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에 왜 참여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정말 아리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한국 정치의 민주화와 발전에 그 누구보다 핵심적인 역할을 자처했고, 또 그렇게 인정받았던 ‘대학생’이라는 집단이, 이제는 오히려 그 동안 자신이 비판하고 조소를 보냈던 정치가 걱정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투표에 왜 참여해야 하는가”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주제의 칼럼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실로 기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왜 투표에 참여해야 할까? 이제는 대학생들의 머리가 너무 커져서 그런지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권리 행사라는 의미라든지, 주인된 도리라든지의 의미는 별 설득력 없이 들리는 듯 하다. 직접적인 이익과 관련된 부분이 없다면, “합리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대학생들에게 정치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듯 하다. 정치(Politics)는 고대 그리스어로 도시 국가를 뜻하던 ‘Poli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치는 ‘공동체’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개인도 공동체(대표적인 형태로는 국가)에 속하지 않는 개인이 없다고 할 때, 정치에는 외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탈정치화 현상’은 근본적으로 성립 불가능하다. 우리는 진정으로 정치라는 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삶 전반에 펼쳐져 있어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든 없든 간에, 또 개인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탈정치화, 무관심이라고 부르는 오늘날의 현상이, 실제로는 ‘대학생이 정치로부터 배제되는 상황’과 같은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가까이 ‘일상의 정치’부터 인식하자. 쉴 새 없이 올라가는 등록금, 졸속적인 학부제 시행, 기업화되는 대학교 문제에서부터, 지나치게 높은 핸드폰 사용료와 생리대 가격 등 대학생 경제 부담의 증가, 청년 취업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치는 바로 우리의 일상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흑색 선전과 상호비방, 그리고 폭로, 싸움터를 방불케하는 기성 정치판은 너무 지저분하다. 게다가 정말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말만을 복잡하게 해대고 있다. 그래서 ‘정치’란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난다. 지난 6. 13 지방 선거에 관한 중앙선관위의 투표율 분석 중 일부를 옮겨 적어본다. 오늘날 숫자는 정말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연령대별 평균투표율은 20~29세(1982~1973년생)가 31.2%로 가장 낮고, 60~69세(1942~1933년생)사이가 76.9%로 가장 높게 나타났음.” 87년 6월 항쟁 이후 지금까지 전체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87년 13대 대선 당시 89.2%였던 투표율은 92년 14대 대선 때 81.9%로 뚝 떨어졌고 97년 15대 대선에서는 80.7%를 기록했다. 투표율 하락 경향은 총선에서 더욱 뚜렷하다. 88년 13대 총선 당시 75.8%였던 투표율은 92년(14대) 71.9%, 96년(15대) 63.9%를 거쳐 2000년 4?13 총선(16대)에는 57.3%까지 하락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투표율을 끌어내는 주 요인은 바로 20?30대 젊은 층이라고 분석된다. 최근 10년간 20대(20대는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을 넘어가고, 30대를 포함하면 반이 약간 넘는다)의 총선 투표율은 92년 56.8%(14대), 96년 44.0%(15대), 그리고 2000년 36.8%(16대)로 20%가 하락했다. 또 지난 97년 대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은 68.2%로 전체 투표율 80.7%보다 크게 낮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