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울대생의 꿈

“따르르릉” 알람이 8시를 알리며 울리고 있다.오늘은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다.잠도 깰 겸 TV를 틀어보니 우리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본부가 학교 운영의 민주화를 위해 학생과 지역 주민의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오늘 오후 학교에서 본부 주최로 공개 회의를 개최한다고 한다.아나운서가 총학생회 본부 점거 영상을 보여 주면서 더 이상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말이 귓가를 스친다.

“따르르릉” 알람이 8시를 알리며 울리고 있다. 오늘은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다. 잠도 깰 겸 TV를 틀어보니 우리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본부가 학교 운영의 민주화를 위해 학생과 지역 주민의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오늘 오후 학교에서 본부 주최로 공개 회의를 개최한다고 한다. 아나운서가 총학생회 본부 점거 영상을 보여 주면서 더 이상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말이 귓가를 스친다. 대충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학교로 가기 위해 셔틀 타는 곳으로 나갔다. 비록, 신공학관 수업이고, 지금 시각이 8시 40분이긴 하지만 지각 걱정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부가 학생편의를 위해 셔틀의 숫자를 늘리면서 배차 시간 간격이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녹두에서 신공학관으로 바로 가는 노선이 새로 생겼기 때문에 이 노선을 이용하면 된다. 물론, 본부로 가는 셔틀을 타고 가도 늦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수업 도중에 교수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예전에는 강의실 인원배분이 잘 안되서 3월 한달 동안 강의실이 계속 변경되기도 하고, 자리가 없어서 수업을 못 듣는 학생도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한 술 더떠 내부 장식도 끝나지 않은 건물에서 수업을 듣는 웃지 못할 상황도 있었다는 것이다. 뭐 지금 상황과 비교해 보면 꿈 같은 일이다. 특히, 이번 달에 새로 개관한 신공학관 건물이 이용 예상인원과 교통편, 편의 시설까지 미비로 6개월 여 동안 더 준비한 걸 보면 말이다. 수업이 끝나고 동아리방엘 한번 가보았다. 새로 생긴 이 건물은 1층 당 학생 자치 공간과 휴게실 또는 독서실을 반드시 만들어 놓게 해서인지는 몰라도 학생 행사가 자주 있다. 지난주엔 라운지에서 HANADO의 로켓 강연회가 있었는데 이번엔 신포니에트의 특별 음악회가 있다. 일반 학우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도 눈에 띠었는데, 여기저기서 토론하는 학우도 눈에 띠고 친구를 꼬셔서 한적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자는 학우들도 눈에 띤다. 이런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 동아리방에서 죽치고 사는 다운이라는 후배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여기가 천국이에요. 대학 생활의 낙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라는 표현이 딱인 것 같다. 아직 어린 녀석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웃긴 했지만 그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점심을 먹고 마켓팅 원론 수업을 듣기 위해 셔틀을 탔다. 경영대는 자치공간 확보 투쟁으로 학생들의 공간을 이루어낸 역사가 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다른 단대보다 학생 자치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수업 내용을 생각하면서 걸어가고 있는 중에 경영대 건물 앞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했다. 건물 입구에 천막이 쳐져 있고 누가 농성 중인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천막 위에 피씨를 보니 “교수들의 생활 공간을 보장하라!”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먹물 새우깡’ 이라고 이름 붙인 투쟁단인데, 경영대 학생회에서도 지지한다는 자보가 붙어 있다. 최근, 세계 수준의 대학을 목표로 교수들의 자발적인 연구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휴식 공간에 대한 요구도 늘어났는데, 설치 시설이 미약했는지 투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천막 안을 보니 학생과 교수가 서로 의견을 주고 받고 있었다. 수업 중간 중간에 교수님이 투쟁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교수와 학생, 본부가 학교의 운영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도중에 안칠현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몇 년전에 공식 기구로 인정된 총학생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대학개혁위원회 소속이라 오늘 토론회에 참여하는데 한번 가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마침 아르바이트도 없고 해서 혹시 TV에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로 칠현이와 함께 문화관으로 향했다. 칠현이는 가는 도중에 자못 감격한 듯 울먹이며 이제는 본부와 학생이 대립의 대상이 아니라 진정한 동반자가 될거라고 말했다. 비록, 길 한가운데에서 울먹이는 녀석과 같이 가는게 민망하기는 했지만, 본부 점거가 있으면 언제나 사수대를 했던 녀석이라 그 녀석의 심정도 이해가 가서 참고 넘어갔다. 문화관에 도착하고 한 20분 지나니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 참여자로는 총장, 총학생회장, 지역주민대표, 학부모 대표 이렇게 4명이 있었다. 사실 오늘 이런 회의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번에 새로 선출된 총장의 역할이 크다할 수 있다. 대학 내의 민주화를 이루는 게 학문 연마와 함께 대학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 총장이 있었기에 교육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기 까지 온 것이다. 회의 안건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대학 내 의사 결정 기구를 새로 만들되 그 형식은 5자 협의 체제로 간다는 것이 첫 번째 안건이다. 총장, 학생부처장, 학생회장외 학생대표1인, 학부모대표 2인, 지역대표 2인, 교직원대표 2인으로 구성된 5자 협의회는 참여자 전원이 찬성함으로써 규정집에 실리게 되었다. 각 대표들은 이미 총 투표를 거쳐 집단의 권리를 위임받은 만큼 절차상의 문제도 없었다. 이로써 우리학교는 한신대에 이어 학교 경영에 민주화를 이룬 두 번 째 학교가 되었다. 두 번 째 안건은 등록금과 발전기금에 관한 문제였다. 회의결과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등록금과 발전기금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회계를 정확히 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았다. 이번 등록금은 작년 수준에서 동결하고 그 인상분은 학생에게 다시 돌려주기로 했다. 이후 사용 내역을 4자 협의회에서 논의하여 등록금을 산출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총장은 자신의 판공비 내역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던 만큼 이 또한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해 회의를 지켜보던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안건으로는 사회연대에 대한 문제였는데, 학교를 투쟁과 노학 연대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협의였다. 이 또한, 학내 시설에 대한 파손이나 학교 구성원에게 심각한 불편을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하기로 정리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 총장님이 발언을 했는데,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여러분, 대학은 학문의 전당입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우리를 학문에 매진하게 놔두지 않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행동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학내 민주화에서부터 사회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 까지 우리는 공부하는 학생임과 동시에 행동하는 활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걱정 없이 학문에 매진할 수 있는 대학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무엇인가 뭉클한 느낌이 드는 말이었다. 주위의 참석자들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보니 학내 민주화 결정에 대해 노동계는 물론 사회 각층에서 지지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비록 내가 직접한일은 아니지만 흐뭇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나는 학문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천적인 면에서도 진보 를 이룰 수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따르르릉” 알람이 울려 일어나 보니 8시다. 제길 또 늦었다. 대충 씻고 가도 지각할 가능성이 높다. 어제 밤에 과제에 시달리다 늦게 잔 결과다. 더구나 신공학관을 가기에는 셔틀을 이용할 수도 없고, 시내버스도 배차시간이 엉망이라 타기도 어렵다. 택시는 하늘에 별따기다. 오늘도 지각인 것 같다. 지난 시간에도 지각해서 망신을 당했는데… 어제 TV에서 본 “우리의 권리”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떳떳이 주장하고 이를 관철시키며 살아간다던데. 나는 왜 누려야 하는 권리를 못 누리는지 모르겠다. 살인적으로 오르는 등록금, 학생과 대화도 하기 싫어하는 본부, 수업의지를 꺽는 교육환경. 이게 지금 나의 현실이다. ※ 위 글은 특정 인물이나 지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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