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자치회를 제안한다

photo1게으름이 화근이었다.기사 아이템을 찾아 오지 않은 나에게 부장이 ‘대학원 자치회’에 대해 써보라고 제안(?)했던 것이다.나의 이번 대학원 기사는 그렇게 부장이 던져준 기사 아이템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대학원생은 논문과 연구 실적이 가장 중요할 텐데 과연 자진해서 학생회 활동을 할 사람이 존재할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찌됐건 기사를 쓰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이 기사 아이템의 발단은 스누라이프에 올라온 한 대학원생의 글이었다.

photo1게으름이 화근이었다. 기사 아이템을 찾아 오지 않은 나에게 부장이 ‘대학원 자치회’에 대해 써보라고 제안(?)했던 것이다. 나의 이번 대학원 기사는 그렇게 부장이 던져준 기사 아이템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 대학원생은 논문과 연구 실적이 가장 중요할 텐데 과연 자진해서 학생회 활동을 할 사람이 존재할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찌됐건 기사를 쓰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이 기사 아이템의 발단은 스누라이프에 올라온 한 대학원생의 글이었다. 연건캠퍼스에 있는 한 대학원생이 대학원 총학생회(이하 원총)를 제안했던 것. 대학원에 총학생회가 없는지 몰랐던, 아니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던 나는 우선 사실 확인을 위해 서울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총학생회란에는 (학부)총학생회 홈페이지 주소만 덩그라니 있었다. 그 동안 총학생회란 학부만의 전유물이었으며 대학원은 논외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대학원생이니까’하는 근거없는 당위를 부여하며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갖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대학들을 8개 정도 검색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학생자치활동 란에 학부 총학 홈페이지 주소와 원총 홈페이지 주소가 나란히 있었다. 홈페이지로 보건대, 활성화가 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적어도 원총이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소통의 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건의하고 요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만한 안정적인 경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그것이 우리에겐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낯섦 때문이었다.그 ‘낯섦’은 중앙대 대학원을 방문했을 때 더욱 강해졌다. ‘나눠주기식 공간 배정 전면 재검토하라’ ‘연구환경 개선없이 연구중심대학 어림없다’ 류의 대학원 건물에 크게 걸려있는 구호들, 대학원신문에 공개적으로 실린 등록금 합의문(중앙대 대학원은 본부와 원총 측 모두 합의해서 서명해야만 당해 등록금이 결정된다)은 나의 익숙함을 또 다시 흔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연구중심대학’의 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등록금에 대한 권리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실제로 우리 학교 대학원생을 여러 명 만나봤지만 원총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불편함을 못 느꼈다는 이유가 다수였고, 원총의 구성이나 역할 범위의 한계 때문에 회의적인 사람도 있었다. 이상했다. 서울대 대학원은 다른 대학 대학원과 뭔가가 유별나게 다른것일까. 왜 다른 대학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권리가 우리에겐 불필요하다고 여겨질 뿐인지 궁금했다. 원총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이미 많은 부분을 당연히 본부의 몫이라고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자신들이 추구할 수 있는, 그리고 추구해야 할 권리마저 ‘안’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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