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수탈의 역사를 읽는다

거의 이십 년 전 석사과정에 입학한 필자가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전공 분야로 택한 것은 큰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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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이십 년 전 석사과정에 입학한 필자가 라틴아메리카 현대사를 전공 분야로 택한 것은 큰 모험이었다. 이런 선택은 ‘저발전 국가’들의 집합으로서 민주주의의 정체, 부의 불평등 분배와 빈곤에 시달린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역사적ㆍ정치적 공감과 아울러, 미국사조차 변방에 머물러 있던 한국 서양사학계의 ‘지리적으로 불공정한’ 형편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탐색해보려는 포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남다른 모험을 시도하는 데 영향을 끼친 다른 요인이 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필자는 (Las venas abiertas de America Latina)이라는 저작을 꼽고 싶다. 대학원 입학시험이 끝난 뒤 번역본 를 읽었고, 나중에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주제와 관련된 부분만 에스파냐 어로 읽은 기억이 난다. 1971년에 이 책을 출판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는 현실참여형 언론인이었다. 갈레아노는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일간지의 편집국장을 맡아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으며, 1973년 6월 쿠데타로 집권한 우루과이 군부가 반대자들을 투옥하자 이웃 아르헨티나로 피신했다. 이어 1976년 3월 아르헨티나에서도 군부의 ‘추악한 전쟁’이 펼쳐지자 에스파냐로 떠나 1985년 귀국할 때까지 망명객으로 살아야 했다. 한때 유럽인들이 ‘엘도라도’(황금의 땅)로 인식한 라틴아메리카는 풍부한 천연자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지속될까? 신과 자연의 저주인가? 열등한 인종과 종교적 관행이나 인습 탓인가? 갈레아노는 에서 다양한 자료를 근거 삼아 이런 의문에 대한 답안을 작성한다. 영역판을 옮긴 박광순(朴光淳)은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려고 번역본 제목을 ‘수탈된 대지’라고 정했지만, 선명한 이미지 효과에서 볼 때 에스파냐어 원제에 비길 바는 아니다. 갈레아노가 고발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수탈 과정은 원제가 보여주는 대로 심장에 연결되어야 할 정맥(venas)이 절개된 채 외부로 혈액이 유출되는 모습과 같았다. 에스파냐의 ‘인디아스’(아메리카) 통상부 기록에 따르면, 1503-1660년 동안 금 18만 5천kg과 은 1천 6백만 kg이 ‘인디아스’로부터 유입되었다. 황무지에 가깝던 포토시(Potosi, 현재 볼리비아 소재)는 대규모 은(銀) 광산이 발견된 뒤 인구 16만 명에 이르는 ‘폭발과 소란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당시 아메리카의 식민 도시 보스턴의 인구보다 열 배 이상 많은 수치였으나 그 영화는 ‘폐허가 된 성당, 8백만 원주민의 시체’와 함께 막을 내리고, 19세기 초부터는 ‘세상에서 가장 조금밖에 갖지 못한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갈레아노는 아메리카의 금과 은이 어떻게 빈사상태에 처한 유럽 봉건사회를 ‘자본주의적 중상주의’로 변모시켰는지, 광산의 경영자들이 어떻게 원주민과 흑인 노예들을 유럽 경제의 방대한 ‘외부 프롤레타리아’로 끌어들였는지 설명한다. 유럽의 시초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을 촉진시킨 자원의 유출 탓에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와해된 셈이었다. 이렇듯 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은 ‘발전의 낮은 단계가 아니라 (다른 곳의) 발전의 결과일 뿐’이며, 빈곤은 그 대지의 풍요로움이 선사한 역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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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당시 유행하던 종속이론에 입각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근대화론이나 경제발전단계론에 맞서, 1960~70년대 라틴아메리카 학계는 주변부에 대한 서구 세력의 수탈과 경제적 지배-종속 구조의 구축을 비판하고자 했다. 독립 이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대개 19세기 중엽부터 유럽 중심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농ㆍ축산물과 광물자원의 단작(monoculture) 지대로 편입되면서, 국내의 대농장주와 상인, 외국 자본의 이해관계 때문에 산업 생산의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리하여 종속이론 연구자들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주변국들이 종속과 착취로 점점 빈곤해지는 경향을 막기 위해선 아예 중심부와의 연결고리를 단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남 탓만 하는 이들의 푸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재가 외부 세력과의 원치 않은 조우에서 비롯된 결과임을 환기시키려는 외침이었다. 1980년대부터 ‘만병통치약’으로 떠받들린 신자유주의적 처방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탓에, 요새 라틴아메리카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폐기를 주장하는 좌파 세력의 진원지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는 우리에게 갈레아노의 책은 현실의 강자들이 은폐하고 기만해온 사실이 무엇이었는지, 한층 더 공정한 세계사 인식은 어떻게 가능할지,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토록 매달려온 발전의 온전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민하도록 촉구한다. 누군가에게는 ‘과학’과 거리가 먼 오도된 열정이나 분노의 씨앗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필자에게 라틴아메리카의 절개된 혈맥은 박력과 혼이 실린 책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보아도 ‘출가 수행자의 첫 다짐’(出家衲子初發心)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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