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대 서울대학교 총장 선거가 올 11월에 있을 예정이다. 현 이기준 총장의 임기가 올해로 끝남에 따라 교수 직선제의 원칙에 입각해 4년 임기의 새로운 총장을 선출하는 것이다. 이번 총장 선거 역시 과거의 총장 선거가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교 동문들간의 ‘밀고끌기’ 경쟁과 단과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계파 형성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심각하게 일고 있는 서울대학교 ‘위기론’을 감안해 볼 때, 그 어느 때 보다도 유권자인 교수들이 진정으로 학교의 수장으로서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한번 더 고민하고 투표해야하는 분위기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의 미래는 누구 손에? 서울대학교의 등록률이 사상 최저였다는 신문기사를 통해서라도 현재의 서울대학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변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람들에게 비춰진 서울대학교의 모습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세계의 대학으로의 발전하려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비춰진 것이 아니라 사회기득권층의 생산지, ‘이름값’으로 먹고사는 대학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렇게 서울대학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총장의 책임은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직선제 이후의 총장들을 살펴보았을 때 누구 하나 서울대학교를 탈바꿈시키려는 비전을 가졌던 인물은 없다고 판단된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리더의 역할은 언제나 조직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여기에 구성원들이 동의를 구해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역대 총장들은 학교의 발전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도 총장에 선출되었다. 누구 하나 서울대학교의 미래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장기발전계획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서울대학교가 답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총장은 무엇보다도 현재 정체되고 표류하고 있는 서울대학교를 움직일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 총장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0월경에는 총장 후보가 생각하는 학교의 발전방향에 대해 학우들이 꼼꼼히 따져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으로 보인다. 열린마음의 총장을 기대하며 그 동안 학우들 사이에서는 총장과의 대화를 추진하려는 노력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과 총장과의 격의 없는 대화가 진행된 적은 거의 없다. 그만큼 총장이라는 직위를 가진 사람은 학교의 똑같은 구성원인 학생들이 다가서기 어려운 존재이다. 학교의 명백한 또 하나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총장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현실을 보더라도 총장과 학생은 머나먼 관계이다. 많은 외국 대학의 경우 총장(President) 선거에서 교수뿐 아니라, 학생, 직원, 지역주민 등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어 학생들 주최의 토론회에도 후보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총장과 학생들의 소통은 자연스럽다. 그에 비해 교수 외에는 선거권이 없는 우리 나라의 총장선거는 오직 교수들을 위한 공약만이 난무한다. 학생이나 행정직원, 지역을 위한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총장은 교수들 이외의 학교사람들하고는 소통하기가 애초부터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이런 총장의 협소한 학교 인식은 무엇보다도 학내 구성원들과의 갈등 관계를 조장하는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 이기준 총장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의견을 무시해 학생들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례로 지난해 있었던 6·15 기념탑 일방적 철거문제, 추가등록 기간 단축으로 인한 미등록자 속출, 음대 대학원 등록비 대폭 인상 등은 모두 일방적인 총장의 독단적 결단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올 해 새로 선출될 총장은 바로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 직원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끌어안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언제든지 학교의 구성원들과 대화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서울대학교의 총장이라는 자리는 그리 쉬운 자리는 아니다. 우선 외국 대학들과는 다르게 교육부의 학교 행정에 관한 간섭이 심해 소신대로 학교 정책을 펴 나가기 어렵다. 또 한국사회에서 서울대학교가 차지하는 위상으로 인해 학교 안팍으로 이해 관계가 심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골머리 아픈 직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학교의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의 임기 중에는 적어도 이것만큼은 이루겠다는 생각은 있어야 한다. 또한 학교 구성원들과의 원활한 소통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앞으로 11월에 있을 총장선거는 이런 부분들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또한 4년 후의 서울대학교의 미래를 후보들을 통해 그려보는 것도 총장선거의 또 다른 흥미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