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진보

『서울대저널』의 모토는 ‘진보를 일구는 참 목소리’이다.그런데 매월 책을 내기 위해 회의다, 취재다 하여 바쁘게 지내다보면, 정작 ‘진보’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진보’를 추구해야 하는지, ‘진보’라는 지향 하에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의 고민은 쉬이 관심 저 편으로 밀려나 버리고 만다.

『서울대저널』의 모토는 ‘진보를 일구는 참 목소리’이다. 그런데 매월 책을 내기 위해 회의다, 취재다 하여 바쁘게 지내다보면, 정작 ‘진보’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진보’를 추구해야 하는지, ‘진보’라는 지향 하에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의 고민은 쉬이 관심 저 편으로 밀려나 버리고 만다. 한번은 미국에서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가 나에게 왜 『서울대저널』일을 하냐고 물었는데 순간 나의 대답이 너무도 교과서적이어서 스스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 자신의 신념에 대한 치밀한 내적 검토 없이, 남들이 이야기하는 몇 가지 정형화된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진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울대 총학생회 역사상 두 번째로, 학생정치조직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선본이 학생회를 수임하게 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 선본의 득표율이 42.7%라는 것이다. 이 압도적 득표율이 의미하는 것은, 비약해서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이제껏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은 그 주원인이 학생들이 아닌, 기존 선본을 조직해 왔던 학생 운동 선본에 있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생회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선본들이 그들이 선택하고 싶어할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혹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또한, 이제는 이미 상투화되어 버리고 만 학생운동 혁신이라는 것의 결과가 그만큼 미미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 훈은 “(학생운동은) 더 이상 지향하지 않거나, 지향할 수 없거나, 힘을 몰아갈 수 없는 지향점들을 그토록 격렬한 이념적 구호로 내걸고 있다.” 고 말한 적이 있다. 진보적인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오래된 ‘진보’의 이론들이 도서관 벽을 장식하고 있는 지금의 학생운동에게 ‘지향’은 무기력할 뿐이라는 것이다. 대학사회, 아니 한국사회에 아직도 바꾸어야 할 것이 있고, 지향해야 할 가치가 있다면 이제는 좀더 긴박감을 가지고 스스로의 지향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반전 집회

Next Post

대학생 탈정치화의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