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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여러분에게 ‘어디 다니세요?’라고 묻는다면, ‘서울대 다닙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그것은 당연한 대답이다.우리는 서울대학교에 다닌다.보통, 한국사회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두가지 의미를 함축한다.하나는 대학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으로서의 서울대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밖에는 없을지도 모르는 서울대학교의 독특한 정체감(identity)이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어디 다니세요?’라고 묻는다면, ‘서울대 다닙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대답이다. 우리는 서울대학교에 다닌다. 보통, 한국사회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두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는 대학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으로서의 서울대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밖에는 없을지도 모르는 서울대학교의 독특한 정체감(identity)이다. 『서울대저널』이 2001년 한해동안 연재해온 ‘서울대 개혁과제’는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서울대학교는 과연 서울대학교만의 독특한 정체감을 가지기 위해서 어떠한 개혁 과제를 안고 있는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정체감이 없어… 서울대 개혁과제의 선정 작업은 지난 겨울방학부터 시작됐다. 첫 과제 ‘국립대로서의 위상 찾기’는 서울대가 잃고 있는 첫 번째 정체감이 바로 ‘국립대’로서의 공공성라는 문제의식에 서 나왔다. 많은 서울대 개혁논의를 발(發)할 때, 그저 하나의 대학이 아닌 국립대로서의 정 체감을 확립하지 못하면 결국 집단이기주의적인 면으로 비춰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만일 국립대로서의 자세가 아닌, 하나의 대학으로서 다른 대학들과 경쟁하려 든다면, 서울 대의 위치는 30-40m앞에서 출발하는 100m 주자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간 서울대가 누려 운 온갖 특혜와 국가로부터의 경제적 수혜, 비난의 외압의 근간이 되는 학벌까지가 그렇다. 두 번째로 논했던 것은, 우리가 납부하는 등록금의 절대비율을 차지하는 ‘기성회비 운용의 투명성’이었다. 당시 기성회 임원을 밝혀내는 작업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임원들로부터 인터 뷰를 받는 작업 또한 벅찬 작업이었다. 회계문제는 단체을 운영함에 있어 반드시 존재하는 일임과 동시에 모든 구성원에게 투명함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불문율을 어긴 체 현재의 서울대학교의 막대한 자금은 본부와 기성회 임원의 ‘그들만의 리그’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더 나아가 서울대에서 운용되고 있는 모든 자금은 집행에 있어서 구 성원간의 공유없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다가, 집행 내역조차 공개되고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등록금은 원래부터가 혈전(血錢)이지만, 서울대에서 운용되는 모든 자금은 혈세(血稅) 라는 것을 본부는 알아야한다. 세 번째 과제는 ‘서울대의 의사결정구조’에 관한 공공성 확립이었다. 현재 서울대의 의사결 정구조는 여러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발표될 때 마다 난항을 겪게되는 주요원인이 되고 있 다. 만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기구가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굴러간다면, ‘서울대가 사분 오열되고 있다’라는 외부의 비판은 최소한 듣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로 제시한 서울대 과제는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에 관한 것으로, 그간 이루어져 온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의 선정기준이 국립대로서 걸맞지 않은 인상을 분명히 주고 있으며, 그것은 수상자만을 바라봐도 편파적으로 흘라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더욱이, 국립서울대 가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 또한 국가의 지시아래 ‘쥐어준다’라는 인상이 강했다. 연재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변화란 어떠한 준비가 필수적이어야 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었다. 법·경영 전문대학원 설립을 비롯한 서울대 학문적 위상변화 의 시도는 현재의 학제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의 요지이며, 따라서 지금과 같 은 학제를 유지한 체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이행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다. 서울대는 거대한 몸집만큼 행동자체가 어려운 곳 서울대 개혁과제에 하나의 기사로 취합할 수 없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광역화 문 제’와 ‘학생사회’의 문제였다. 학사 개편과정에서 드러나는 광역화의 본질적 문제점은 타 대 학의 상황들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 서울대 학사개편은 현재의 학우들이 재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로 인해 당시 교육문제의 화두를 가지고 투쟁을 하던 학우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시기적 계산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또한, ‘서울대의 자기성찰’이란 제목으로 나간 10월호의 기획은 서울대 개혁과제와 결코 떨 어질 수 없는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서울대 학부생에 만연해 있는 관악타임과 시험부정은 서울대 구성원의 절대적 비율 차지하는 학부생들이 해결해야 하는 우선순위 과제임에 틀림 없기 때문이다. 기실, 이번 연재에 『서울대저널』에서 스스로 아쉬웠던 대목은 총장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현 총장의 독단적 리더쉽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물론 『서울대저널』에서 느끼는 총장에 관한 문제의식이 학우들과 그다지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수면위로 드러나는 문제들 에 관해 총장의 일방적인 무시(그것은 대게 도망침이었다)로 인해 학우들이 피부로 느끼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내년쯤 해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을 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총장에 관한 문제의식이 아쉬워.. 다시, 서울대인 정체감으로 돌아가 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명의 청년으로, 혹은 그 범위 안에서의 서울대인으로 우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정체감은 크게 스스로의 자리매김과 다른 관계에 있어서 타인들에 의한 위치 지어짐이 존재하게 된다. ‘서울대학생’하면, 떠오르게 되는 몇 가지의 단상들과 우리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서울대인의 모습들의 차이가 그것들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괴리감이 존재한 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서울대학생인 과연 어떤가? 결국 모습은 ‘만들어간다’는 현재 진행형이 된다. 누구나 변하지 않는 스틸사진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컨데, 하나의 체계는 전(前)체계의 모순에서 나온 새로운 체계지 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그 체계만의 모순점이 또다시 드러나게 된다. 결국 누 구나가 무엇이든 끊임없이 부단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다시말해 ‘개 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을 때는 이미 서울대인의 정체감에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 이되고 그것을 해결해야 되는 몸부림은 역사의 정(正)방향인 것이다. ‘서울대인 정체감은 과연 정방향으로 흘러가는가’라고 혹자가 묻는다면, 우리 모두는 뭐라 대답해야할까? 우리 모두는 최소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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