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zipped – 새터 그 뒷이야기 –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Isaac Mizrahi)가 직접 출연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Unzipped’. 패션쇼를 구상하는 시점부터 모델들과의 연습, 실제 패션쇼가 진행되는 무대 뒤의 상황 등 패션쇼의 모든 뒷이야기를 공개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 영화처럼 이번 기사는 ‘무대 뒤’를 조명하려고 한다. 대학 사회에 있어 자치적 공동체 문화가 대중적으로 구현되는 가장 성공적인 공간을 꼽으라면 단연 새터다. 어느 때보다도 구성원들의 많은 자발적 참여가 따르는, 단순한 신입생 환영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공간이다. 그에 비해 새터가 어떻게 기획되고 진행되는지 학우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새터의 본질적인 의미나 어떤 공간이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겠다. 그저 그 무대 뒤편의 이야기만 제대로 전하기도 벅차다. 한달 보름전부터 사전 작업 착수 지난 1월 4일, 수험생들 면접고사도 치르기 전에 이미 사회대에서는 새터기획단이 꾸려졌다. 원칙적으로는 각반 ―모집단위 광역화로 무작위 11개 분반, 따라서 과가 아닌 반― 신준위에서 1명씩 모여야 했으나 일부 반은 기획단원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10명으로만 구성된 기획단의 임무는 새터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하여 기획, 준비, 진행하는 일. 숙소를 정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필요한 물품의 구입, 자료집 편집 등 그 외에 각종 잡무를 포함한다. 새터에 참가해서도 이들은 자신의 후배나 동기들과는 어울릴 여유가 없다. 각종 행사를 진행해야 하고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그러한 수고를 참작하여 이들에게는 새터비가 면제된다. 대단한 특전 같지만 노동 강도를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해진다. 새터 기획단 첫 회의부터 참석한 기자는 즉시 기획단에 합류, 1월 12일에 사회대 사무국장 박지은(심리 4)씨와 숙소 답사를 다녀와야 했다. 이미 사무국장은 며칠 전부터 유스호스텔과 콘도 서너 곳을 따로 답사하고 온 상황. 맘에 드는 곳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마침 이번 콘도는 깨끗한 신식 건물에 시설도 양호한 편이라 학교로 돌아와 그날로 학생회실에서 계약을 했다. 선금은 50만원, 2박3일동안 5식을 제공하는데 1인당 2만7천원이다. 참가인원을 모두 일일이 셀 수는 없고 콘도측에서 식사 할 때 식판 수를 세어서 계산한다고 한다. 이게 무척 중요한 이유가, 예산이 넉넉하지 못할 경우 인원수를 적게 보이기 위해 기획단원 및 학생회 간부들이 식당에서 배식을 받지 않고 방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식사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새터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며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다른 기획단원들은 기자와는 달리 정신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새터에서 다루어질 총론을 정하고 모토를 만드는 일, 그리고 으뜸 노래와 마임을 선정하느라 많은 논의가 오고갔다. 그리고 새터 이튿날에 진행될 해방4종 경기 구상과 영상물 상영기획, 촌극 주제 정하기, 자료집 글 받아오기, 동아리 소개와 공연 순서 정하기 등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저 텔레비전 오락프로나 단순한 레크리에이션 베끼기를 지양하기에 단순한 게임 하나를 할 때도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되지는 않을까, 생태적으로 옳은 일인가, 새내기들의 연대의식을 고양할 수 있을까 등을 검토하고 또 검토한다. 예를 들어 새내기들이 다리를 묶어 풍선을 터뜨리고 오는 다인다각 경기에서는 남녀 성비를 맞추기 위해 애초에 인원수 제한을 두는가 하면, 요구르트 빈병 옮기기는 재활용을 감안하여 생활협동조합에서 제안한 경기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설 연휴 즈음에서 새터 모토는 ‘함께하는 우리, 익숙한 숨죽임을 거부한다’, 으뜸 노래는 ‘다시 떠나는 날’로 정해졌고 기획단원들은 각반의 새맞이짱들과 함께 으뜸 마임을 연습하며 계속 새터 막바지 준비를 계속한다. 해방 4종 경기에 사용될 PC 천을 찢고, 탱탱볼을 사오며, 공연할 동아리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등 바쁘게 시간은 흘러간다. 새터전날 – Rehearsal – 2월20일 새터가 바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날은 텝스를 보러 온 새내기들을 상대로 각반별 2차 오티가 행해졌던 날. 이미 공연하는 동아리와 기획단장을 비롯한 선발대는 하루 앞서 숙소로 출발했다. 새터 첫날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왔던 수많은 자보들과 포스터들, 연극과 밴드 공연에 쓰일 무대와 음향기기들은 바로 이들이 설치해 놓은 것. 본대도 막바지 준비에 여념이 없다. 탱탱볼이 모자라 저녁까지 주위 초등학교 근처를 헤매야 했고, 예산이 빠듯해 새내기들에게 나눠줄 팩과 양성 평등 지킴이 팩을 새터 전날까지 직접 손으로 제작해야 했다. 기자도 상영할 영상물 비디오 테잎을 구하러 그날 저녁 녹두 비디오샵을 뒤졌다. 새터, 그 2박3일간의 쇼 – The Show Must Go On – 출발하는 21날 아침 9시 반쯤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기획단원들과 사회대 집행부가 모두 모였다. 문화관에서 행해지는 단대 오티가 끝나면 점심으로 준비된 도시락을 먹고 곧바로 버스에 탑승하기로 계획이 짜여있다. 얼핏 보면 단순한 계획이지만 700~800명의 인원을 관리하는 것은 역시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늘도 무심하게 비가 내리는 바람에 도시락을 문화관 내에서 먹는 문제로 문화관 시설 관리 직원들과 약간의 마찰을 빚었다. 각반별로 참가 인원 명단을 점검하며 수납된 새터비를 세는 일도 복잡하기만 했다. 기자는 돈을 잘 센다는 이유로 그날 사무국장 전속 비서(?)가 되어 돈가방을 들고 다녔다. 새터비도 한번에 걷어 주면 좀 고마울까, 관악타임에 익숙해진 선배들은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야 학교에 도착하고 새로 인원이 올 때마다 새터비가 따로 걷힌다. 어느 반에서 몇 명이 언제 얼마나 납부되었는가 혼란스러워진다. 정확한 출발 인원 명단도 필요하다. 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학 새터 자료집을 차량별로 배포하는 것도 기획단 일이다. 예상치도 못한 관광버스의 주차요금 문제까지 해결하고 출발한 시간은 어느새 3시, 예정보다 1시간 늦어서였다. 도착 후 일반 학우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기획단은 방에서 점심 때 남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식사 후에 있을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행사 간간이 분위기가 늘어지지 않도록 앞에서 사회를 보다가 응원전도 유도해야 하고 가끔 마임도 보여줘야 한다. 물론 고되기만 한 작업은 아니다. 기획단원들도 모두 흥이 나서 같이 즐기는 분위기다. 새터 입학식과 사회대 풍물패의 공연이 끝나고 최근 『한겨레』기획위원으로 영입된 홍세화 씨의 강연이 이어지고 잠시 방문한 총학생회장의 발언과 함께 잠시 휴식시간. 그리고는 노래패, 연극 동아리, 몸짓패, 밴드의 공연이 12시 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모두를 대상으로 무대에서 치러지는 프로그램에서는 오히려 기획단원에게는 휴식이다. 무대 근처에서 같이 즐기기도 하며 앉아서 쉴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이튿날, 어디가나 보직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것인가. 아침식사 후로 예정된 영상물 상영시간의 사회를 맡은 기자는 다른 기획단원들에 비해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화면상태와 음향을 미리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주제는 낙태, 사회대 여성주의 연대의 김한정연(경제 4)시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30분 정도의 시청을 마쳤다. 예상외로 뜨거운 호응에 준비한 모두가 기뻐했다. 점심식사 -역시 기획단은 방에서 조리해 먹었다- 가 있은 후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해방4종 경기가 치러졌다. 기획단원이 진행을 맡아 경기마다 두세명씩 배정되었다. 기자가 맡은 경기는 다인다각 경기. 경기를 치를 반들이 들어올 때마다 제 위치에 정열시키고 규칙을 설명하느라 6경기가 모두 끝난 오후 5시쯤에는 기자의 목젖 아래가 뜨끈하게 부어 있었다. 힘들기는 다른 기획단원들도 마찬가지. 해방4종 진행이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프로그램이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서는 반별로 주어진 주제로 촌극 공연이 있었다. 한참 촌극이 진행되는 그 저녁에 사무국장과 몇몇 기획단원들은 숙소 측과 몇 가지 돌발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방의 카드열쇠를 분실한 사건, 대형 유리가 파손되어 그 변상과 보험처리 문제, 장난으로 비상벨을 눌러 방화벽이 작동한 사건 등등 크고 작은 사고를 처리하느라 진땀을 뺏다. 강당에서는 행사 진행하느라, 사무실에서는 사고 처리하느라 어느 기획단원도 발 뻗고 쉴 수가 없었다. 밤 12시쯤 되어 모든 프로그램이 끝났다. 각반별로 그들만의 자리를 가지는 시간. 기획단원 모두 속으로는 환호를 질렀을 것이다. 무대를 해체하고 학우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나서는 기획단원들에게도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다. 다들 자신의 반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고 놀다가 잠이 들었다고 한다. 기자도 아침 7시가 되서야 잠이 들었다. The End – ‘빨간 마후라’ – 23일 아침은 기획단원도 학우들도 모두 지쳐있는 상태. 술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다들 비몽사몽인 마당에 그래도 마지막 새터 졸업식은 마쳐야 하기에 강당으로 힘들게 학우들을 모아놓고 간소한 졸업식을 꾸린다. 민중의례와 으뜸마임에 이어 사회대 학생회장 서지원(정치 4)의 간단한 정리 발언. 출발 때와는 달리 차에 타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끝까지 응원전을 펼치는 몇몇 악바리 과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다들 지쳐 한시라도 빨리 차에 타서 자고 싶은 심정이라 오래 지속될 리가 없다. 그 동안 기획단원들은 마지막 정리 작업에 나선다. 숙소 곳곳에 붙었던 자보들을 떼어내고 쓰레기들을 수거한다. 지친 몸이지만 이짐 저짐 나르는 것이 이젠 익숙하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목에 두른 빨간 스카프 한 장을 학교에 도착해서도 풀어놓지 않았다. 고된 만큼 긍지를 느껴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