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호가 다소 늦게 배부된 탓인지 11월호 준비는 무척이나 벅찼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중간고사와 겹치고 대동제도 있었으니 기자들 모두가 바쁠 만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선거직전이라는 나름대로의 분주함이 마감일 막바지에 더해졌다. 『서울대저널』편집실을 가장 활기차게 했던 일을 손꼽으라면 여느 때 보다 두드러졌던 10월호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이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자의 입장에서 누군가 자신의 글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었다는 것은 기성신문이 판매 부수를 늘린 것 보다도 즐거운 일인 듯 싶다. 지적 받았던 것을 살펴보면, 하나는 ‘게이빠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벤처동아리 이야기’였다. 전자는 단어선택을 잘못함으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동성애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었다. 기자실 내부에서 충분히 인정된 것이고, 담당기자 또한 알고 있으며 적절한 수위에서의 사과문을 실을 예정이다. 후자는 text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는가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이 되었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의 썰을 한번 풀어보려 한다. 기사는 크게 사실(fact)전달과 의견(opinion)전달로 나뉜다. 사실전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검증된 자료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같은 사실일지라도 어떤 것을 부각시켜 주느냐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예컨대, 보통 신문에서는 헤드라인을 어떻게 가져가는가 혹은 무엇을 1면 톱으로 올리느냐 하는 것 등이 관건이 된다. 글의 호흡이 다소 긴 편에 속하는 『서울대저널』의 경우, 제목을 어떻게 뽑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글의 맥락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에 대한 것도 무척 중요하다. 두 개의 사실을 전달하고자 할 때도 맥락에 따라 어느 하나는 다른 하나에 묻혀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도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벤처동아리’ 기사의 경우, 두 개의 팩트를 어떻게 배치했는가를 살펴보면 기자가 알리고자 했던 주제는 명확하다. 벤처동아리 소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편집실 내부에서만의 이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다시 말해 ‘벤처사업 소개’가 아니라 ‘벤처동아리’ 이야기였던 것인데, 그것은 ‘세산 실험’처럼 어디서부터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의견전달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누구나 알 법한 사실이지만, 머릿속의 생각과 글에서 풍겨지는 의견을 일치시키는 작업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기사를 읽는 독자들의 생각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공대저널』에서 붙여놓은 대자보의 맥락은 결코 팩트에 집중되어 있지 않으며(그들은 기자와 어떠한 대화를 나누었었는지 궁금하다), 설령 팩트를 올려놓았다 치더라도 객관적 전달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없어 보인다. 기사는 4page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자보의견 개진에 유리한 2page만을 복사해서 붙여놓았으며, 의견전달에 있어서 『서울대 저널』의 10월호 기사, ‘주5일 근무제’와 ‘교육투쟁’에 고전적 소재라는 수식어를 붙여놓아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서울대 저널』을 향한 비판의 화살에 ‘분노’와 ‘천박’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라면 ‘고전적’과 ‘다소 진보적인 시각 유지’라는 수식어는 우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또한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모든 단어를 국어사전을 일일이 찾아보며 쓸 수 있는 노릇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수식어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읽히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서울대저널』은 지난 10월호에 ‘진정한 공생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편집실 칼럼을 채웠다. 그것은 전적으로 비판만이 멋지다고 통용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동종의 관악매체에 대한 신뢰였으며 그것이 대학생으로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한줌의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피드백은 좋지만 ‘폄하’는 사양한다는 뜻이다. 사족을 달겠다. SNUnow 토론방에서 읽은 것이다. “설대에도 돌대가리들 많아요. 똑똑하던 애들이 왜 그렇게 돌대가리가 되어버리는지 참… 한가지 이유를 들자면, 수능시험 볼 때(언어영역) 만큼만 텍스트를 해석할 수 있어도 그런 돌대가리는 안되는데 아 글쎄, 얘네들은 대학 들어오면 데리다인지 뭔지 롤랑바르트인지 뭔지 하는 애들이 얘기하는, ‘지조때로 해석’에 물들어버린다니까여. 물론 데리다 같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지조때로 해석이란 최소한 자신의 사고 내에서의 객관성 정도는 담보해야하는 개념인데 말이죠.” (From 정말지나가는 넘)