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60년간 남한은 이승만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쉴새없이 정권의 교체를 겪었다. 반면 북한은 김일성부터 김정일까지 정치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일인 중심 체제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러한 일인 중심의 체제가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인지는 확언할 순 없지만, 현재 외신은 김정일이 차남 김정철을 후계자로 내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의 일인체제화는 해방 이후 한반도 내의 권력의 공백에서 시작됐다. 소련은 좌익정부수립을 위해 한국 내 공산주의 운동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친소계인 김일성을 선택했다. 김일성은 공산당 내의 반대파를 제거하고 주체사상의 이데올로기로 북한에서의 일인체제 기반을 마련한다. 김일성은 주요 요인을 암살하고 숙청함으로써 당시 가장 강력했던 박헌영의 국내계를 제압한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중국의 후원을 얻은 무정과 소련의 지지를 받던 허가이를 숙청하고, 이어 한국전쟁 결과 책임을 물어 남로당계에도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가한다. 정적을 제거한 후 당을 장악한 뒤 그는 국가에 의한 사회통제와 주체사상으로 우상화되어 국가의 ‘아버지’로, 그리고 그의 가족은 혁명의 지속을 위한 혈통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다. 중국과 소련과는 다르게 북한은 주체사상의 사회주의 체제의 중심에 김일성이 있었다. 김정일은 1980년 반공식적인 ‘후계지명자’에서 1984년 8월 공식적 ‘후계자’로 승인되었다. 그는 군부를 중심으로 권력 승계의 기반을 다진 후, 후계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일성 사후에는 ‘유훈통치’와 ‘주체사상’을 계승하고 심화하여 김정일체제를 구축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은 곧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이 된 것이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뛰어넘기 위해 권위와 권력의 이원화를 시도하고 ‘선군혁명영도’라는 군부 중심의 통치로 자신의 일인체제를 전개한다. 김일성과의 일체화와 주체사상을 계승하여 심화한 것이 아버지로부터 아들로의 권력의 이동을 가져온 것이다. 북한 일인체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세습에 이어 김정일 아들로 이어질 것이 조심스럽게 추측된다. 그 근거로 차남 김정철의 후계자 임명설과 김정철의 어머니 고영희의 우상화 작업 움직임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삼대에 걸친 부자세습에 의한 일인 체제의 유지가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김정일을 둘러싼 외부 권력의 움직임과 현재 북한의 극심한 경제적 위기가 큰 변수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유훈통치 : 지도자가 앞의 지도자의 유훈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주체사상 :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진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수령체제의 기반이 되고, 더불어 김일성이후의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그대로 이어 나갈 수 있는 인물을 수령으로 추대해야한다는 김정일의 후계자론의 논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