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 “태극기를 꽂고 돌아왔다.” 황우석 수의과대학 교수가 미국에서 복제 성공 발표를 마치고 귀국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언론에서는 이 말을 크게 보도, 국민들의 애국심을 한껏 자극하였다. 실제로 ‘또 해냈다. 세계 최초 개 복제’, ‘줄기세포에 메이드인 코리아를 찍고 싶다’, ‘외신들 극찬…’ 의 기사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유난히 황 교수 관련 보도에서는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기사가 많다. 1997년 복제양 돌리가 맨 처음 등장했을 때 국내 반응은 차분하였다. 생명공학 분야의 성과보다는 생명윤리 차원에서의 우려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99년 복제소 ‘영롱이’의 성공으로 우리 나라가 생명 기술의 발전의 주역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세계 최고’ 혹은 ‘세계 최초’ 등 연구의 극적 성취만을 강조하는 기사가 늘어났다. 이러한 언론 보도 경향은 국민들 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민족주의를 자극할 뿐 우려의 목소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언론들의 ‘황우석 국민영웅 만들기’ 외국 언론이나 해외 과학자들의 찬사를 국내 언론에서 인용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언론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김명진 성공회대 강사의 글「황우석 교수 언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에 따르면 외국 언론에서는 수차례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전망을 경계하는 글이 실렸다고 한다. 일례로 황 교수의 개 복제 성공을 실은 「네이처」에서는 5월 26일자 보도에서 이번 연구가 실체 치료에 이르려면 수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아예 그런 가능성이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국내 언론들이 황 교수를 극찬하기 위해 인용했던「뉴욕타임즈」,「사이언스」등 해외 유수 언론에서는 이번 연구의 위험성과 부정적 전망도 기사로 실었지만 국내 언론들은 일체 그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김 강사는 생명공학감시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황 교수의 연구를 극찬한 해외 과학자들은 대부분 그 쪽 분야의 과학자들이며 그 나라 정부에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합법화 하려는 압력을 넣기 위한 정치적 지렛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이라며 그 열광의 진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photo2 이처럼 일방적 언론 보도 속에서 그 영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냉정한 판단의 자세는 없다. 한재각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이 같은 현상을 민족주의적, 선정적인 내용으로 황우석 신드롬을 광적으로 부추기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임성희 녹색연합 간사는 언론이 하나로 뭉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여론 속에서 자신들과 같이 신중론이나 반대의 의견을 내어도 언론의 무관심에 묻힌다는 것이다. 설사 언론에 보도된다 하더라도 이미 언론들이 만들어 놓은 황우석 신드롬 속에서 집중 포화를 맞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구영모 울산의대 교수도 “언론이 여론을 오히려 선동하면서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현 언론사들은 정부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다”며 언론에 대한 본연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언론은 황우석 교수를 과학자가 아닌 연예인, 정치인으로 만들고 있다.’ 면서 지나친 황 교수의 영웅 만들기식 보도를 경계했다.토론의 장이 봉쇄된 네티즌 토론방 네티즌들 역시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합리적 토론과 비판의 장을 만들지 않고 있다. 그 예로 시민과학센터의 김동광 박사가 언론의 편파 보도와 정부의 일방적 지원과 묵인 등을 지적하면서 황우석 열풍에 신중론을 제기한 글이 있었다. 그런데 기사 밑의 댓글은 전혀 다른 측면에서의 험악한 비난들이었다. “생명 윤리가 아니라 기독교 윤리라고 해라” ,“팍팍 밀어줘도 하기 힘든 일인데.. 니가 해봐라” 라는 댓글이 그 기사 밑에 달려있었다. 한 기자는 기사 속에서 “줄기 세포의 열광 속에 생명 윤리라는 단어는 금칙어가 된 것 같다”며 현 사태를 꼬집기도 했다. 한재각 정책연구원은 이런 현상을 근본적으로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자율적 공간의 긍정적 측면 모습 이면의 부정적 측면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문제는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세계 최고, 최초’에 집착하면서 지금까지의 민족적 열등감을 황우석이라는 세계적 석학을 찬양함으로서 풀려는 모습이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명 복제를 반대하는 부시 미대통령이 CIA를 보내 황 교수를 제거하려한다는 허무맹랑한 글이 게시판에 올라와 큰 조회수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한 연구원은 “이런 모습을 심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토론의 제기만으로 네가 무엇을 아느냐, 매국노 아니냐는 식의 비판은 합리적 토론의 가능성을 봉쇄시킨다” 며 이 같은 현상을 경계했다. 이 밖에도 특정 종교에 대한 반감이 그 종교 단체가 발표한 성명서 자체, 더 나아가 생명 윤리 자체에 대한 논의를 무마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임성희 녹색연합 간사는 무엇보다도 한 쪽 방향으로 편향되었던 언론의 보도와 그에 따른 일방적인 사회적 여론 형성의 산물이라면서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황우석 신드롬에 편승한 정치권과 정부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당들은 모두 논평을 통해 황우석 교수의 복제 실험이 성공할 때마다 적극적 환영과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평소의 정쟁을 초월해서 보기 드물게 한 목소리를 낸 셈이다. 그러나 순수한 과학 업적에 대한 환영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열린우리당이 황 교수를 당으로 영입하려다가 여론에 밀려 취소한 해프닝이 있었고 인천 남구갑의 유필우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 황 교수의 연구시설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나라당에서도 이강두 최고위원이 환영 논평을 내면서 말미에 이런 정신을 현 노무현 정부도 좀 배워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재각 정책연구원은 이런 경향에 대해서 “윤리적 가치나 철학 없이 황우석 신드롬에 정략적으로 편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의 타당성을 더 높여주는 사실은 정치인들이 황 교수와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 교수의 강연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사진을 같이 찍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기도 했으며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도 황우석 교수 후원회 결성식 축사에서 같은 72학번 동기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정치계의 황 교수에 대한 일방적 지지와 환영은 순수한 과학적 성과에 대한 반응이라고만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photo3 정부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최고과학자’ 선정과정에서도 황우석 교수 띄워주기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256억원을 지원하는 최고과학자 선정은 원래 후보 추천과 선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황 교수에게 주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 절차적 문제를 지적한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의 반발 이후에야 5명의 후보를 추천, 선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황 교수를 다시 선정했던 것이다. 최고과학자는 황 교수에게 기금을 주기 위해서 임의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한 연구원은 여기에도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한 연구원은 “황 교수도 과학자이기 전에 이 사회의 시민이다.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면 시스템 개혁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이러한 초법적 발상은 수긍하기 어렵다” 며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동광 박사도 “정부가 한낱 이익집단이 아니라면 이 연구가 가져올 영향을 공익적 측면에서 다루어야 할 의무가 있다” 면서 정부의 일방적 자세를 비판했다.팔은 안으로 굽는다? ‘황우석 쓰나미’는 황 교수의 학교인 서울대에도 몰아쳤다. 『대학신문』에도 황 교수와 관련된 기사가 상당수 게재되었지만 기존의 언론과 비슷한 논조를 띄고 있다. 생명 윤리에 대한 지적들이 대부분의 글 말미에서 언급되긴 했지만 황 교수의 문제 없다는 답변과 앞으로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지적으로 끝났다. 오히려 선배로서의, 교수로서의 인간적 이미지가 부각됨으로서 그런 문제 의식이 더 희석된 측면이 강하다. 다른 단체에서도 자보 등을 통한 목소리는 드물었고 이공대 저널에서만 3월과 6월호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한편, 서울대의 대표적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도 이는 큰 화제로 떠올랐고 여러 개의 글이 올라왔다. 스누라이프도 직설적인 욕설이 없었던 점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인터넷 게시판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황 교수의 성과에 대한 신중론을 보인 사람에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라는 댓글이나 “신의 은총을 받으신 분들은 신의 은총을 받는 분들끼리 어울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같이 특정 종교를 비꼬는 댓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중론을 성공을 질투하는 모습이나 특정 종교의 종교관만의 문제로 규정하여 논의 자체를 무마시키는 모습이 스누라이프 게시판에서도 나타났다. 조금씩 열리는 토론의 장 그러나 요즘에는 조금씩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스누라이프 게시판에서도 비교적 차분하게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 글이 최근에 올라왔다. 네티즌들의 토론방에서도 조금씩 지나친 애국주의와 실용화에 대한 기대에 대한 우려와 신중의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8월 25일 생명공학감시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았던 김상희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는 많이 늦었다는 발언으로 토론을 시작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는 옛말처럼 다시 한번 냉정하게 황 교수의 배아복제연구를 점검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