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에 새내기가 들어왔다. 정말 나보다 어린 이들이 떼거지로 학교에 몰려왔다. 그들을 맞는 기분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 설렘은 2년간의 학교생활의 과실인 사람들과의 만남이 슬슬 지겨워져 가던 지난 가을부터 시작됐다. 두려움은 혼란한 자기 정체성에 기인한다. 학교생활의 절반은 지났는데, 군대는 언제 갈지 모르겠고, 전공도 딱히 맞는 것 같지 않고, 대인관계는 여전히 어려우며, 미래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도,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친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 꼭 ‘연령주의의 해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내 스스로가 대학에 와서 겪은 문제 중 상당부분이 나이와 관계된 것이었기에 연령주의는 항상 내게 스트레스를 가져다줬고, 이에 대한 반감만 키우게 했다. 이런 나를 ‘해방’시켜 주었던 것이 바로 여성주의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분노를 찾아보기 어렵다. 분노해야 마땅한 일인데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냉정함과 지성미를 과시하는 글을 쓰는 지식인이 너무 많다.” 몇 년 전에 강준만이 한 말이다. 대학 내에서도 이 말은 크게 틀리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학사행정 전반을 놓고 학생을 농락하는 학교의 구태의연한 태도에, ‘탈정치’라는 구호 뒤에 숨어 오히려 극도의 정치성을 내보이는 어떤 집단의 태도에, 도덕성을 팽개치고 물신만을 신봉하며 교활할 언설을 내뱉는 정치인들에게 분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또래의 블로그나 미니홈피에는 사회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관조자의 입장에서 이성을 과시하며 쓴 글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감정에 집착했다. 정의와 선을 지향하며 진심을 담아 이성적으로 사고하여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에서 삐딱해졌고, 진보라는 단어와 그 현실태에 매달렸다. 비록 아무리 진보가 비난받더라도, 그것이 내게는 자유와 행복을, 꿈과 미래를 선사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버릴 수 없었다. 진보는 내게 ‘계몽’이었고, ‘해방’이었다. 그래서 난 삶의 의미를 찾고, 스스로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내가 걷는 길이 언젠가는 모두의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모두들 비웃지만, 내 자기 최면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사실 새내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진보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지만 계몽은 이제 탈근대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과녁이 되었다. 그래서 난 스스로의 계몽이나마 포기할 수가 없다. 내게 행복을 안겨준 진보가, 정의와 선의 완성을 의미하는 진보가 이렇게 몰락하는 것을 두 눈 번히 뜨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깨져버린 계몽의 꿈은 내게 최면을 건다. 진보가 (적어도) ‘나만은’ 자유롭게 하리라. 정운영이 말했듯, 심장은 왼쪽에 있다. 오늘밤에도 왼쪽 귓가에 바람이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