써졌을 때 난리가 났고, 그 다음에 2005년에 검정을 다시 했을 때 난리가 났었고, 2009년에 또 난리가 날 거예요. 그런데 일본 시민 사회에서 반대 운동의 방식이 뭐냐면 채택반대 운동입니다. 학교에서 채택하게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교과서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지역교육위원회와 학교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 거죠. 그래서 지역시민운동에서 새역모 교과서 채택반대운동을 하고 있는데, 제가 일본 지식인들한테 얘기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검정제도 폐지 운동을 하라는 것이에요. 검정제도 자체를 폐지해 버릴 경우엔 초기엔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죠.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봅니다. 하지만 일정한 기준은 있어야 될 거라고 봅니다. 그 기준은 교육자치체에 돌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교육자치가 제대로 시행이 안 되고 있는데 국가가 그런 기준을 만들 것이 아니고, 예를 들어서 서울시 같은 경우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판단하게끔 해야 할 것입니다.저널 |현교과서 내에는 생동감 있는 서술이 많이 부족한 편인데, 정치사?국가중심으로 서술이 돼있어 그야말로 공공성의 영역은 많이 빠져있다고 지적 받고 있는데요. 이번에 새로 바뀐 근현대사교과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고등학교 교과편제는 자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해서 사회과목에 편성하는 미국식이예요. 그것을 한국에 그대로 가지고 와서 하고 있다는 것을 역사학계에서 계속 지적을 해왔는데, 제가 이 책(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것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을 수 있겠다는 거예요. 미국에서 자국사를 일반사회 교과목을 편성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역사가 불과 200년밖에 안되니까 한국, 동아시아사회처럼 지금의 경제, 삶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는 역사가 아니라는 거죠. 동시대적 과제를 많이 안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사회교과목으로서의 성격을 어느 정도 자국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한국의 경우도 개항을 계기로 해서 사회교과목을 편성하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말하자면 동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죠. 모더니티라고 하는 측면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될 사회이기 때문에 일반사회교과목으로 편성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반드시 이 책들이 거기에 맞춰서 쓰여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 이전의 국사교과서와 비교했을 때 몇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많이 바뀌었는데, 좌파적 운동이 들어가 있다든지, 대한민국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 시각에 서 있다든지, 상대적으로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바뀌었는데, 다른 쪽 측면에서는 오히려 민족적 색채가 강해졌어요. 그런 측면은 제가 보기에는 바람직한 서술은 아닌 것 같아요, 전교조 역사교과서에 만든 대안교과서 보고 저는 굉장히 실망을 많이 했는데, 그것은 검인정 교과서보다도 더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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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이 되었던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교과서 |
저널 | 식민지 근대 시기를 저항과 억압의 두 측면으로 단순화 시켜 보는 측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떨어져 있는 영역을 서술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 입장에서는 피해자로서의 역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 측면을 간과 할 수는 없죠. 식민지지배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측면인데, 거기에다가 모든 것을 귀속시켜버리니까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보니까 제목자체가 그렇게 돼 있어요, 일제시대 제목은 민족독립운동의 전개라고 되어 있고, 개항기는 근대사회의 전개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일제시대를 이해를 할 때에는 저항이라고 하는 것을 빼버리면 조선 사람들의 주체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일제 시대에서 저항을 빼버리면 한국사가 되기 어렵다는 거거든요. 일본사람들의 지배의 역사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한국사 영역에 식민지를 어떻게 끼어 넣을 수 없지 않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식민지를 한국사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한국 사람들의 주체적인 측면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것은 저항으로만 드러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매번 싸우기만 했느냐. 일상자체는 그냥 흘러가고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먹고 살고 사는 행위 자체는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인데 저항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버리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 자체는 아주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냐는 문제의식이죠.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복구 시킬 것이냐는 것은 참 어려운 과제죠. 계속 고민해 나가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저널 |민족주의적인 시각에 의해 일본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서술이 빠진 것과 우리나라 교과서에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서술이 거의 부재한 것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볼 수 있나요? 7차 교과서 같은 경우에는 검정 기준을 최대한 잘 이용해서 많은 얘기를 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들에게 끼친 피해의 측면도 서술 되어 있고, 상당히 적극적으로 가령 베트남 민족 해방 운동에 개입을 했다 또는 용병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이용하여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양민 학살 문제가 있죠. 한국군도 많이 했다고 알려져 있죠. 수교할 때 베트남이 돈이 급해서 그런 문제 해명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한국 정부에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죠. 양민학살 문제나 개입한 문제에 대해서 사과하는 발언을 한 마디도 안 했죠. 근데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고 있죠. 물론 하나는 36년 동안 지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참전한 것인데 같은 수준에서 얘기가 될 수 없는 측면도 조금은 있고,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유사하다. 저널 | 기본적인 성격이 유사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은 밖으로 진출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베트남 외에는 별로 침략한 역사는 없죠. 근데 그건 욕망의 문제겠죠. 친일파 등에서 나타나는, 30년 후반 이후에 전시체제로 들어가면서 조선인들의 일반적인 욕망 구조가 있습니다. 일제 말기에 일본의 정책 자체는 문제가 있어요. 문제가 있지만 양면이 있어요. 징병을 피해의 입장에서만 얘기를 하는데, 한국군인들이 중국 전선이나 동남아 전선에 한국군인들이 배치가 되면. 한국인들은 침략자죠. 근데 우리는 강제되었다는 피해의 측면만 강조를 하는데 중국이나 동남아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한국인들이 침략자죠. 끌려나왔다고 해서 침략자가 아닌 건 아니거든요. 그런 측면들을 왜 무시를 하느냐라고 얘기를 하면 그것은 끌려 간 것인데 무슨 소리냐 이러는데. photo4 전 그게 식민지라고 생각해요. 분열적인 상황을 강요받는 것. 말하자면 끌려가서 총 쏘게끔 하는 구조 자체가 굉장히 분열적인 상황 아닙니까. 이게 식민지 정서라는 거죠. 여기서 식민지민들이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욕망 구조가 있어요. 일본 전체에서 2등 국민이란 겁니다. 만주 같은 데 가면 조선인은 2등으로 대우를 받으니까. 그래서 한국인들이 만주에 상당히 많이 갑니다. 박정희, 최규하 이런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최규하씨는 만주국의 관료를 해요. 그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요. 만주에서는 2등 대우를 받으니까. 2등 국민으로서의 욕망 구조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욕망 구조죠. 상황이 되면 우리도 침략할 수 있다. 단지 우리는 힘이 없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이제 그 전후 해방 한국 민족주의는 그런 지배의 욕망이 상당히 개입되어 있다는 거죠. 저널 |이런 것을 한국 교과서에 서술하라는 요구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국정 교과서에서 하라고 하는 것은 쓸모가 없고. 검정교과서나 자유발행제에서는 쓰는 사람의 자유죠.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은 넣을 것이고, 안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은 안 넣을 것이겠죠. 한국사학계에서도 만보산사건은 거의 주목하지 않죠. 주류적 해석은 아직도 단순히 일본의 음모설이라고 할 수 있죠.저널 |한국은 아직도 국정교과서 쓰면서, 새역모교과서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보시나요? 새역모 쪽에서 가장 많이 비판하는 거죠. 새역모 교과서는 한국 국정교과서보다는 나은 측면이 많아요. 아주 교묘하게 구성주의적 시각을 취하고 있어요. 역사학이라는 것은 해석의 체계다,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이 인정되기 힘들다. 서문에서도 워싱턴 얘기를 하는데, 미국 역사에서는 독립운동, 국부로 추앙받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반란자 아니냐, 보는 입장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내용은 우익적 내용으로 채우고 있는데. 노골적인 민족주의적 서술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한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민족으로 도배가 돼 있는데, 일본 새역모는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아요. 문제가 되는 건 있죠. 동아시아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굳이 빼려고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일본사 서술에서 노골적으로 민족주의적 서술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한국 국사교과서하고 비교하면 민족주의적 시각이 약한 편이죠.저널 |민족주의적인 서술 방식을 우리나라만 버릴 경우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적인 역사관을 강화시켜주는 논리로 쓰일 우려가 있으므로 사실상 동아시아 삼국이 함께 민족주의적인 서술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될 것을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민족주의적 서술을 계속 강화해나가는 것, 담을 쌓아나가는 것, 그것이 과연 해결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 동아시아 지역의 상호의존은 계속 높아지고 있고 현실적으로 교류가 어마어마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 서술만 계속 민족주의적으로 강화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현실적으로는 항상 어려움이 많아요. 50년대에 유럽이 공동체를 만들려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아냥 거렸죠. 그런데 40년 만에 경제통합까지 가능해지지 않았습니까. 현실 자체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이 현실이 변할 수 있겠는가라는 감각을 가지기 쉽지만, 현실을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을 때는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역사학자 자체가 생각이 바뀌어야죠. 몇십년 동안 공부한 역사학자들이 생각을 바꿀 수 있겠어요? 죽을 때까지 못 바꾸죠. 시간이 단순히 해결해주지도 않겠지만, 시간이 흘러가지 않으면 어렵겠죠. 이렇게 그의 연구소에서 1시간40분의 인터뷰를 끝마쳤다. 그는 적지 않은 인터뷰 시간내내 연신 줄담배를 피우며, 담담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자신이 배워왔고, 또 연구 하는 분야를 스스로 비판해야 한다는 것은 신념의 확신 정도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굉장히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이런 고뇌들을 이 인터뷰에 문자로써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