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보호와 대운하 건설 양립가능한가?
근자에 한반도 대운하 논쟁에서 낯 뜨거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찬성 측 인사 중에서 기존의 자신의 학문관과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인들의 선전활동에 지식인들이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빌려주어 합리화 시키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변절은 개인적인 비난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공론화 차원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엄격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귀곤 서울대 환경생태계획학 교수는 그간 습지를 비롯한 환경담론에서 활발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는 학자다. 가령 김 교수가 (07년 8월 24일자)에 기고한 ‘종합관리 필요한 논 습지 생태계’라는 칼럼은 기존의 습지에 대한 제한적인 논의를 벗어나서 “습지조건에는 토양과 습지 수문만 포함되며, 물풀의 존재 여부는 중요치 않다. 따라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지라도 습지조건을 갖추었으면 습지로 평가되어 규제 대상에 포함되게 된다”면서 논에 대해서도 습지로서 보호해야 한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비무장지대에서 개성공단의 오폐수로 습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발언을 하는 등, 김 교수의 습지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대선 이후 (08년 1월 11일자)에 기고한 ‘환경재앙 없는 운하도 많다’라는 칼럼은 김 교수의 기존 주장과 전면 배치된다는 점에서 당혹스럽다. 김 교수는 칼럼에서 독일, 영국의 운하를 사례로 들면서 운하 건설 이후에 강 생태계가 꾸준히 개선되고 있음을 주장하며 대운하 건설을 합리화했다. 한정된 지면에서 해외운하의 오염수준에 대한 실증적인 대차대조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기존 강 생태계→운하건설→생태계 개선’이라는 김 교수의 기묘한 논리적 구조만큼은 지적하고자 한다. 이는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가 운하가 건설됨으로써 맑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논리처럼 주객이 전도됐다. 애당초 운하건설을 하지 않음으로써 강 생태계를 유지하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걸까? 혹은 알면서도 안하는 건가? 대운하가 관통하는 예정지에는 유수한 습지들이 자리 잡고 있다. 비무장지대에 개성공단이 유치되면서 습지가 파괴될 것을 우려한 김 교수가 현재도 금호강으로부터 오폐수가 흐르고 있는 대구시의 달성습지가 인근에 대운하 터미널이 건설되면서 파괴가 촉진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을 리 없다. 김 교수가 애당초 반생태적, 개발주의적 학문관에 근거한 학자였다면 이러한 비판 자체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김 교수처럼 기존의 학문관에 전면 배치되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정치인에게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빌려주어 미꾸라지처럼 논쟁의 선명성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기고에서 “환경문제는 개인적인 생태적 양심의 대상이기도 하고 공공정책의 이슈이기도 하다”면서 공공정책으로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인이 아닌 사회에 장기적인 합리적 좌표를 제시해야 할 지식인인 이상 단기적인 정치논리에 좌우되어 언론에 상반되는 주장을 발언하는 자신의 생태적 양심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 금이 가는 학계의 ‘침묵의 카르텔’필자가 에 기고한 본교 유우익 지리학과 교수의 운하찬성에 대한 비판글인 ‘한국지리학계의 일원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편집진에서 워낙 섹시한 제목을 뽑아준 덕(?)에 평소 진보언론을 잘 안보는 지리학자들에게도 내 졸고가 꽤나 읽혔다고 한다. 이후에 기사제목의 효과인지는 몰라도 내 글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데 지난 글의 내용을 찬찬히 읽은 학자라면 제목과 달리 지리학뿐만 아니라 공간담론을 연구하는 제반 사회과학에 대한 각성을 촉구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러한 원인을 간단히 정리하면, 지방은 한반도 대운하가 통과하는 지역의 지역여론이 압도적인 찬성분위기에다가 지역언론이 이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라 그 지역 지방대의 진보적 성향의 학자는 반대주장의 논문은커녕 칼럼하나 쓰지 못하는 실정이고, 수도권은 서울대를 비롯하여 서울을 연고로 하는 대학들은 비공식을 전제로는 반대하면서도 찬성 주장의 교수들이나 차기 정부와 부딪치는 것을 피하고자 쉬쉬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었지만 최근 한국지형학회에서는 대운하를 주제로 심포지움을 치뤘고 대운하 찬성 논객인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가 부회장으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운하건설 반대를 표명하고 서울대의 유우익 교수, 김귀곤 교수 등의 대운하 찬성에 침묵하던 서울대 내부에서도 이준구 경제학과 교수의 발언을 시작으로 동료교수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운하반대서명에 참여한 점은 괄목할 일이다. 그동안 을 비롯한 타매체에 대운하 관련 글을 쓰면서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담감은 찬성 측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정작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밖으로 표출 못하는 ‘침묵의 카르텔’에 기인한다. 침묵의 카르텔에 대한 부담이 지금까지 학계에서 유우익, 김귀곤 교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못 하게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학계 임원을 맡고 있는 중진학자들을 만나 생각을 들으면 조만간 입장표명에 있어서 본격적인 행보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몇 해 전 서울대 교수들이 본교에 원전센터를 유치하겠다는 몰염치한 서명행위를 63명이나 했던 것을 상기할 때 대운하 반대 서명인원이 400여명을 넘기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은 그나마 지난날의 어설픈 사회적 발언 개입에 대한 반성의 제로섬(zero sum)일 뿐이다. 가 선정한 세계 51위로 뽑힌 것도 의미 있겠지만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고려할 때 앞으로 대운하 반대 여론 국내 1위를 주도하는 서울대가 되었으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