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자유와 대학제도 및 대학의 자율성은 엄연히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인사에 있어 국가의 간섭을 받고 있는 국립대의 경우, 이와 같은 대학의 자율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국가 개입주의가 국립대의 구조적 모순과 비효율성을 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국립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립대를 자율화하고 ‘보상과 평가’ 기제를 활용함으로써 각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2년 발표된 ‘국립대 발전계획안’(국발안)은, 이러한 주장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 예로, 국발안에서는 ‘자율과 책무에 기반한 대학운영 시스템 구축’을 주요 과제의 하나로 선정하고 있다. 같은 해에 발표된 서울대장기발전계획 연구보고서(이하 서발연) 역시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국발안과 서발연은 똑같이 지향해야 할 바른 방향으로서 자율화를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자율화의 목적과 형태에 대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국발안, 재정의 축소를 목적으로 한 자율화 국발안은, 대학 자율성 제고를 위해 ▲대학 자율성을 위한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 ▲국립대학 특별회계의 도입 ▲대학의사결정체제의 개선 ▲책임운영기관화(Agency) 추진 등을 과제로 선정하고 있다. 책임운영기관화는, 국립대 또한 하나의 공공기관으로서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기획예산처의 발의로 검토하게 된 사안이다. 책임운영기관이 되면 총장은 대내외적인 공모제를 통해 선출되어, 교육부 장관과 경영 계약을 맺고 조직?인사?재정권 등을 전적으로 위임받으며 상당기간동안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3년 동안의 임기가 끝나고 나면 경영성과를 평가받는데, 이 때 평가에 따라 연임도 가능하다. 이 같은 책임운영기관화는 현행 총장 직선제를 포기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며, 책임운영기관화하는 대학에는, 일반회계와 기성회계를 통합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특별회계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발안에서 이야기하는 이러한 방식의 자율화에는 결국 대학에 자율성을 주되 평가→보상이라는 ‘보상과 평가’기제를 적용하여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국립대에 대한 지원을 줄여나감으로써 재정을 축소하겠다는 의도 또한 내재되어 있다. 본부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의 자율화 계획에 대해, “현재 서울대에 절반 이상 집중되어 있는 예산을 타 지방대에 적절히 분배하여 국립대의 고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의도는 의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발안이 IMF 경제 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을 고려할 때, 국립대 전반에 대한 장기적 예산 감축이라는 목적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학내 의사결정 주체, 다원화 될 필요 있어 국발안은, 의사결정 구조의 개선책으로 ‘대학 평의원회’ 설치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총장이나 일부 보직 교수들에 의한 독단적 의사 결정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다시 말해, 대학경영층, 교수, 직원, 학부모, 동문회, 교육부 장관 추천인, 지방자치단체장 등 다양한 학내외 인사들이 참여하는 평의원회를 통해 의사결정 주체를 다원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각 대학의 평의회는 대부분 실제적인 의결권을 갖지 못하고, 외부 인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교수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대학평의원회에 실제적인 권한, 즉 예?결산의 심의, 총장과 단과대학장 선출 방법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 권한 등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국발안의 주 내용이다. 자율성 확보 필요 인정, 그러나 국가 교부금 지원 유지 주장하는 서울대 서발연의 내용도 국발안의 이같은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서발연은, 인사? 학생 선발?재정 등 크게 세 가지 부분의 자율화를 제안하고 있다. 인사부문에는 교수의 임용과 신분보장, 학생의 선발과 신분 유지, 직원의 인사가 모두 포함된다. 학생 선발의 경우, 그 동안의 국가 주도적인 입시 정책에 반대하고 대학의 특수성에 맞는 선발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재정의 자율화와 관련해서는 국발안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국발안에서 이야기하는 책임기관화는, 학교 측에서 생각하는 자율화 방안과 사실 큰 차이를 갖는다”고 김세환 기획담당관은 강조한다. 국발안에서는 대학에 자율권을 주되 총장의 실적에 따라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보상과 평가’ 기제를 전제한다. 반면 서발연에서는 국가가 국립대학의 재정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대학을 통제하는 한, 대학의 자율성 확보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역할은 감사원의 감사와 국회의 국정감사?결산 등을 통해 지원한 재정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서발연은 국가가 지원하는 재정 이외에 대학의 발전과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독자적으로 마련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국가는 개입할 수 없다. 이 같은 서발연의 입장은 서울대 유근배 기획실장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서울대 장기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독립회계를 전제로 한 독립법인을 구상 중”이라고 밝히며, “현재 서울대가 구상중인 법인화는 국가 교부금 지원은 계속한다는 전제 아래 국립대에도 민간경영기법을 도입해 예산, 인사 조직 운영의 자율성을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수의회를 실제적 대의 기구로 국발안과 마찬가지로, 서발연은 대학 운영을 위한 의사 결정에 있어 일반 교수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에 설치된 평의원회는 원칙적으로는 전체 인원의1/2을 교수로, 나머지는 학외 인사를 포함하여 총장이 임명 또는 위촉하게 되어 있다. 이 기구는 대의기구라기 보다는 총장의 자문기구로서, 심의 권한 기능이 매우 제한적이다. 실제로 대의기구라 할만한 어떤 기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그나마 대의 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학장단 역시 권한에 있어서는 제한적인 형편이다. 서발안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개선책으로서 교수의회 개설을 제시한다. 실제적 대의기구라 할 수 있는 교수의회는, 교수회에서 직접 선출되는 50인 이상 100인 이하의 대표로 구성된다. 이 때, 총장과 보직교수는 교수의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교수 의회는 학내 기본 정책 사항에 대해 심의?의결권을 가지며, 총장은 교수의회가 의결한 내용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서발연은, 총장을 자문하고 총장의 직무수행을 평가하는 기구로서 서울대학교정책심의회의(가칭, 이하 정책회의) 설치를 제안하고 있다. 정책회의는, 대학의 자율화에 상응하는 책임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독립회계의 실시와 관련하여 책임성을 갖기 위한 것이다. 정책회의는 교수대표, 동창회대표, 학?재계의 명망가와 같은 학외인사를 교수의회의 동의를 받아 총장이 위촉한다. 또, 정책회의의 역할은 대학이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받고 총장이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결국 서발연은, 국가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총장의 권한을 강화하되, 교수들의 참여를 증진시킴으로써 학내 의사 결정 구조의 민주화를 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참여가 배제된 이와 같은 개편은 완전한 민주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학내 의사결정, 여전히 학생 의사는 배제 지난 총장과의 대화에서, 정운찬 총장은 “대학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학생들에게 발언권은 줄 수 있으나, 투표권이나 의결권을 줄 수 없다”며 제한적이기는 하나 학교 운영에 관련된 의사결정에 있어 발언권 정도의 학생참여 보장을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발연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교수의회 산하 위원회 중 운영위원회를 제외한 특별 위원회에 학생 참여가 일부 보장되기는 하나, 이것은 교수의회가 의결한 뒤 결정되는 사안이므로 매우 애매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또, 46대 총학생회장 박경렬 씨는, “현재에도 위원회 차원의 학생 참여는 이루어지고 있다”고 못박으며 “두레문예관 위원회같은 경우가 그 예”라고 설명한다. 즉, 서발연에 명시된 조항으로 인해 특별히 개선되는 점은 없을 거라는 얘기다. “실제로 학생들이 의사 결정에 의견을 제출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박경렬 씨는 말한다. “‘교육환경개선협의회’(이하 교개협)라는 기구가 있는데, 총학생회, 학생처장?부처장, 각 단대 학장 등 관계자들이 모이는 자리로, 일종의 의견수렴창구 역할은 하고 있다”라고 덧붙인 그는, 실제로 03년도 등록금 책정시 교개협에서 당초의 신입생 등록금 15%인상 계획을 9.5%까지 낮추도록 협상하는 등 교개협의 긍정적 역할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와 덧붙여 “다만, 현실적으로 중요한 학내 사안에 대해 건의 정도를 할 수 있을 뿐 의사결정에 있어 학생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학생들의 참여 기회 보장이 관건 학생들은 학교의 또 하나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학내 의사결정에 있어 어떠한 권한도 갖지 못해왔다. 정운찬 총장역시, “학생들에게 투표권이나 의결권을 주는 것은 무리”라며, 학생들을 직접적인 참여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재확인 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학생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학생은 어디까지나 학생이고 행정이나 정책에 관한 부분은 교수들과 행정실, 즉 어른들이 결정할 몫”이라는 권위주의적 사고의 연장선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국가로부터 대학의 자율성을 획득하면서 학내 의사 결정 구조의 개편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교수의회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현재 평교수들의 의견이 의사 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총장과 학장단의 독단적인 결정에 모든 것이 맡겨져 있었다는 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학생 참여 부분은 학생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가 되어 온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의사 결정 구조 개편에서 학생들의 참여에 대해서는 별 논의가 없다. 교육의 수혜자와 교육의 소비자 그리고 학교를 구성해나가는 하나의 주체로서 학생들의 참여는 보장될 필요가 있다. 학교의 주체들이 학교를 구성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이야 말로 자율화의 참된 의미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